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인터뷰 화보 촬영이죠? 드라마 촬영만 하다 보니까 이렇게 풀 세팅을 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조금 적응이 안 되고 설레기도 해요. 얼마 전에 시상식에 다녀왔어요. ‘나 아닌 것 같아’ 했지만 기분 전환이 됐어요.
드라마 <인간실격>이 끝을 향해 가고 있죠. 촬영은 모두 마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금은 <고스트 닥터>라는 새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요. <인간실격>을 모니터링하면서 새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지 작품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모니터링하면 기분이 어때요? 가수 활동을 할 때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아직은 제가 나오는 장면을 마음 편히 잘 못 보겠어요. 그래도 봐야 어떤 점이 부족하고 고쳐야 할지 알게 되니까 요즘은 집중해서 보려고 노력해요.
드라마 <인간실격>의 어떤 점이 좋아서 그 안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을 처음 볼 때부터 새로웠어요. ‘이게 뭐지?’ 하면서 빠져들어 읽었죠. 대사 하나하나, 지문 하나하나 와닿는 말이 많았거든요. 극 전체 분위기도 특별하고 캐릭터들도 저마다 매력을 지니고 있고요. 게다가 감독님과 작가님, 함께 연기할 선배님들까지… 안 할 이유가 없었죠. ‘민정’이라는 역할을 꼭 하고 싶다. 잘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민정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어려웠어요. 민정이는 어떤 아이일까, 왜 이럴까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그게 민정이인 것 같아요. 좀처럼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때로는 아무 생각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없는 아이는 절대 아니에요. 어린 나이에 긴 시간 동안 아픈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그게 굳은살처럼 박인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는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무심해 보이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그 안에는 아픔과 외로움, 쓸쓸함을 지닌 위태로운 청춘 같아요. 같은 경험을 한 건 아니고 성격도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니까. 자신의 현실과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은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 인물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어요? 그런 건 있어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보게 돼요. 연기할 때 참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 흉내 내보기도 하고.(웃음)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는 구나, 그래서 저런 말을 한 거구나,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죠. 연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그 인물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 과정에서 하나하나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 들고, 제 감정의 폭도 넓어져요. 제가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인턴 의사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의학 용어를 공부하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기도 하거든요. 근데 이런 것 자체가 평생 못 해볼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그걸 공부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 주는 것들이 좋아요.
나은 씨, 잘하고 싶은가 봐요. 잘하고 싶죠. 잘해야죠.
때로는 본인의 의욕이 지나쳐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그런 점에서 마음을 조절해야 할 때가 있고요. 하지만 나은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수 활동을 하며 조금 단련돼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욕심이라기보다는 그저 잘하고 싶다는 마음 쪽에 가까워요. 많은 일을 해보고 싶은 거여서 일에 대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 성격이 원체 그렇기도 하고요. 뭘 어떻게 빨리 해내야지 하기보다는 흐름을 따라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 편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마음만 앞서면 주변을 보지 못하고, 내가 가진 좋은 면이 안 보일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자리에 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여유를 갖는 게 때로 어려운 일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를 갖길 원하지만 쉽지 않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존감이 높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요. 근데 그건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작은 일에도 만족하는 성향 덕분인 것 같아요. 가수나 배우나 시작할 때에는 작은 것부터 꾸준히 해왔는데, 그때마다 작은 역할에 불만을 갖거나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하다 보면 점점 더 큰 것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흘러오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믿어요.
가수 활동은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는 반면 배우는 작품마다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죠. 그 환경의 차이에서 느끼고 배우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가수 활동을 한 시간이 길었고, 늘 멤버들과 함께해왔기 때문에 저에게는 안식처 같은 느낌이 있어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새로운 작품의 현장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고 가까워지는 데 어려움이 없진 않은데, 지금은 그 상황을 즐기려고 해요.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감도 있지만 그 또한 저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와서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어요.
데뷔 10주년이 지났죠. 본인이 지닌 어떤 면이 그 시간을 지나 지금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해요? (오래 생각한 뒤) 어릴 때 데뷔해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지만, 스스로 엄격하게 관리해온 시간들이 있었어요. 가수 활동 중에 밤새워 연습하고 쉼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운동하러 갔었어요. 힘들고 쉬고 싶을 때도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다잡은 것 같아요. <인간실격>에서 박지영 선배님이 연기하신 ‘아란’의 대사 중에 너무 좋아서 사진으로 찍어둔 게 있어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잖니. 하기 싫은 걸 잘해야 그때부터가 진짜지.” 이 말이 마음 깊숙이 와닿았어요. 때때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버티고 견뎌온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동력이 뭐라고 생각해요? 가족이요. 엄마가 굉장히 긍정적이세요. 제 정신적 지주고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에요. 모든 것을 상담하고 상의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요.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요. 같이 살고 있는데도 밖에 나오면 엄마랑 계속 연락해요. 되게 마마걸 같으네.(웃음) 엄마가 없었으면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마무리할까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본인이 지금 지닌 어떤 면을 잘 지켜가고 싶어요? 얼마 전 가까운 분에게서 제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변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는 편인 것 같아요. 이 역시 엄마의 영향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제 속도로 중심을 잘 잡으며 나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