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70주년 기념 리버시블 테디베어 코트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체크 재킷과 스커트, 니트 톱 모두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클래식한 디자인의 더블브레스트 코트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그린 코트와 니트 톱, 벨트, 70주년 에디션으로 선보인 아니타백 모두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카키 쇼트 테디베어 코트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브랜드의 탄생 연도를 프린트한 니트 풀오버, 패턴 스커트, 블랙 하이힐 모두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70주년 에디션으로 선보인 아니타 백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7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아이코닉한 캐멀컬러의 101801 마담 코트와 아니타백, 슈즈 모두 막스마라(MaxMara).
정유미 막스마라 maxmara 마리끌레르 커버
카키 오버사이즈 니트 풀오버와 체크 스커트 모두 막스마라(MaxMara).

 

유튜브 영상에 텃밭이 나오던데요. 작물을 직접 키우는 거예요? 촬영 중인 드라마 세트장에 작은 텃밭이 있어요. 촬영 도중 대기 시간에 세트장 관리 소장님이 아기 사과나무, 대추나무, 당귀가 있다고 보여주셨어요. 뭔가를 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집에서 토마토 씨앗을 키친 타월에 싸서 싹을 틔워봤는데, 신기하게 싹이 나더라고요.(웃음) 심지어 꽤 많은 모종이 만들어져서 주변 사람들한테 분양도 해줬어요. 토마토 모종을 세트장 텃밭에도 심어봤는데 나무처럼 쑥쑥 자라더니 지금은 키가 저보다 커요. 근처 시장에서 비료도 사서 주고 바질, 애플민트, 오이, 애호박, 비트도 심었죠. 추석에는 수확한 노각으로 노각 김치를 담그고 쑥갓, 바질, 애플민트도 잘 활용했어요. 부추를 따다 부추전도 부치고요.

인사차 한 이야기였는데 텃밭에 무척 진심이셔서. (웃음) 마음먹고 한 건 아닌데 아무래도 드라마 촬영을 하다 보면 세트장에 머무는 시간이 많거든요. 촬영 중간중간에 소일거리로 뭘 할까 생각하다가 해본 건데 잘 자라서 놀랐어요. 함께 촬영하는 선배님들 중 한 분은 본인 집 앞에 옥수수가 나는데 가져다주겠다고 하시고.(웃음) 진짜 기뻐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필모그래피를 다시 살펴봤어요. 카메오 출연도 했고, 독립영화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주연작 역시 장르와 캐릭터가 다양하고요. 적어도 작품과 역할의 경중에 연연하는 배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작품을 선택하면서 어떤 것에서 영향을 받았나요? 특별한 기준이나 의미를 두고 작품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억한 적도 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제 마음에서 그걸 싹 다 내다버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불분명하게 답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그때 제 컨디션과 마음의 상태, 둘러싼 사람 등 환경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조감독이 친구여서 참여한 작품도 있고요. 아무리 비중이 작은 역할이라도 내가 하겠다고 나선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니까.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그냥, 하자’ 하고 해왔어요. 그러고 난 후에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가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했고요.

하나의 결로 느껴지지 않는, 분방한 이력이 배우의 용기로 읽혔어요. 그 와중에 또 하나 신비로운 건 다양한 시도 속에도 흑역사가 없어요. 제가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웃음) 배우가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그게 편하기도 하고요. 기억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흑역사가) 없다고 생각해요. 후회되는 건 단 하나도 없어요.

그런 면에서 커리어를 잘 만들어왔다는 자부심도 들 것 같은데요. 자부심이라기보다 각자의 길이 있잖아요. 모두 저마다 모양새가 다른 것처럼. 저 역시 그중 하나고요.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건 저라는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같이 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보건교사 안은영>이 두고두고 좋은 건 대의명분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눈앞의 일들을 성실히 해결하는 히어로가 지닌 담백한 정서 때문인 거 같거든요. 그런 면에서 방금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겹쳐져요. <보건교사 안은영>을 선택한 건 특정 대사와 제작진의 영향이 컸어요. 막상 촬영할 때는 맡은 역할을 수행하느라 하루하루가 아주 빨리 지나갔죠. 또 몸을 쓰는 장면이 많다 보니 아침에 촬영하러 가서 저녁 8시쯤 돌아와 저녁 먹고 나면 녹다운돼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서 바로 촬영장 가는 일상을 내내 반복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안은영의 삶과 실제 제 삶이 다를 게 없었던 거죠. 완성된 시리즈를 보면서 안은영에게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어떤 지점에서 위로를 받았어요?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라는 대사가 있어요. 우리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라는 말에 익숙하잖아요. 의심할 여지 없는, 정답 같은 말이라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즐기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고요. 근데 어떻게 즐겨요. 즐기려고 애쓰기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게 더 간단명료하고요.

그렇게 배우는 작품마다, 역할마다 얻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작품과 역할에서 배워요. ‘와, 나 진짜 이게 이해가 안 돼? 이걸 모른다고? 뭐 하고 살았냐?’ 혼잣말을 하면서.(웃음) 뒤늦게 깨닫는 것도 많죠. 10여 년 전 출연한 작품의 대사가 지금에 와서 이해되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지나온 시간 속에서 그리운 때는 언제예요? 어느 작품을 할 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이요. 그때는 즐기지 못했어요. 캐릭터한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했죠. 보신 분들은 많이 좋아해주셨거든요. 그에 비해 정작 나는 애정을 못 줬다는 사실에 오래 힘들었어요.

왜 온전히 애정을 주지 못했어요?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배우로서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도 많았고요. 그중 하나가 작품을 동시에 하는 거였는데 <내 깡패 같은 애인> 촬영이 끝나갈 즈음에 영화 <옥희의 영화>를 몰아서 찍었거든요. 역할의 비중을 떠나서 그 상황 자체가 나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때라 힘들었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촬영했거든요. 근데 그때 한 작품들이 의외로 저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안겨줬어요. 한편으론 묘한 죄책감이 들었죠. 다양한 감정이 오갔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큰 전환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네가 일을 놓을 거냐, 아니지 않나. 그럼 어떻게든 가자’ 하고요.

의외에요. 과거의 한 순간에 대해 질문하면 주로 추억이 될 만한 때를 꼽는데 아쉬운 시간을 먼저 떠올리네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내 기억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사람들의 좋다는 말에 ‘응, 나도 좋았어’ 하면 그거 이상한 거잖아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이게 아니니까. 저는 그렇게 되더라고요. 좋았던 순간도 있었지만요. 당시 <옥희의 영화>로 칭찬을 많이 받고 상도 받았어요. 근데 제 마음은 미치겠는 거예요. 영화에서는 제 분량이 많지만 정작 현장에는 여섯 번밖에 안 나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걸 누려도 되나 하는 마음이 더 큰 거죠.

들인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크면 운이 따랐다고 좋아할 법도 한데요. 스스로에게 정직하네요. 그때는 그랬어요. 그래서 <옥희의 영화>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가는 길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정하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라 간 이상 그곳에서 좋은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과 같이 와서 좋다 하던 차에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Felicità’가 흘러나오더라고요. 그 음악을 들으며 기분이 나아졌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마음을 그렇게 다잡는 편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것을 보려는 태도로요. 그런 편이에요. 결정하기 전까지는 어렵다, 어렵다 하다가도 막상 결정한 뒤에는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하고, 무엇보다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후회도 적을 것 같은데요? 후회 안 해요. 근데 싫은 건 생겼어요. 예전에는 내가 싫어하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적어도 ‘싫은 건 싫어’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힘든 걸 애써 긍정적으로 보려 하고 좋게만 덮으려고 했다면 지금은 ‘그래도 그건 싫었어, 싫었던 거 맞아, 그건 아니었어’ 하고 당시의 내 감정에 솔직해져요. 그렇다고 애써 먼저 표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래도 그건 다 좋지만은 않았어’ 하고 답할 수 있는 상태가 됐어요. 지금이 더 좋아요.

10년 전쯤 한 인터뷰에서 ‘10년 뒤 어떤 배우가 되어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배우를 할지 안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어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는데, 같은 질문을 지금 다시 받는다면 뭐라고 답하겠어요? 10년 후에는… 배우 안 할 거예요. 정확히 기한을 정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니 그때까지 저는 죽을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이건 꼭 써주세요. 내년에는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르지만 올해는 그래요. 그러니 지금 대충 안 할 거예요. 진짜 잘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