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지

화이트 코트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메탈릭 브라운 태피터 드레스 손정완 컬렉션(Son Jung Wan), 이어링과 브레이슬릿 모두 골든듀(Golden Dew).

크림 컬러 숄 렉토(Recto), 블랙 슬리브리스 톱과 브라운 가죽 벨트 모두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블랙 와이드 팬츠 랜덤 아이덴티티즈(Random Identities), 브레이슬릿 골든듀(Golden Dew), 실버 컬러 뮬 콰이단 에디션(Kwaidan Editions).

블랙 코트와 니트 글러브, 이어링 모두 프라다(Prada)

영화 <둠둠>으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어요. 자신이 출연한 작품과 함께 영화제에 간다는 건 뭔가 남다른 감상을 남겼을 것 같은데요. 영화도, 주인공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도, 그 작품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 간 것도 처음이에요. 모든 게 낯설었죠. 되게 긴장되던데요.

어떤 것에서 기인한 긴장감이었을까요? 어떤 작품을 하든 불안에 가까운 긴장감은 늘 따라요. 게다가 커다란 스크린에 나오는 건 처음이라 아주 미세한 것까지 다 보일 텐데, 표정이나 대사 연기, 목소리 같은 것이 제 생각대로 나왔을지 걱정돼 긴장감이 컸어요. 왜 그렇게까지 긴장했느냐고 묻는다면,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받은 감명 때문이에요. ‘이나’라는 인물은 저와 상반된 모습을 지닌 동시에 공감을 넘어설 정도로 마음이 가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이를 잘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만큼 결과가 따라줬을지 걱정됐던 것 같아요.

베이지 울 벨티드 코트 막스마라(MaxMara), 베이지 프린트 드레스 렉토(Recto), 싱글 이어링 앨런 크로세티(Alan Crocetti), 부츠 렉켄(Rekken).

상영을 마친 후에는 불안과 긴장이 좀 덜어졌나요? 꿈을 꾼 것 같았어요. 끝나고 나니 멍해졌죠. ‘아니 잠깐만, 내가 정말 잘한 건가?’ 싶었어요. 분명 순간순간 좋았던 기억은 있는데, 왠지 모르게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관객과의 대화(GV)가 있어서 긴장을 떨칠 수 없었어요.

첫 GV가 영화에 대한 열기가 유달리 뜨거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터라 더욱 긴장됐을 것 같아요. 질문이 저한테 몰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어요.(웃음) 어떻게 한 번 보고 저런 질문이 나올까, 이 영화를 진심으로 봐주었구나 싶어서 GV가 진행되는 내내 감탄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 자리를 통해 감독님께 처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게 돼 좋았어요.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져서 그런 말을 하기가 쑥스러웠는데, 한 관객의 질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정원희 감독님은 영화 <둠둠>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어요. “음악을 통해 자유를 얻으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이 꽤 험난하다는 것도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여러 순간들을 지나다 보면 어떤 결말 아닌 결말에 도달하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배우 입장에서 이 영화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을까요? 가질 수 없는 걸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내적 갈등을 겪고 나면 이루게 되는 성장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느끼는 부분이지 갈등의 순간을 겪는 사람은 힘들 뿐이죠. <둠둠>은 그 순간이 굉장히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나를 연기하면서도 그 지점이 잘 보이길 바랐고요.

첫 영화 작업은 어땠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을 많이 괴롭혔고, 현장에서는 감독님이 절 괴롭히고. 하하. 그런데 서로에게 요구하고 질문하는 것들이 전혀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작품과 인물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는 점이 참 좋더라고요. 이 작품을 하면서 연기할 때 저를 어떤 식으로 운영해야 할지 많이 깨달았고, 못하던 것을 하나씩 해나가는 즐거움도 있었어요.

지금 촬영하는 작품에서는 어떤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넷플릭스 드라마 <썸바디>를 촬영 중이라고요?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확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장에서 유동적으로 바꿔나가는 방식으로 작업 중이에요. 저는 그런 점이 재미있어요.

화이트 드레스와 싱글 이어링 모두 펜디(Fendi).

지금 공개할 순 없지만, 이 작품을 위해 과감한 변신도 감행했어요. 제가 맡은 역할에 다가가기에 변화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처음에 제안한 건 감독님이지만, 저 역시 이 변화로 인해 작품이 좀 더 풍부해질 거라는 점에는 의심이 없었어요.
부산에 다녀온 이후에는 줄곧 촬영만 한 거예요? 여름부터 시작했고 부산에 다녀와서도 계속 촬영 중이에요.

촬영이 이어지는 요즘도 여전히 털털하고 느긋하게, 그리고 강아지들을 사랑하며 지내는 중인가요? 지난해 5월, 마리끌레르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말로 남긴 표현들이 생각났습니다. 네. 지금도 털털하고 느긋해요. 변화가 있다면 모든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고양이까지 번졌다는 점이고요. 제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데다 어릴 때 고양이가 저를 할퀸 적이 있어서 두려움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을지로에서 구조한 ‘이쁜이’라는 길냥이가 그 두려움을 없애줬어요.

동물들에게 마음을 주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냥 처음부터 좋았어요. 초등학생 때도 길강아지를 집에 데려다 지하실에 숨겨두고 엄마 몰래 돌보고 그랬어요. 약한 존재라 마음이 쓰이는 부분도 있고, 저와 같이 사는 강아지 ‘루’나 ‘라이’처럼 무조건적으로 절 사랑해주는 데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SNS 프로필에 ‘반려견을 버리지 마세요’라는 글이 쓰여 있더라고요. 저를 표현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지나치듯 읽더라도 상기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뒀어요.

루와 라이,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지내면서 일어난 삶의 변화가 있나요? 동물과 함께 생활하려면 생각보다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특히 반려견은 주기적으로 산책을 시켜야 하니까 외출할 일이 생길 때마다 산책 시간을 계산하게 돼요. 또 말을 주고받을 수 없으니 아프진 않은지, 기분은 어떤지 늘 아이들을 위해 촉을 세워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제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껴요. 어쨋든 반려견과 함께하기로 한 이상 계획 없이 살 순 없어요.

느긋하게 살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김느긋으로 사는 거, 쉽진 않습니다.(웃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어요. 올해를 돌아봤을 때, 어떤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나요? 글쎄요. 분명히 어떤 순간은 놀랍고, 기쁘거나 설렌 적도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무딘 감정만 남아 있네요. 왜 이런 걸까요? 느긋해서 그런가?

올해 남은 한 달 동안 더 채우고 싶은, 혹은 덜어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뭔가요? 덜어내고 싶은 건 옷장, 채우고 싶은 건 가족이랑 함께하는 시간이요. 올해 그런 시간을 많이 못 가졌거든요. 엄마, 아빠, 언니, 루, 라이 다 같이 모여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으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