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솔로 음반 <Chocolate Box>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시원섭섭해요.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새벽부터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거나 라이브에 대한 부담감 같은 거예요. 다행히 큰 실수나 문제 없이 해낸 데 대한 뿌듯함이나 개운함이 있어요. 반대로 요즘은 음악 소비 주기가 워낙 빨라서 2주만 지나도 꽤 오래된 노래가 되어버려서, 준비하는 과정에 비해 선보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더라고요. 꽤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코로나19로 팬과 만날 기회나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아쉽고 섭섭해요. 어쩔 수 없죠. 추세가 그러면 받아들이고, 다시 재정비해서 더 나은 좋은 음반을 만들어야겠죠.
아쉬운 마음에 정규 음반이라는 이유도 포함될까요? 12곡이나 들어 있는, 솔로로서는 첫 정규 음반인데요. 물론 그런 이유도 있죠. 12곡을 모으고, 녹음하고,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 짧게 활동이 끝날 정도로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정규 형태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번 음반의 목적은 <Chocolate Box>라는 이름처럼 듣는 사람이 받아봤을 때 무언가가 가득 차 있는 선물 같다고 느끼게 하는 거였어요. 솔로 활동 자체가 오랜만이기도 하고, 그래서 제 목소리로 가득 찬 좋은 음반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원래는 12곡보다 더 넣으려고 했어요.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조금 어려운 길을 택한 거죠. 후회는 없어요.
음반명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른단다”에서 착안한 거라고요. 인생도 그렇지만, 음악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 곡을 다 듣기 전까진 자신이 어떤 걸 선택한 건지 모르잖아요.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바란 게 있다면, 12곡 중 취향에 맞는 곡이 꼭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동시에 내 취향이 아닌 맛 중에서도 먹어보고 ‘생각보다 맛있네’라는 생각이 들길 바랐고요. 그래서 다양한 맛을 넣었습니다.(웃음)
‘Dry Flower’, ‘꽃샘’, ‘Good Morning’ 등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5곡이 눈에 띕니다. 다른 아티스트가 만든 곡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제 이야기를 많이 담고 싶었어요. 그동안 공들여 써놓은 곡 중에 제 생각이나 감정이 잘 담긴 5곡을 골라 넣었어요. ‘꽃샘’은 광화문에서 꽃샘추위를 견디며 군복무를 하던 시절에 느꼈던 감정을 담은 곡이고, ‘나만’은 팬의 DM에서 시작한 곡이에요. 한 팬에게 나만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힘들다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분께 노래로 답장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만든 거예요. 이 외에도 제 생각이 담긴 곡이 많아서 나중에 다시 들었을 때, ‘내가 그랬구나’라며 지금을 회상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떤 이유로든 의미 있는 음반이겠네요. 잘 보관해둬야겠는데요. 커버가 세 가지 버전인데, 지금은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나란히 전시해놨어요. 그런데 아마 하이라이트의 새 음반이 나오면 살짝 뒤로 밀려날 거예요. 역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하하.
이제 또 다음을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요. 매번 초콜릿 박스를 열 듯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른 채로 음악을 만들고 준비해야 하는, 이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즐기려고 해도 부담감은 있어요. 잘하고 싶고 그래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듣는 이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거예요. 새로운 음악을 들려줄 때마다 어김없이 부담감과 중압감이 찾아와요. 특히 공개하기 몇 시간 전이 되면 ‘이게 맞겠지? 이대로 나가도 괜찮을까?’ 하며 스스로 의심하기도 해요. 돌이킬 수 없을 때 그런 마음이 극에 달하는 것 같아요.
그럴 땐 뭘 해야 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요. 연습실에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안무 연습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다른 방법으로 확신을 주려고 해요. 무대에서 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려는 거죠. 사실 이 음악이 사랑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제 손을 벗어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라이브를 더 잘하고, 무대 완성도를 높이는 건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니까 오히려 그쪽에 신경을 쓰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중압감을 내려놓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첫 무대를 끝내고 나서요. 공개가 되고 어떤 반응이 왔을 때보다 무대를 잘 마치고 내려왔을 때, 잘 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돼요. 이번에도 그랬어요.
확신 없는 세계에서 한 가지만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떤 걸 알고 싶나요? 내가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까? 매번 생각하는 질문이에요. 노래가 너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새로운 뮤지션이 한 주에도 몇 팀씩 나오잖아요. 물론 저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분들을 위해 노래할 생각이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추세 속에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없어지지 않는 듯해요. 그런데 이게 불안감은 아니에요. 그냥 더 오래하고 싶은 마음에 드는 궁금증인 거죠.
이제 한동안은 충전의 시간이겠죠? 다시 일상을 찾는 중이에요. 활동하는 2주 동안 쌓인 집안일을 하고, 운동도 가야죠. 틈틈이 SNS에서 라방이나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로 팬들과 소통도 하고요.
SNS를 살펴보니 소통하는 시간을 꽤 자주 갖던데요. 내 음악을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이들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일까요? 책임감은 아니고,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행동이에요. 제가 밖에서 만나는 친구가 거의 없어요.(웃음)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중간중간 제 얘기도 할 수 있는 게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떤 단어나 주제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건네는 말들 속에서 저를 돌아보기도 하고요.
최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나요? 얼마 전에 영상통화 형태의 팬 사인회를 몇 번 했어요. 거기서 한 분이 ‘못해도 된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게 지금도 맴돌아요.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혹독했던 것 같아요. 이번 활동에서도 음정 하나 잘못 낼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오늘 잘했으면 내일 더 잘해야 된다고 몰아세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반대로 고민 상담도 많이 해주던데요. 생각보다 DM이나 무물로 자기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봤는데, 어딘가에 말하는 것만으로 위안받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싶어요. 오히려 그런 마음은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럴 때 제가 대나무 숲이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저 팬들과 소통하는 창구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의외의 순기능을 발견하게 됐어요. 가끔은 맘 편히 말하라고 일부러 무물 창을 띄워놓기도 해요.
그 와중에 선 넘는 조언도 있던데요. 월요병을 이길 방법을 묻는 질문에 ‘일요일에 잠깐 가서 업무를 하라고 뉴스에서 그러던데…’라는 답을 남겨서 논란이 됐습니다. 해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웃음) 그건 제가 단단히 잘못했습니다. 무물이 각성의 기능도 있어요.(웃음) 그 이후로는 위로나 조언의 말을 할 때마다 조심하고 있어요. 정정할게요.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양쪽 모두 배우고 얻는 것이 있으니, 궁극의 소통 방식이네요. 맞아요. 일방적으로 한쪽에서만 쏟아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조언과 헛소리 많이 주고받으면서 지낼 생각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