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W PLAYING
<컨버세이션>
감독 김덕중 출연 박종환, 조은지
승진(박종환)과 은영(조은지)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장면마다 등장해
추억과 젊음, 연애와 사회, 혹은
아주 소소한 소재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언어와 리듬으로 대화를 나눈다.
영화 <컨버세이션> 다양한 형태의 대화가 등장한다. 구조적인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이나 개념이 불분명하고, 동시에 파편화돼 있다는 점에서 영화적 즐거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매력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만약 1백 명의 관객이 영화를 본다면 1백 가지 방향으로 보일 작품이다. 영화 후기 중에 ‘레고를 던져주고 가지고 놀아보라고 하는 영화 같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는데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조립을 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속 대화 형태를 가만히 따라가보면 어느 순간 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일종의 놀이 같더라. 시시각각 장소마다 다른 대화의 장에 내가 옆에 껴서 듣는 것 같고, 또 같이 듣던 사람이 그 대화가 재미있어서 촬영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 <절해고도> 이번 서독제에서 영화 <절해고도>도 상영된다. 고등학생 딸을 둔 역할로 대사 중에 ‘나도 지금의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연기한 윤철은 살면서 여러 사건과 사람을 받아들이며 산 사람 같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해온 사람 같다. 모두가 노력하며 살아가지만, 윤철의 노력은 내가 하고 싶은 노력이다. 내게 찾아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 때 거기에 또 맞춰서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노력 말이다.
보물찾기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 해온 경험을 미루어 보면 영화 작업은 보물찾기 같다. 최초의 창작자, 즉 연출가가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이후 그 이야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여 창작자가 심어놓은 보물을 찾는 거다. 그 과정에서 각자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선물처럼. 숨겨놓은 것의 형태나 성질이 처음과 달라져 있기도 하고, 또 누가 발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설계자도 자신이 숨겨놓은 걸 궁금해 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기대하지 못한 뭔가를 찾기도 하는 것 같다.
연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금도 내가 연기와 친밀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배우로서 수행해야 할 것을 숙지하고 현장에 가지만 현장에는 늘 변수가 있고, 나는 그 변수들이 반갑고 설렌다. 그 기대와 흥분으로 주어진 연기를 수행하지 못할 때도 있어서 때때로 연기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아마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기본적으로 내가 해내야 할 것과 변수를 즐기는 마음이 잘 융화되는 것이겠지. 그럼 연기가 더 정교해질 것 같다.
언제 봐도 반가운 배우이고 싶다. 기쁠 때와 슬플 때, 절망할 때, 외로울 때 언제고 나를, 작품 속의 내 연기를 다양하게 떠올릴 수 있는 배우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