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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감독 전재연 출연 조민경, 임선우

나영(조민경)은 헤어진 남자친구가 일하던
봉제 공장에 대신 퇴직금을 받으러 간다.
그건 지긋지긋한 둘의 관계에 대한 퇴직금이다.
그곳에서 만난 공장 사장의 부인이라는,
어딘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 언니(임선우)를 만난다.

레이스 드레스 샴페인 앤 스트로베리(Champagne & Strawberry), 블레이저 큐컴버스(Qcumbers), 슈즈 셀린느(Celine).

배우의 시작 연기는 늘 좋아하고 궁금한 대상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취미로 연기를 배우던 때에 어느 순간 스스로 알게 됐다. 내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궁금해지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생각이 늘 거기에 가 있는 일이 연기라는 것을. 연기를 하기 위해 내가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혼자 뛰어내리는 것 같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렇게 시작해야만 했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감독님이 자기 삶으로 쓴 영화 같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라는 대사에 크게 공감했는데 나 역시 목이 마른 채로 살았다. 늦게 연기를 시작하기도 했으니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조급하고 초조했다. 연기를 하며 즐겁기도 했지만 이 갈증이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그 시기에 영화 <퇴직금>을 만났다.

영화 <퇴직금> 4년 전 전재연 감독의 첫 단편을 함께 작업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작품인데 감독님이 새 단편을 준비하며 다시 내게 연락을 주신 거다. 제안받은 역할이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족 여성인데 여성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물 자체가 너무 좋았다. 영화가 아니라면 가보지 못했을 봉제 공장에 가고, 그 인물로 살기 위해 촬영 전 짧게나마 재봉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접촉이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경험하는 것들이 삶에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변화를 주진 않지만 나를 보다 풍요롭게 한다는 점에서 배우로 사는 일이 즐겁다.

타인이 되는 일 연기를 하고 난 뒤에도 맡은 역할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나도 나를 모르는 데,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타인이지 않나. 어느 순간 내가 맡은 역할을 속속들이 다 알고 싶다는 것이 욕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중요한 것 같다. 적어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궁금해지고,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번 가까이 다가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인물과 이야기에 끌린다.

사람이 보이는 영화 영화 안에서 사람이 보이는 순간이 좋고, 어떤 매력적인 배우를 알게 되는 영화도 좋아한다. 언제 내 마음이 움직일까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났을 때도, 이미지에 매혹됐을 때도 아닌 것 같다. 어떤 삶의 진실과 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마음이 움직인다. 예술도 영화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지 않나. 삶의 진실에 닿아 있는 어떤 순간이 보이는 장면을 기다리며 계속 이 일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