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에 공개되는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커피 한잔 할까요?>의 ‘강고비’로 여름을 보냈어요. 지난 계절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포근한 여름이었어요. <커피 한잔 할까요?>의 이야기가 잔잔하면서도 따뜻해요. 반면에 소화해야 하는 대사량이 많아서 애를 먹기도 했어요. 분명히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몇 분 뒤에 생각이 나지 않아서 혼자 소파를 치기도 하고.(웃음) 근데 다행히 현장에 가면 혼자 연습하던 때와 달리 함께한 박호산 선배님이 호흡을 잘 맞춰주셔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이야기도 그렇지만 촬영 현장 자체도 포근했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던 강고비는 커피 한 잔으로 바리스타를 꿈꾸게 되고 인생이 바뀌죠. 본인에게도 인생이 바뀐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언제를 꼽고 싶어요? 대학 입학이요. 당시만 해도 춤을 추던 때라 제게 학위가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왜 그때는 스스로 옳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던 시기 잖아요. 대학에 가길 바라는 엄마와 스파크가 튀었죠.(웃음) 결국 타협해 딱 한 곳만 지원하기로 하고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어요. 이후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일들이 저를 크게 변화시켰어요. 혼자서 춤만 췄으면 결코 알게 되거나 얻지 못했을 것들이 제게 쌓였어요. 다양한 경험과 상황에 나를 놓아두는 일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넓어진 거죠. 맞아요. 그 전에는 오로지 춤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렇게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일을 충분히 겪어보고 결정하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판단도 변화하니까요.
타의에 의해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잖아요. 학생회장까지 했다고 하던데요. 아… 제가 학생회장을 했다는 소문은 저도 들었는데요. 먼저 나서서 갑자기 해명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고 또 그럴 만한 자리도 없어서…, 지금 밝힐게요. 저 학생회장 안 했어요.(웃음) 근데 기분은 좋았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오, 학생회장? 나쁘지 않은 걸’ 하면서.
학생회장은 하지 않았지만(웃음) 학교생활을 온전히 해낸 것이 지금의 본인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아이돌치고는 조금 늦은 나이에 데뷔한 일이요. 맞아요. 학교에 다닐 때는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만족스러워요. 일하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 때 해소하는 노하우가 그때의 경험들이 뿌리가 되는 것 같아요. 노하우라는 건 쌓아온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거잖아요. 자취하면서 친구들과 부대끼며 살아보고, 엄마 차를 빌려서 여행도 떠나보고, 카페에서 밤새 조별 과제를 하던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나의 어떤 성향과 습관, 나라는 사람이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과거의 시간이 조금은 덜 흔들리도록 잡아주는군요. 그 부분이 굉장히 커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대학 동기들이 제 버팀목이거든요. 내가 힘들 때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덜 흔들리도록 나를 잡아주죠.
강고비는 커피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인물이죠.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몰입하는 이고요. 강고비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기도 했나요? 어떤 지점에서는 저와 닮았어요. 의욕이나 열정이 많은 면이 그렇고, 자주 쓰는 단어나 대화 패턴, 질문할 때의 느낌도 비슷해 신기했어요. 뭔가를 더 꾸미거나 덧붙이지 않아도 나에게서 출발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표현하는 데 용기가 생기기도 했어요. 고비를 통해 연기하면서 자신 있게 표현하는 즐거움을 느꼈죠. 앞으로 어떤 인물에 접근할 때 이전보다는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강고비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면은 없었어요? 가령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나?’ 싶은. 오히려 그 과도한 열정이 좋았어요. 더 닮고 싶었고요.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에요. 무엇보다 고비는 계속 부딪치는 사람이에요. 부딪치더라도 일단 행동하는 사람이고요. 흔히 우리는 실패가 두려워서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잖아요. 실패가 동반하는 리스크가 걱정되고요. 저 역시 그렇죠. 근데 고비는 그런 계산 없이 실패하고 또 실패해요. 실패를 거듭하며 끝내 성공을 이끌어내죠. 그런 모습을 본받고 싶어요.
두려움 속에서도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용기를 내고 싶어요? 연기요. 지나친 걱정과 우려, 두려움이 방해가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 있어요. ‘실패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느니 얼굴을 들 수 없을 때까지 실패해보는 것이 낫다’고요. 그 문장이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 어떻게 실패를 안 해? 왜 안 넘어지겠어? 그냥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여전히 어려워요. 겁이 많은 편이라.
배우와 가수로 살아가는, 낙차가 큰 삶에는 이제 좀 적응이 되어가나요? 이제야 조금씩 적응해가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낯설고 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방 굳어버리고, 마냥 어려워만 했다면 이제는 그 상황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서서히 받아들이게 됐어요. 문득 그걸 느낄 때 ‘아, 내가 많은 경험을 하고 있구나, 나아지고 있구나’ 싶어요. 물론 새로운 폭풍이 몰아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흔들리고 힘들어하겠지만요.
그러다 불쑥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본인의 어떤 면이 그 시간을 무탈히 지나가게 할 거라고 믿어요? 최근에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오래 고민만 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나를 던져보는 방향으로 바꿔가자고요. 근데 그때 겁내지 않으려면 나를 믿어야 하잖아요. 내가 앞으로 잘 해나갈 거라는, 미래의 나에 대한 막연한 믿음은 있지만 그런 거 말고 당장 눈앞의 나에 대한 신뢰를 더 단단하게 다지려고 해요. 스스로를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보고 엄격하게 판단하려만 하지 말고 때로는 내가 최고라고 최면을 걸면서 짓누르는 압력을 밀어낼 힘을, 포부를 키우고 싶어요. 그 힘이 어떤 상황에서든 저를 지켜줄 거라고 믿어요.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놀랐어요.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며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할 텐데 솔로 앨범의 작곡과 작사에 모두 참여했더라고요.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력이 될 때가 많아요. 결과물을 만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치로 다 해보려고 하는 편이고요. 적어도 개인 앨범에서는 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몰입해온 삶이 본인에게 무엇을 남긴 것 같아요? 거창하게 계획하고 욕심내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일을 충실히 해왔다는 사실이 지금의 저에게 도움이 됐어요. 그런 부분이 기회로 이어졌고요.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한 것과 같잖아요. 기회가 왔을 때 두려움을 뚫고 몸을 움직인 시간들이 징검다리가 돼 이어진 것 같아요.
평소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죠. <커피 한잔 할까요?>도 마찬가지고요. 따뜻한 이야기가 지닌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따뜻한 이야기는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떤 이야기는 잔혹하고 슬프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는데 따뜻함은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 중 제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에요. 건강한 에너지를 전하고 마음의 눈을 키워주니까. 일상은 차가운 순간이 많지만 그 와중에도 놀랄 만큼 따뜻한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날씨가 쨍하고 맑아지거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마음에 어떤 울림이 올 때… 그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모아 이야기로 만든 거니까요. 일상에서 그런 순간을 더 많이 만들고,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