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튜디오에 도착한 후 긴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잘랐어요. 평소에도 이만큼 즉흥적인가요? 맞아요. 사진 촬영할 때 입을 의상에 단발이 제격일 것 같더라고요.
잘 어울려요. 금요일 밤에 촬영과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네요. ‘불금’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음악을 넣어두는지 궁금해요. 최근엔 지바노프의 ‘We (OUI)’ 솔로 버전을 자주 들어요. 집에서 혼자 재즈 바 분위기를 내기에 좋거든요.
박지민이 아닌 제이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젠 제이미가 더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가족과 친구들은 저를 예전부터 지민이가 아닌 제이미로 불러주었어요. 그래서 대중이 저를 제이미라고 불러줄 때 더 친근한 기분이 들어요.
최근 활동을 짚어보면 지난 9월 ‘Numbers’의 영어 버전인 ‘No Numbers’를 공개했고, 11월에는 데이비드 게타와 협업한 ‘Family’ 리믹스 버전이 발매되었어요. 국내를 넘어 국제 무대로 나아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국제 무대를 노린 건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도 음악 활동을 하고 싶어요. 활동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고 해요. 영어가 익숙하고 성격도 외향적이라 어디서든 잘 활동할 수 있을 듯해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나요? 처음엔 낯을 좀 가려요. 그래서 오히려 첫 만남을 즐겨요. 제가 유일하게 내성적으로 변하는 순간이거든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친해져 있더라고요. 외동딸이라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곁에 사람이 많을수록 신이 나요. 밖에 나가 놀다 보면 연예인이다 보니까 알아보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아요. 오히려 함께 놀려고 하죠.
솔직한 편인가 봐요. 네. 그게 저의 단점이자 장점이에요. 가끔씩은 돌려 말할 필요도 있는데, 전 항상 직설적이거든요. 이런 성격이 음악에도 묻어나요. 비유적인 가사보다는 ‘난 널 되게 좋아했는데 넌 그렇지 않았어’ 하는 식으로 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공감해주더라고요. 저의 음악이 막혀 있던 누군가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음악을 통해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결국 진심이에요. 그래서 음악 안에선 언제나 솔직하려고 해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각 곡의 색깔에 맞춰 카멜레온 같은 음악이 완성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죠. 그 때문인지 오웰무드, pH-1, 치타 등 여러 아티스트 곡의 피처링을 맡았어요. 피처링은 제가 들어봤을 때 좋은 음악이라고 느껴지면 해요. 협업을 제안한 아티스트의 색에 저의 색을 살짝 얹는 느낌이라 각 피처링 작업을 통해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죠. 혼자 할 때 나오지 못할 가사를 쓰거나 다른 장르의 음악에 도전하면서요.
언젠가 본인의 음악에 피처링 요청을 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누구예요? 정말 많은데, 한 명만 꼽자면 리한나요. 그의 음악에 제 목소리가 1초만 들어가더라도, 화음만 살짝 넣더라도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리한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건넬 거예요? 일단 놀란 마음을 추스른 후, 그의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진중하게 이야기할 거예요. 리한나가 없었다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의 곡들이 제이미가 음악을 시작하는 데 영향을 끼쳤나요? 그럼요. 부모님의 영향도 있어요. 아빠는 밴드 보컬로 잠깐 활동하셨고, 엄마는 한때 가수의 꿈을 키운 적이 있어 저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배웠거든요. 그러다 보니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제가 무얼 하더라도 열정적으로 지지해주시는 분들이에요. 개인적으론 두 분이 노래를 계속하시기를 바라요.
내년이면 데뷔 10년 차를 맞이해요.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쉬운 일은 분명 아닐 텐데요. 오랜 기간 활동했다고 딱히 힘들진 않아요. 신곡을 발매할 때마다, 시작하는 마음은 항상 100%로 충전되어 있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주하는 새로운 감정들이 음악 안에 자연스레 표현돼요. 평소 감정의 진폭이 커 엄청난 희열을 만끽하기도 하고, 우울할 땐 한참 동안 눈물을 쏟기도 해요. 하지만 그게 부끄럽진 않아요. 오히려 당연하다고 보고, 감정을 이렇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아요.
특정 시기의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제이미가 그동안 발매한 음악도 본인에게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해요. 모든 앨범이 저의 기록이에요. 당시에는 ‘난 이것만 할 거다’ 하면서 앨범을 발매했는데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것들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대할 때 어떠한 단정을 짓거나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도 10년 뒤에 돌이켜보면 달라질 수 있겠죠.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나요? 네.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전혀 그러지 않아요.(웃음) 사람은 도전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패도 두렵지 않고요. 무언가 잘 안 풀릴 때면 실패라고 여기지 않고 ‘나는 다른 걸 더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곡 작업을 하는 과정엔 어떤 변화가 생겼어요? 음악에서는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요. 호흡이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편이라 녹음을 할 때면 굉장히 예민해져요. 그런데 요즘은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진 말아야겠다고 느꼈어요. 스스로 즐기기 위해 음악을 시작했으니까요.
잊을 수 없는 무대 위의 순간이 있다면요? <K팝스타> 시즌 1 마지막 무대요. 생방송 무대에 올라 울면서 ‘You Raise Me Up’을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아쉽죠.
지금 그 무대를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2년 전쯤만 해도 지인들이 당시의 제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말렸어요. 그래도 최근엔 종종 그때 노래를 찾아 들어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해 순수하게 부르던 마음을 다시 떠올릴 수 있거든요.
요즘 제이미를 비롯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이 많죠. 이들이 가진 공통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공통점이 없어요. 그래서 더 특별해요. 각자의 개성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게 참 멋있어요. 서로의 행보를 보면서 긍정적인 자극을 받기도 하고요. 제 또래 여성 뮤지션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가 그들을 리스펙트하는 만큼 그들도 절 그렇게 봐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에 걸맞은, 더 멋진 뮤지션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죠.
2021년이 끝나가고 있어요. 스물다섯, 제이미의 한 해는 어땠나요? 새 음악을 선보이지 않은 게 아쉽지만 피처링 작업 등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꽤 괜찮은 1년이었고, 내년이 더 기대돼요. 팬들에게 곧 컴백할 거라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정말 좋은 음악을 만났는데,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하게 들어서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녹음을 전부 마친 후 설레는 마음으로 발매일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무엇이 제이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나요? 저에게 영감이 되어주는 건 언제나 사랑이에요. 모든 일은 사랑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난다고 생각해요. 예술 분야라면 특히 더 그렇고요.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예술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랑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사랑을 주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어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뻐요. 충분한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음악일 거예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음악을 들으면 더 행복해지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