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살 권나라

화이트 러플 원피스, 진주 초커, 진주 네크리스 모두 벨앤누보(Bell & Noubeau), 골드 네크리스 모스키노(Moschino), 베이지 레이스업 워커 렉켄 (Rekken).

불가살 권나라

 

드라마 <불가살>의 첫 방송을 앞두고 있죠. 지금도 촬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피곤할 법한데도 생기가 넘쳐서 놀랐어요. 촬영 막바지예요. 드라마 방영 중반쯤 촬영이 마무리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화보 촬영은 컨셉트가 새롭고 평소 안 입던 옷도 입어보는 거라 즐거워요. 일할 때는 그래도 재미있게 하자고 스스로 독려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집에 가면 가만히 있고.(웃음)

일전에 밝힌 <불가살>에서 맡은 ‘민상운’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이 좋았어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죠. 이 인물에 유독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상운은 어린 시절 눈앞에서 가족을 잃는 큰 아픔을 겪으며 강해진 인물이에요. 현재와 전생을 오가는 역할인데, 그 과정에서 매번 고난을 마주하거든요. 그럴 때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외유내강 캐릭터예요. 반면 저는 외유내강 쪽은 아닌 것 같아요. 쉽게 마음이 다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거든요. 다쳐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는 상운은 본받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작품마다 맡은 인물을 통해 배우는 게 있죠? 맞아요. 상운을 연기하면서는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힘들 때도 ‘다시 한 번 일어나자, 한 번 더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요. 누구나 힘들 시간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정작 나는 그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던 시간이 있었어요.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다면 이제는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껴요. 그렇게 역할을 통해 배우죠. 이전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맡은 ‘수아’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우리는 ‘괜찮아’라는 말을 자신에게 해주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저 역시 그 전까지는 ‘나는 왜 이렇지?’ 하는 편이었는데, 채찍질하기보다 자신을 보듬어야 한다는 걸 수아를 통해 알게 됐죠. 연기하는 인물마다 제게 일깨워주는 게 있어요.

 

불가살 권나라

블랙 롱 드레스 롱샴 (Longchamp), 블랙 베스트 듀이듀이(Dew E Dew E), 화이트 워커 지안비토 로시 (Gianvito Rossi), 화이트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불가살 권나라

블랙 러플 풀오버 미우미우 (miu miu), 진주 이어링 벨앤누보(bell & noubeau).

 

오늘 촬영하며 지켜본 나라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스태프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가요? 맞아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분위기를 잘 타는 편이에요. 촬영장에서도 현장 분위기를 빨리 캐치하는 편이고요. 아무래도 스태프들이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이 보일 때 힘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더 밝은 모습으로 있으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매 순간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즐겁게 지내기란 쉽지 않죠.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어떤 순간에는 하고 싶은 말을 참기도 하고, 또 보고도 못 본 척할 때고 있고요. 상대방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매 순간 내 의견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건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모여 함께 일한다는 건 너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친구로 만난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웬만하면 상대방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려고 해요. 혹 내 생각과 다른 상황이 생길 때는 따로 만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요. 가끔은 못 본 척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면서 갖게 된 태도죠?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저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고, 저 또한 때때로 사람에게 상처받고 마음을 다치기도 해요. 근데 그때는 상대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 다를 수 있지. 그럴 수 있지’ 하고 털어내려고 하죠. 이런 태도가 저에게도 이로운 것 같고요. 모든 사람에게 나를 다 맞출 수 없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아해달라고 할 수만은 없는 거니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연기를 할 때 충실히 준비한 뒤 현장에서 자신을 활짝 열어두는 편이라고 했죠. 자신을 열어두고 인물과 이야기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나요? 어렵지만 가장 먼저 내 마음이 열려야 무엇이든 할 수 있잖아요. 마음을 열어둬야 이해도 할 수 있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할 수도 있죠. 특히 현장에서 많이 받아들이고 흡수하려고 하는 편인데 노력이 필요한 일 같아요. 근데 어쩌면 제가 불안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맡은 인물을 잘 소화하고 싶은 욕심과 불안이 커서 더 귀 기울이게 돼요.

어려운 것 같아요. 열려 있는 동시에 자기 확신도 필요한 일이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많은 부분을 열어두다 보면 그 안에 정작 내 것이 없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자기 확신을 갖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흡수하고 소화하다 보면 정작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주변을 수용하면서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를 열어두는 동시에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해 내 것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불가살 권나라

화이트 니트 스웨터 포츠 1961(Ports 1961).

불가살 권나라

블랙 러플 풀오버와 크리스털 장식 슈즈 모두 미우미우(Miu Miu), 화이트 팬츠 막스마라(MaxMara), 화이트 샤 스커트 그레이스유(Grace U), 진주 이어링 벨앤누보(Bell & Noubeau),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불가살 권나라

아이보리 도트 무늬 플리츠 원피스 에이치앤엠(h&m), 블랙 부츠 레이첼 콕스 (rachel cox),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라 씨에 대해 놀라고 감탄한 것 중 하나가 로드 바이크 타는 모습이에요. 무척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하다 다시 권나라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뭘 하면 즐거울까, 뭘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특별한 취미가 없었는데 하루는 동생들과 한강에서 따릉이를 탔거든요. 공기도 좋고, 하늘도 맑고 참 좋더라고요. 그날의 기억이 좋아서 덜컥 로드 바이크를 구입해버렸어요. 장비가 갖춰지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고들 하더라고요.(웃음) 남산에도 한 번 올랐거든요. 지금까지 걸어서 올라간 적도 한 번인가밖에 없는데 자전거를 타고. 정말 힘들었어요. 근데 또 바람 맞으면서 내려오는 길은 너무 좋더라고요. 그길로 경리단길에 가서 태국 요리를 먹었어요. 로드 바이크가 익스트림 스포츠인데 의외로 저랑 잘 맞더라고요.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는 또 다른 쾌감이 있죠. 몸은 고되고 힘든데 어떻게든 끝내고 돌아오면 상쾌하고 뿌듯해요. 가능할까 의심하며 했는데 제가 해내니까. 한계를 넘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어요.

자신의 삶이 작품이나 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불가살> 촬영을 10개월 정도 했는데요. 중간중간 쉴때는 제 삶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침대에 누워 있어야 충전이 되는 사람이긴 하거든요.(웃음) 그럼에도 연기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권나라라는 사람의 삶을 더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어보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