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손석구

블랙 재킷과 니트 스웨터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Dolce & Gabbana 손석구 돌체 앤 가바나

네이비 수트와 셔츠 모두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손석구 Lerici 레리치 라이즈앤빌로우 Rise & Below

베이지 재킷 레리치(Lerici), 치노 팬츠 라이즈앤빌로우(Rise & Below), 로퍼 얀코(Yanko), 블랙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감독이란 호칭, 어때요? 기분 좋아요.

4명의 배우가 직접 이야기를 쓰고 연출한 왓챠의 숏필름 프로젝트 ‘언프레임드’에 참여해 첫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어땠나요? 감독은 능동적이어야 하고, 많은 결단을 내리는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해보니까 제 성격에 그 일이 맞더라고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의외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배우,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 각자 원하는 방향이 있잖아요. 그걸 종합해서 결정을 내리는 거지 의외로 창의성을 발휘할 일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마음대로 하면 무시당해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빨리 파악해야 하죠. 여러 변수에 대응하는 거, 저는 그 점이 재미있었어요.

본인이 지닌 성정 중 연출을 하면서 유용하게 쓰인 부분이 있었나요? 원래 남의 말을 잘 들어요. 민주적인 편이고, 고집도 세지 않아요.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내려놔야 하는 순간을 빠르게 판단해요. 그런 점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어쨌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럼에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엔딩은 반대가 좀 있었어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의견이 있더라고요. 고집을 좀 부렸는데, 결국은 바꿨어요.(웃음) 심지어 애초에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4명의 배우가 각자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잖아요. 경쟁의식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그래서 저도 센 거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영화 감독인 친구가 첫 영화는 네가 제일 잘 아는 걸로 하라는 거예요. 제 얘기 하고 망하는 거랑 제가 모르는 얘기 하고 망하는 거랑은 얻는 게 차이가 크다고요.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지금은 후회 안 해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반영 해주는 감독으로 보여요. 왜냐하면 처음 하는 거잖아요. 이 방식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어차피 잘 만들지 못할 거면 혼자 고집하기보다 여러 사람 의견을 모아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어요. 전 연기할 때도 그렇거든요. 꼭 하고 싶은 연기를 감독님이 못 하게 할 땐, 제가 모르는 객관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손석구 감독의 첫 영화, <재방송>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배우로서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은, 실은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사회에 자리를 잡고 싶은 사회초년생과 나이가 들어 이제는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이 하루 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언제 써둔 이야기예요? 10년 전쯤이요. 누구나 어린 시절에 ‘나는 뭐 할 거야’라고 정해두지만 그 비전은 본인 마음속에나 있지 다른 사람들한텐 안 보이는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저의 정서적인 상태를 적어둔 글이 있었어요. 그걸 꺼내서 다시 정리한 거예요.

임성재, 변중희, 오민애 배우가 등장합니다. 이들과 함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유일하게 스스로 잘했다고 자부하는게 캐스팅이에요. 일단 성재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존경하는 배우예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처음 봤는데, 거기서 경찰들에게 현지 언어를 통역해주는 역할로 아마 한 신 나왔을 거예요. 그렇게 잠깐 나오는 데도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저는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신인 배우들은 그게 안 돼서 감독한테 많이 혼나거든요. 그런데 성재는 그걸 해내더라고요. 이후에 같이 영화를 찍을 때도, 이 친구가 특별 출연으로 나온 <자산어보>를 보면서도 똑같이 감탄했고 그래서 영화 연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무조건 얘랑 해야겠다 싶었어요. 변중희 선배님과 오민애 선배님도 작품을 보고 반해서 모셔온 거고요. 저는 영화가 진짜 같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연기였어요. 개성이 강하기보다 연기 진짜 잘하는, 진짜같이 하는 사람과 해야겠다 싶었는데 이 세 배우가 그런 사람들이에요.

작업하면서 배우의 면모가 드러난 적도 있나요? 배우들한테 디렉션 할 때 제가 연기를 많이 했어요. 사실 그러는 거 배우들이 안 좋아해요.(웃음) 자기 상상력을 빼앗기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하게 되더라고요.

이 프로젝트의 시작 시점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본인의 영화를 직접 만드는 이 일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냥 그때 시간이 됐어요. 작품 안 하는 시기였거든요. ‘why not’ 말 그대로 그런 마음이었어요.

 

손석구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화이트 셔츠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손석구 Givenchy 지방시

브라운 수트 지방시(Givenchy).

손석구 Loewe 로에베 COS 스니커즈 코스

핀스트라이프 셔츠와 블랙 팬츠 모두 로에베(Loewe), 스니커즈 코스(COS).

손석구

블랙 재킷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모든 작업을 마치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앞둔 지금은 어떤 마음인가요?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아요. 저는 관객들의 반응보다 함께한 배우들의 마음이 궁금해요. 제가 완성본을 파일로 미리 보냈어요. 그런데 다들 안 보고 부국제 가서 보겠다는 거예요. 사실 배우들은 본인이 출연한 작품이 썩 좋지않아도 말 못 해요. 그걸 알기 때문에 배우들이 보고 나서 부끄럽지 않은, 적어도 제가 의도한 대로 가짜 같지 않은 영화라는 생각을 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완성본을 미리 본 입장에서 영화에 대해 어떤 감상이 들었나요? 마음이 왔다 갔다 했어요. 사실 환경도 열악했고, 시간도 부족해서 편집을 하고 싶은 만큼 다 하지 못한 채로 보냈어요. 그날은 제가 낳은 자식을 발가벗겨서 내보낸 기분이었어요. 내 첫 영화가 이 정도로 끝나는구나 싶어서 되게 우울했죠. 그때 주변에서 색 보정하고 파이널 믹싱 하면 달라진다고 위로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었어요. 마무리 작업을 하고 많이 달라졌고, 지금은 별거 아닌 얘기지만 쉽게 읽히면서 진짜 같은, 원래의 의도가 어느 정도 보이는 느낌이에요.

감독으로서 영화에서 어떤 정서가 읽히길 바라나요? ‘여기엔 이런 메시지가 있구나, 감독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이렇게 의도를 살피며 보는 영화가 아니에요. 유튜브에서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보듯, 짧은 다큐 미니시리즈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 안에서 중요한 건 공감이고요. ‘쟤는 저러네. 나도 이런데’라거나 가족 중에 누구 하나가 생각난다거나. 그런 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길 바라는 거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박정민, 이제훈, 최희서 배우가 만든 영화까지, 총 네 편의 작품이 같이 공개됩니다. 다른 이들의 영화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듯해요. 제가 제일 잘 만들고 싶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하하. 아름답게 포장하는 게 아니라 제 영화를 포함해 네 편을 다 보니까 경쟁의식이 없어지더라고요. 다만 ‘저 영화엔 내 것에 없는 게 있네’ 싶은 부러움은 있죠. 그리고 다 똑같이 힘들게 어려운 여건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만나지 않았는데도 전우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 것만 묻히지 않는다면요.(웃음) 확실한 건 영화마다 감독이 보여서 각자 다른 톤 앤 매너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배우와 감독 모두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하는 방식은 달라요. 감독으로 임하면서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나요? 네.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그게 저에게 딜레마였어요. 저는 연기할 때 모르고 하는 게 제일 좋은 거라 생각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예전에 ‘저런 영화 왜 만들지?’ 했던 것도 영화 한 편 만들면서 이것저것 많이 알게 된 후에 보니까 대단해 보이는 거예요. 기술적인 부분을 알게 되니까 ‘이것도 좋은 거야, 잘 만든 거야’ 싶고, 싫다고 여겼던 게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그럼 영화에 대해 겸손해졌으니까 좋아진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어쨌든 예술을 하는 이유는 나만의 것을 하고 싶어서고, 그래서 공식을 두고 하고 싶지 않아요. 좋고 싫음이 모호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 어렸을 때 진짜 좋아했던 영화들을 다시 봐요. 거기에서 좋아하는 것을 넘어 저라는 사람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다음 작품을 연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주저 없이 영화를 만들건가요? 전 무조건 할 거예요. 원래는 작가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하고 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앞으로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 부족한 게 많았지만, 저의 정체성은 확고했어요. 저는 앞으로 우주를 그리든, 괴물이 나오든, 코미디든, 공포든 그 안의 핵심은 가족 관계를 담을 거예요. 그것 말곤 관심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 생각은 확실해요.

이제부턴 감독님이라 불러도 될까요? 배우일 땐 배우고 감독일 땐 감독이고, 호칭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은 배우죠, 감독 지망생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