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나은 발렌티노가라바니 포츠1961 Ports1961

톱과 스커트 모두 포츠 1961(Ports 1961), 슈즈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손나은

손나은 엠포리오아르마니

재킷, 팬츠, 이어링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안에 입은 탱크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손나은 로저비비에 와이씨에이 에르마노피렌체

뷔스티에, 코르셋, 스커트 모두 와이씨에이치(YCH), 니트 스웨터 에르마노 피렌체(Ermanno Firenze), 부츠 로저 비비에(Roger Vivier).

손나은

레더 톱 준지(Juun.J), 팬츠 리리(LEE y.LEE y).

포츠1961 손나은 Ports1961

포츠 1961(Ports 1961).

오랜만의 인터뷰 화보 촬영이죠? 드라마 촬영만 하다 보니까 이렇게 풀 세팅을 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조금 적응이 안 되고 설레기도 해요. 얼마 전에 시상식에 다녀왔어요. ‘나 아닌 것 같아’ 했지만 기분 전환이 됐어요.

드라마 <인간실격>이 끝을 향해 가고 있죠. 촬영은 모두 마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은 <고스트 닥터>라는 새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요. <인간실격>을 모니터링하면서 새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지 작품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모니터링하면 기분이 어때요? 가수 활동을 할 때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아직은 제가 나오는 장면을 마음 편히 잘 못 보겠어요. 그래도 봐야 어떤 점이 부족하고 고쳐야 할지 알게 되니까 요즘은 집중해서 보려고 노력해요.

드라마 <인간실격>의 어떤 점이 좋아서 그 안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을 처음 볼 때부터 새로웠어요. ‘이게 뭐지?’ 하면서 빠져들어 읽었죠. 대사 하나하나, 지문 하나하나 와닿는 말이 많았거든요. 극 전체 분위기도 특별하고 캐릭터들도 저마다 매력을 지니고 있고요. 게다가 감독님과 작가님, 함께 연기할 선배님들까지… 안 할 이유가 없었죠. ‘민정’이라는 역할을 꼭 하고 싶다.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민정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어려웠어요. 민정이는 어떤 아이일까, 왜 이럴까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그게 민정이인 것 같아요. 좀처럼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때로는 아무 생각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없는 아이는 절대 아니에요. 어린 나이에 긴 시간 동안 아픈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그게 굳은살처럼 박인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는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무심해 보이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그 안에는 아픔과 외로움, 쓸쓸함을 지닌 위태로운 청춘 같아요. 같은 경험을 한 건 아니고 성격도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니까. 자신의 현실과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은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인물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어요? 그런 건 있어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보게 돼요. 연기할 때 참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 흉내 내보기도 하고.(웃음)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는 구나, 그래서 저런 말을 한 거구나,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죠. 연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그 인물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 들고, 제 감정의 폭도 넓어져요. 제가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인턴 의사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의학 용어를 공부하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기도 하거든요. 근데 이런 것 자체가 평생 못 해볼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걸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 주는 것들이 좋아요.

나은 씨, 잘하고 싶은가 봐요.
잘하고 싶죠. 잘해야죠.

때로는 본인의 의욕이 지나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그런 점에서 마음을 조절해야 할 때가 있고요. 하지만 나은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수 활동을 하며 조금 단련돼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욕심이라기보다는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 쪽에 가까워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은 거여서 일에 대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 성격이 원체 그렇기도 하고요. 뭘 어떻게 빨리 해내야지 하기보다는 흐름을 따라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 편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마음만 앞서면 주변을 보지 못하고, 내가 가진 좋은 면이 안 보일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자리에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여유를 갖는 게 때로 어려운 일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를 갖길 원하지만 쉽지 않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존감이 높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요. 근데 그건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작은 일에도 만족하는 성향 덕분인 것 같아요. 가수나 배우나 시작할 때에는 작은 것부터 꾸준히 해왔는데, 그때마다 작은 역할에 불만을 갖거나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하다 보면 점점 더 큰 것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흘러오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가수 활동은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는 반면 배우는 작품마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죠. 그 환경의 차이에서 느끼고 배우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가수 활동을 한 시간이 길었고, 늘 멤버들과 함께해왔기 때문에 저에게는 안식처 같은 느낌이 있어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새로운 작품의 현장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고 가까워지는 데 어려움이 없진 않은데, 지금은 그 상황을 즐기려고 해요.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감도 있지만 그 또한 저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와서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어요.

데뷔 10주년이 지났죠. 본인이 지닌 어떤 면이 그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해요? (오래 생각한 뒤) 어릴 때 데뷔해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지만, 스스로 엄격하게 관리해온 시간들이 있었어요. 가수 활동 중에 밤새워 연습하고 쉼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운동하러 갔었어요. 힘들고 쉬고 싶을 때도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다잡은 것 같아요. <인간실격>에서 박지영 선배님이 연기하신 ‘아란’의 대사 중에 너무 좋아서 사진으로 찍어둔 게 있어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잖니. 하기 싫은 걸 잘해야 그때부터가 진짜지.” 이 말이 마음 깊숙이 와닿았어요. 때때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버티고 견뎌온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동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가족이요. 엄마가 굉장히 긍정적이세요. 제 정신적 지주고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에요. 모든 것을 상담하고 상의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요.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요. 같이 살고 있는데도 밖에 나오면 엄마랑 계속 연락해요. 되게 마마걸 같으네.(웃음) 엄마가 없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마무리할까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본인이 지금 지닌 어떤 면을 잘 지켜가고 싶어요? 얼마 전 가까운 분에게서 제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 편인 것 같아요. 이 역시 엄마의 영향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제 속도로 중심을 잘 잡으며 나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