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솜 배우를 떠올릴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작품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일 거예요. 몇 년 전이라면 <마담 뺑덕>이나 <소공녀>를 얘기했을 텐데요. 이솜이라는 배우를 인식하는 작품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세계가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하나요? 영역을 넓히려고 의도한 적은 없어요. 다만 계속해서 안 해본 것에 도전하려는 생각은 있었어요. 어떤 작품을 하고 나면 사람들이 저를 그 안에서 연기한 인물로 인식하잖아요. 그게 계속 바뀌는 게 재미있어요. 사람들에게 저라는 인물이 고정된 형태로 남아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도전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유나’처럼 강하고 센 캐릭터로 생각하더라고요. <소공녀>랑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는 청춘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랑 드라마 <모범택시> 덕분에 그런 이미지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요.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비교적 다수의 작품에서 좋고 싫음이 확실하고,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알고 잘해내면서, 주체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을 연기했어요. 우연의 일치인가요, 아니면 이솜 배우의 성향이 묻어난 거라고 생각하나요? 저도 사실 그게 궁금해요. 아마 둘 다인 것 같아요. 늘 영화 안에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존재하길 바라거든요. 이 바람이 강하게 발현되었을 때마다 운 좋게 그런 인물들이 저에게 온 것 같아요. 그때그때 매력적인 인물을 잘 만난 결과라고 생각해요.
실제 이솜은 어떤가요? 주체적인 성향인가요? 신기한 게 그런 작품을 만나면서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전에는 소극적이고, 제 얘기를 잘 못 했거든요.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에 비해 할 말을 명확히 하는 사람이 됐어요. 예를 들어 작품을 선택할 땐 주변에서 어려울 거라고 걱정해도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옳다 싶으면 단호하게 결정해요. 저는 이상하게 주변에서 힘들지 않겠느냐고 만류할수록 더 하고 싶더라고요.(웃음) 어쨌든 제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는 옆이나 뒤를 보지 않고 제 마음을 믿고 가요.
주변에서 우려해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전에는 해본 역할인지 아닌지를 살폈는데, 요즘은 같이 일하는 사람을 보게 돼요. 현장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얼마나 힘들지를 먼저 가늠하게 되더라고요. 힘들 것 같아서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고, 고되더라도 얻을 것이 있으면 일단 시작해요. 저는 어떻게든 무엇이든 계속 하고 있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좀 힘들더라도, 손해를 보더라도 해요. 하고 나면 작품이든 사람이든 남는 게 생겨요.
올해 초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유일하게 심사위원 만장일치였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배우로서 꽤 의미 있는 상이 아닐까 싶어요. 의미가 아주 큰 상이죠. 상이라는 게 당연히 받고 싶지만, 받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잖아요. 예상하지 못해서 더 기쁘고 좋았는데, 즐기진 못한 것 같아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이겠죠. 사실 상이 아니더라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제게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또래 여성 배우들과 함께하는 영화가 많지 않아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주 잘 만들어서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 컸거든요. 만드는 과정도 즐겁고 신났고요. 이 작품을 생각하면 행복한 추억만 떠올라요.
수상 소감을 포함해 꽤 여러 곳에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어요. 저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정확히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행위를 정말 좋아해요. 스트레스 받으면 영화관에 가서 3-4편 연달아 보면서 종일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거기서 영화를 통해 다양한 나라도 가보고, 문화도 경험하고, 몰랐던 관계도 배우는 게 즐거워요.
혹시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관이 있나요? 씨네큐브요. 그곳의 문화가 좋아요. 제시간에 상영을 시작하고 늦으면 입장 불가, 안에서 취식 금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출입문을 열지 않는 것. 영화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이런 원칙들을 고수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클래식한 방식으로 영화를 즐기는 편인가 봐요. 네. 심지어 티켓도 앱으로 발권하지 않고 종이로 뽑아서 모으는 걸 좋아해요.
영화를 보는 것과 만드는 건 어떤 지점에서 다른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보는 건 상영하는 시간 동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재미가 크죠.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지 상상하는 일도 즐겁고요. 만드는 건 여러 사람이 치열하게 몰입해서 완성해가는 데에서 오는 특별한 재미가 있고요.
뭐가 더 재미있어요? 사실 힘들이지 않고 편히 앉아서 보는 편이 재미있긴 하죠. 그런데 그렇게 단정하기엔 제가 현장을 워낙 좋아해요. 다 같이 한 컷, 한 컷 공들여 만들어가는 분위기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어느덧 11년 차 배우예요. 지난 시간을 실감할 때가 있나요? 없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몇 작품이나 했는지 세어보지 않거든요. 지난 일을 돌아보지 않는 편이에요. 가야 할 길만 보는 거죠. 지금도 곧 촬영에 들어갈 드라마 생각만 해요. 시동을 잘 걸어서 출발해야겠다 싶은 거죠.
지금을 사는 사람이네요. 네. 뒤도 안 보고, 멀리 보지도 않아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늘 그랬어요.
달라진 부분도 있나요? 일상의 관심사가 달라졌어요. 20대 초반에 좋아했던 것들에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영화관을 좋아하는 것 말고는 취향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스스로에 대해 명확해진 것.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가 분명해졌어요.
그 변화가 연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덜 피곤해졌다고 할까요? 저 자신을 제대로 알고 행동하니까 불필요한 시도 없이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지금, 배우 이솜에 관해 명확히 얘기해줄 수 있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어떤 캐릭터를 맡으면, 그 인물이 작품에 잘 쓰였으면 좋겠어요. 저도 영화 안에서 잘 기능하는 배우이길 바라고요.
그 마음을 현장에서 잘 표출하는 편인가요? 현장마다 다른 것 같아요. 감독님마다 성향이 다르니까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표출을 아주 많이 한 경우고요.(웃음)
본인의 연기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요? 혹독한 편이에요. ‘이 신에서 이런 대사를 추가하길 잘했다’ 하는 식의 희열은 있지만, 그게 칭찬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 잘했다고 칭찬하는 배우가 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저는 남이 해주는 칭찬도 잘 못 받아들여요.
칭찬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받는 동시에 그게 내 것이 되니까요. 그런데 어려워요. 있는 그대로 잘 받고 싶은데, 저는 ‘저게 무슨 의미일까?’ 이렇게밖에 안 돼요.
작품 안에서 잘 기능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언제 어떤 캐릭터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나도 필요하고, 저런 나도 필요하잖아요. 일상을 잘 보내면서 그 안에서 많이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잘 지내야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요즘은 어떻게 일상을 잘 보내는 중인가요? 푹 쉬다가 새 작품에서 잘 기능하기 위해 킥복싱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액션 신은 없는데, 체력을 기르고 싶어서요. 잘 배워뒀다가 액션영화를 하게 됐을 때 써먹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요. 시원한 액션영화 한번 해보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