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지옥행을 선고하고,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종교와 초자연적 현상을 소재로 새로운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지옥>에서 김도윤은 종교단체 새진리회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단인 ‘화살촉’의 리더 ‘이동욱’으로 분했다. <지옥>을 통해 새로운 연기에 도전한 그 앞에 지금껏 몰랐던 세계가 펼쳐졌다.
화보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요? 포즈를 자연스럽게 잘 취하던데요.(웃음) 아유, 아닙니다.(웃음) 사진 찍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신기했습니다.
<지옥>은 공개 전부터 ‘연상호 감독 표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죠.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간결하게 표현하면 미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맡은 인물은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캐릭터고요. 한마디로 미친 작품 속 미친놈인 거죠.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감탄하면서 봤어요. ‘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시나리오였어요. 분명 비현실적인데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화살촉은 인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해요. 이건 배우 김도윤이 지금껏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적 없던 모습이고요. 새로운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이 도전으로 느껴지기도 했나요? 저에겐 매 작품이 도전이에요. 항상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혼란스러워하고 헤매는데 정작 결정을 내릴 때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도전해버려요. 이번 작품에 임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극 초반부에는 거의 혼자 출연하기 때문에 확실히 부담이 있었죠. 더군다나 이렇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악인을 연기해본 적은 없으니까요. 이 정도로 극단적인 캐릭터는 처음이거든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를 내려놓고 임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도전 후에는 무엇이 남았나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무시무시한 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에요. 제가 평소에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않는데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이 찾아봤거든요.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젊은 친구들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만큼 매체가 다양해졌다는 방증이겠지만 동시에 이게 악용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무섭더라고요.
<지옥>을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 이유일 것 같아요. 맞아요. 작품을 찍으면서 진짜 현실 같다는 느낌이 더 짙어졌어요. 저는 보통 특정 이미지를 찾은 다음 캐릭터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각종 기사에 달린 댓글을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악플들. 악플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런 댓글을 남길 법한 사람들을 상상했죠. 물론 웹툰이라는 좋은 레퍼런스가 있었지만 최대한 현실에서 단서를 찾으려 노력했어요.
“연기에 대한 욕심은 늘 있었지만 빠른 속도를 욕심낸 적은 없어요. 주변을 돌아보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배우들이 많은데 재능만으로 연기를 할 수는 없더라고요. 전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러니 조급할 이유가 없죠.”
이 작품이 시청자에게 어떤 감상을 남기길 바라나요? <지옥>을 두고 심오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들 하더라고요. 굳이 그런 편견을 갖고 시청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사이다’라고 표현하는 종류의 쾌감은 아니지만 장르가 주는 짜릿함이 분명 있어요.
<지옥>은 <반도> <방법> <염력>에 이어 연상호 감독과 네 번째로 합을 맞춘 작품이에요. 연상호 감독과 작업한 경험이 연기를 대하는 태도나 방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요? 일단 저에게는 큰 은인이시죠. 제가 몰랐던 제 안의 모습을 끌어내주셨고, 이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분이니까요.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게 연기를 하는 데 큰 힘이 돼요.
이번에도 김도윤이라는 사람에게 내재하는 어떤 에너지를 보시고 이 광기 어린 배역을 맡겼을 테고요. 그렇죠. 화살촉의 리더로서 보여줘야 하는 광기는 제가 한 번도 연기로 풀어내본 적 없는 모습이거든요. 현장에서도 감독님의 디렉팅으로 막혔던 부분이 해결되는 경험을 자주 했어요. 편하지만 동시에 참 불편한 사람이에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느끼게 되는 불편함이 있잖아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오는 불편함이겠죠? 저한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시는 것 같진 않지만.(웃음) 믿고 맡겨주셨으니 누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데뷔했어요. 일찌감치 연기를 시작한 많은 배우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조바심이 날 때도 있었나요? 이상하게 그 부분에서는 조바심이 크지 않아요. 연기에 대한 욕심은 늘 있었지만, 빠른 속도를 욕심낸 적은 없거든요.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땐 돈 받고 연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꾼 적도 있어요. 서른 즈음에는 ‘상업 영화 한 편 출연하기’ 같은 걸 신년 목표로 세웠던 기억이 나요. 지금 이렇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저한테는 굉장한 행운이죠. 주변을 돌아보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배우들이 많은데 재능만으로 연기를 할 수는 없더라고요. 전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러니 조급할 이유가 없죠.
“연기할 때 최대한 잔꾀를 부리지 않으려 해요. 무작정 부딪히고 보는 거죠. 그러다 막히면 다시 용기를 내보고요. 이 자세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잔머리 쓰지 않고 무식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한 인터뷰에서 ‘늘 내가 배우를 해도 되는 건지 고민한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어요. 뚜렷한 확신이 서지 않음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그 고민은 지금도 거의 매일 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 계속 연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일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언젠가 내 연기를 보면서 숨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이런 기대를 품고 사는 거죠. 하다 보니 나름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올해로 배우로 일한 지 10년 차입니다. 10년 전 연기를 막 시작한 무렵과 지금은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이렇게 화보를 찍었다는 거?(웃음) 나이 들수록 자연스레 책임감이 더 생긴다는 것 말고는 딱히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엄청난 책임감을 갖고 인터뷰에 임하고 있어요.(웃음) 저라는 사람보다 환경이 많이 변하지 않았나 싶어요. 10년 사이에 결혼해서 아이도 생겼으니까요.
그렇다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늘 평가받는 직업의 특성상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겠죠. 평소 나를 돌보고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가요? 요즘 건강하게 연기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시간을 의식적으로라도 가질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사실 대중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 평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쉽게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배우도 사람인지라 좋지 않은 얘기를 들으면 타격을 입는 건 당연하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시 용기 내고 도전할 수 있는 자세는 꼭 갖춰야겠죠. 이번에 <지옥>으로 호감을 사기는 쉽지 않을 테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아요.(웃음)
배우로서 잃고 싶지 않은 태도나 마음가짐이 있나요? 학교에서 연극할 때 선생님께서 연기는 무식하게 하는 거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도 연기할 때 늘 이 말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잔꾀를 부리지 않으려 해요. 무작정 부딪히고 보는 거죠. 그러다 막히면 다시 용기를 내보고요. 이 자세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도 잔머리 쓰지 않고 무식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올 한 해 남은 시간 동안 꼭 성취하고 싶은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요? <지옥>이 좋은 반응을 얻는 거. 이 한 가지만 해내도 엄청난 성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