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 뮤지션 여정 살아간다

얼마 전 네 번째 EP <여정>을 발매했어요. 음반 제목을 ‘여정’이라고 지은 계기가 궁금해요.여정’은 여행뿐 아니라 삶의 과정을 통틀어 일컫는 단어예요. 지금까지 저에게 일어난 일들이 녹아 있는 다섯 곡을 모아 <여정>을 완성했어요.

이번 음반의 수록곡들이 유리 씨가 살아가는 여정의 조각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네. 주로 제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내는 편이라 모든 곡이 제 여정처럼 느껴져요.

‘살아간다’와 ‘툭’이 <여정>의 타이틀곡이에요. 두 곡 중 ‘툭’을 먼저 썼어요. ‘툭’은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내용의 곡이에요. 그게 ‘살아간다’의 밑받침이 되어줘요. ‘툭’의 가사 내용과 같은 아픔들이 다가오더라도, 작은 변화와 용기에 벅찬 날을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살아간다’에 담았죠.

소속사의 SNS를 통해 ‘살아간다’와 관련한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청자들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소중한 것’을 담은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었죠. ‘#나는다시살아간다’, ‘#최유리살아간다’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해 사진들을 틈틈이 살펴봤어요. 반려동물 사진이 꽤 많더라고요.(웃음) 무겁게 감정이입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음악 안에 가볍게 녹여주신 듯해 고마웠어요.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하고 싶어요? 가족 그리고 가족으로 여길 만큼 사랑하는 사람들이요. 제가 직접 용기 내어 표현하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위로를 받는 순간들이 있는데, 가족이랑 있을 때 그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를테면 멍하니 있는 저에게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하면서요.

유리 씨가 다른 이들에게 그런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그게 저의 음악적 가치관이기도 해요. 제 노래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처럼 자연스레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말투에 예민하게 신경 쓰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는 말들을 가사에 사용하려고 노력하죠. 제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 위로받기도 해요. 그 이야기가 결국 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거든요.

그동안 발매한 곡들의 가사를 살펴보니 일상에 대한 고찰이 잘 담겨 있는 듯해요. 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제가 최근에 어떤 생각과 경험을 하고 있는지 떠올리며 주제를 고르고, 그 주제가 예전에 낸 곡들과 겹치지 않는지 살펴봐요. 이런 식으로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곡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하죠. 그리고 각자의 일상에 큰 차이가 있진 않으니까 ‘저는 일상을 이런 시각으로 보고 있어요’ 하고 알려주는 가사도 쓰려고 해요. ‘당신이 도망을 가도, 내가 술래 역할만 해도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 세 번째 EP <둘이>의 수록곡 ‘술래잡기’처럼 하나의 소재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내기도 하면서요.

작사와 작곡, 편곡까지 혼자 도맡고 있어요. 보통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미 곡에 대한 구상이 어느 정도 끝나 있는 상태예요. 그걸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해주세요’ 할 바엔 제가 직접 마무리하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래야 세세한 부분까지 듣는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전하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나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게 음악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어요. 또 제 이야기가 담긴 곡이라도, 듣는 사람마다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가 많아요. 제 음악에 대한 피드백이 오면 청자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대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하나의 곡이 재생되는 시간은 3~4분이지만,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생각하게 되죠.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테고요. 그게 바로 음악이 지닌 힘이 아닐까 싶어요.

유리 씨의 깊이 있는 음색도 참 매력적이에요. 예전엔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유리야, 네 목소리 너무 평범한 거 아니야?” 그런데 제가 음반을 내고 대중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이후에는 제 목소리가 듣기 좋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어머니의 권유 덕분이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초등학교 때 리코더부 활동을 하면서 대부분의 솔로 연주를 담당했고, 중학교 땐 합창부에서 반주를 했어요. 동네 가요제에서 상을 받아 용돈을 벌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건지 전혀 몰랐는데, 부모님은 알고 계셨나 봐요. 대학 진학을 앞뒀을 무렵, 어머니가 실용음악 학원을 직접 등록하시더니 “이제 가면 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시 준비를 했고,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어요.

최근 활동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어떤가요? 제 스케줄을 한 장의 이미지로 정리하거나 저에 관한 온라인 기사를 캡처해서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두세요. 어머니는 제가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눈물을 보이세요. 얼마 전 처음으로 음악 방송에 출연해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OST ‘바람’을 불렀을 때도 우셨어요. “아이고, 고생했네. 그런데 얼굴이 실제보다 통통하게 나왔다” 하시면서요.(웃음)

애정이 담뿍 담긴 말씀이네요.(웃음) 첫 음악 방송 현장은 어땠어요? 진짜 떨렸어요. 카메라가 정해져 있으니까 시선 처리가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눈을 천천히 떴다가 감아야 하고, 시선이 움직이지 않아야 더 자연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죠. 무탈하게 무대를 마무리해서 다행이에요.

개인 SNS를 통해 라이브 방송도 종종 하고 있어요. 라이브 방송이 제겐 마치 미공개곡 발표회처럼 느껴져요. 그러다 보니까 팬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곡들로 앨범이 채워지는 듯해요.

‘툭’을 비롯한 미공개곡 발매를 손꼽아 기다린 팬들이 많더라고요. 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끝까지 사랑해주는 팬들이 많아서 감사해요. 제 곡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3일에 한 번씩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며 고맙다고 전해주던 팬도 있었어요. 그분이 제 공연에 오셨던 날도 떠올라요. 앞에서 두셋째 줄에 앉으셨는데, 제가 ‘둘이’라는 곡을 부를 때 눈물을 뚝뚝 흘리시더라고요. 저와 제 음악을 깊이 생각해주시는 게 느껴졌죠.

11월 말에 <여정> 발매를 기념한 단독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어요. 콘서트를 열면 음악인으로서 관객들과 가장 뚜렷이 에너지를 주고받게 돼요. 제 텐션이 높지 않다 보니까 관객들도 박수를 작게 치시기도 하는데, 전 오히려 뜨겁게 환호해주셔야 긴장이 금세 사그라들면서 한결 편하게 노래할 수 있어요. 5월에 진행한 첫 단독 콘서트에서는 제가 앙코르를 위해 무대 뒤에서 대기할 때 팬들이 “유리야 가지 마!”, “저 오늘 휴가 나온 거예요!” 하고 외쳐주셨어요. 그날 따라 대기 시간이 유난히 길었는데, 다시 무대에 오르니까 팬들이 저를 위해 플래카드 이벤트를 해주시더라고요.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큰 목소리로 알려주셨던 그 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유리 씨의 여정은 지금 어느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소설의 다섯 단계에 비유하자면 발단을 지나 이제 막 전개로 넘어온 것 같아요. 지난해 초에 데뷔했으니까 아직 한 게 많진 않거든요. 앞으로 열심히 노를 저으면서 나아가야죠.(웃음) 이 여정의 결말이 해피엔드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