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에서 연기한 ‘박정자’란 인물은 마지막 장면을 그야말로 찢어버렸어요. 끝이자 시작이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짐작케하죠. 완성본을 보고 나니 이 인물이 <지옥>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와닿았어요. 박정자라는 존재가 제대로 서 있어야 시청자들이 극에 보다 잘 몰입하고 ‘지옥’이 지니는 세계관의 로직이 제대로 성립하겠더군요. 대본으로만 접했을 때는 박정자가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정도로만 여겼어요. 그런데 연상호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박정자가 시연받을 때의 연기가 지옥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었다”라고 언급했는데, 아마 이런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죽음 앞에 선 인간, 그리고 그 공포를 맞닥뜨린 인간들이 어떻게 대응할지, 어떤 인간성으로 이 사태에 직면할지를 박정자라는 인물을 통해 아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 해요.
박정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라면 최소한 지키고 싶은 수오지심마저 포기한 인물이에요. 모성을 표현하려고 하기보다는 박정자를 어떤 운명 앞에 선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애쓰는 인간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살아서 아이들을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것을 다 해냄으로써 아이들을 지켜낸 거예요.
두려움 앞에 선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한편, 과연 누가 죄를 정의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기도 해요. 지옥에 가는 조건을 누가 정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생기고요. 작가님이 다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지옥이란 종교나 사회가 만들어낸 개념인데, 그 개념이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실체화되며 그 앞에 선 인간들에게 질문하잖아요. 인간됨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지옥>은 결국 이를 끊임없이 묻게 하는 작품이죠. 그 안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세계에서 인간됨에 대해 답하고요.
<지옥>의 마지막 장면은 모든 것을 뒤엎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장면 자체도 마치 애크러배틱 같은 움직임이어서 인상적이었어요. 유해에서 사람 몸으로 넘어오는 단계까지는 무용수가 표현했고, 맨몸이 된 이후의 움직임은 제가 직접 연기했어요. 그 두 부분이 연결되는 모습이 잘 편집되었죠.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서 신나게 촬영한 장면이에요. 지옥의 사자들에게 시연당하는 장면도 재미있었고. 촬영 현장에 물리적인 것들이 최소한만 있고, 여러 디렉션을 통해 상상하며 연기하는 생경한 경험이 즐거웠어요.
<마리끌레르>의 지난 ‘젠더 프리’ 인터뷰 때도 함께하셨죠. 당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다 다양한 인물이 존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매체 연기를 점점 많이 하며 그 바람이 이뤄지고 있나요? 드라마는 연극에 비해 현실을 재현하는 부분이 커요. 일상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클리셰가 담긴 인물도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죠. 다만 배우로서 좀 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라요. 드라마 <괴물> 작가님이 ‘젠더 프리’ 때 제 인터뷰 기사를 읽고 ‘오지화의 대사를 통해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를 대사에 담았는데, 배우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가닿을 수 있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손 편지를 써주셨어요.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죠. 여전히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소재의 드라마가 많아요. 현실에서 그런 사건이 많더라도 드라마의 셋업 소재로만 머물지 않기를 바라요. 그런 현실을 보는 관점이 다각화되기를 기대합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리라 기대해요. 새로운 프레임을 누가 더 빨리 선점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할 테니 그런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저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당신의 연기를 처음 본 건 연극<비평가>때였어요. <비평가>의 드라마투르기가 마리끌레르의 영상 프로젝트인 ‘젠더 프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여성 배우들이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으로 극을 구성했다고 했죠. 그 후 <마우스피스>의 ‘리비’가 된 모습을 보았어요. 마리끌레르와의 첫 인터뷰 때는 연극이 아닌 드라마 <괴물> 촬영 중이었고, 그 뒤로 많은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드라마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연극에 적용해오던 내 기준과 방식을 매체 연기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고, 어떤 부분에서 타협해야 하는가 하는 갈등이 있었어요. 지금은 일단 새로운 세계의 방식이나 접근법 혹은 매체 연기의 관점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보려고 해요.
현재 <마리끌레르>에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연재 중이죠. 에세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프롤로그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30대의 나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40대의 나는 뭔가 계속 기존에 해왔던 것을 반복하는 느낌이다.’ 매체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드나요? 새로운 것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40대에 접어든 지금, 여전히 뭔가 내가 과거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마흔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제 감각에서는 어떤 한 시대가 이미 저물었다는 생각도 들었죠.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했음에도 저는 아직 새롭게 찾아온 세계에서 쓸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자꾸 옛날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 여전히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진 못했어요. 다만 전에는 절박하게 페이지를 딱 넘겼는데 거기에 쓰인 글자를 못 읽게 된 것 같았다면 이제는 다음 페이지를 잘 읽을 수 있도록 더듬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지금은 훨씬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가고 있어요. 과거에는 무지에 당면했을 때 당혹스러웠다면, 이제는 그 무지를 한 발 한 발 어떻게든 더듬으며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이제 막 더듬기 시작한 셈이죠.
무엇을 통해 탐색하고 있나요? 동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스터디도 해요. 책도 많이 읽고 예술계의 다른 분야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토론도 하고, 좋은 강의를 찾아다니기도 하고요. 때론 집에서 남편과 밥 먹는 시간이 그런 탐색의 시간이 되기도 해요. 지금처럼 기자님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도요. 사실 <마우스피스>의 리비가 그런 점에서 초연 때와 다르게 닿은 점이 있어요. 2020년 초연 때에는 이 이야기가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가에 대해 말했죠. 대상화의 문제점에 대한 극이기도 했지만 제게는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가짜를 관통해서 진짜에 닿아야 한다는 생각. 예를 들어 우리는 환경을 위한 실천 중 하나로 에코백을 들지만, 때론 에코백 자체로 인해 오히려 자본주의에 포섭될 때도 있죠. 자본주의를 벗어나려고 해보지만 결국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거예요. 어떻게든 그 굴레를 벗어나려고 하지만 시스템 안으로 포섭되는 세계를 내가 긍정할 것인지, 혹은 돌파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에 의문이 들었어요. 진짜와 가짜,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주체와 대상, 작가와 작품이라는 모든 이분법이 사실은 다 무효한 것이며 그것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거죠. 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 실패했을 때, 그 붕괴된 세계 앞에 선 인간, 완벽한 무지 상태의 인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2021년의 리비에게는 그런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이 시대에 맞는 연기법이 무엇인지 계속 답을 찾는 중이에요. 관련 내용으로 스터디도 하고 있고요. 굉장히 흥미롭게 공부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연기로 구현된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설명하기에 굉장히 복잡하지만 전 이런 것들을 탐색하는 걸 즐겨요.
공부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하고 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도 다녀왔죠. 2004년에 대학로에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하는 거예요. 갑자기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학업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죠. 즉흥 메소드 연기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다녀왔어요. 무언가를 시도할 때 막연한 순간이 있는데, 그런 때 공부가 하나의 길라잡이가 되어줘요. ‘연기’라는 것은 평가의 기준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여러 길라잡이들이 있으면 훨씬 유용하죠.
자신을 배우 창작자이자 워크숍 리더라고 소개하기도 하죠. 무슨 의미가 담겨 있나요? 연극 쪽에서 저를 소개할 때 그렇게 말하곤 해요. 한 작품에서 연출이나 극작가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배우 역시 창작자로서 지분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요. 외국에서는 실제로 ‘액터 크리에이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요. 연극계에서는 이제 배우도 크리에이터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요. ‘워크숍 리더’라는 용어는 2006년에 워크숍이라는 걸 처음 경험한후 사용하게 되었어요. 극단 노뜰의 주최로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국제무대예술워크숍페스티벌’에 여러 국가에서 온 예술가들이 참여했죠. 다양한 장르의 워크숍에 참여하며,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법론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시간이 굉장히 가치 있고 많은 영감을 주었죠. 그래서 저도 그런 워크숍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워크숍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장이 아니라 능숙하지 않음에도 서로 영감과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예요. 지금도 여전히 기회가 될 때마다 워크숍에 참여하고 싶고, 어떤 화두가 생기면 제가 직접 열기도 해요.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계속 그렇게 탐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요? ‘인스파이어(inspire)’라는 단어에는 ‘숨을 들이마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영감’은 결국 숨을 들이쉬게 하는 것이고, 그건 곧 생명을 의미하죠. 숨을 쉬며 색다른 눈으로 새로운 정신을 다시 보게 하고, 감각을 깨우며 그렇게 생명력을 갖게 하는 일이 영감을 주는 일인데 예술이 그런 일이 아닐까 해요.
무엇이 계속 탐색하고 연기하게 하나요? 음. 저는 배우라는 존재가 사람이 이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몸으로 탐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하기 전부터 그런 본질적인 질문에 저만의 방식으로 계속 답을 찾고자 했어요.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고요. 아주 다른 패러다임 안에서 새로운 작업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만의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작품을 해나갈 때도 작은 연결이 되는 역할부터 전체를 관통하는 역할까지 다채롭게 해내는 배우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