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무리된 <쇼미더머니 10>에서 3위의 성적을 얻었어요. 요즘 바쁘게 지내고 있겠어요. 좀 많이 바빠요. 음악 이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 저를 보여주는 스케줄이 많아졌거든요. 화보 촬영도 재미있더라고요. 평소 자주 하지 않는 스타일링을 시도하니까 기분 전환이 돼요.
<쇼미더머니 10>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시즌 7과 9에도 출연했어요. <고등래퍼>에도 시즌 1부터 3까지 연달아 지원했고요. 경연 프로그램에 여러 번 도전한 계기가 있나요? <고등래퍼>에 처음 지원할 땐 저 자신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고등래퍼> 시즌 3에 참가하면서 제가 경연 프로그램에 취약하다는 걸 느꼈죠. 그 이후부턴 경연 프로그램을 앞두고 도전 정신에 가득 차 있진 않았어요. 그냥 부딪친 거죠. 이걸 피하면 나중에 다른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더라고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현장에 갔을 때 어땠어요? 갈 때마다 어마어마한 기운을 느꼈어요.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그 기운에 눌리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신경 썼어요. 개성 강한 래퍼들 사이에서 싸우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쇼미더머니 9> 때까진 센 랩들을 준비해 갔죠. 하지만 시즌 10에서는 달랐어요. 왠지 모르게 이번 시즌이 마지막 도전일 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내 음악을 들려줘야겠다’ 싶었어요. <쇼미더머니 10>을 통해 제가 살아온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80%는 한 듯해서 만족해요.
지나온 날들을 관통하는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모두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를 믿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내가 이 일을 계속 해도 이렇다 할 결과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드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게 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제일 힘들었어요.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더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저도 그 마음이었어요. 음악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는 ‘내 것만 하면 된다’,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제 음악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요.
<쇼미더머니 10> 안에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프로듀서들이 배려를 많이 해준 것 같아요. 엄청 배려해주셨죠. 그레이 형의 작업 방식이 되게 좋았어요. 저보다 음악을 훨씬 오래 하셨으니까 제가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라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고 모든 걸 수용해주셨거든요. 제가 제안한 대로 일단 작업한 뒤 결과물을 들려주셨고, 저 스스로 제 의견이 별로라는 걸 느끼게 한 다음에 함께 수정해나갔어요. 그 과정을 통해 제가 곡에 후회를 남기지 않게 해주신 거죠. 또 누구나 아는 프로인데도 진짜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작업실을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형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한 팀으로 함께한 또 다른 프로듀서 마이노(송민호)와 보낸 시간은 어땠어요? 민호 형은 제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셨어요. ‘츤데레’ 스타일이라 티를 내진 않으셨지만 뒤에서 세심하게 챙겨주셨죠. 친형이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힙합에 처음 매력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 관심을 줄곧 무시해왔어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선택엔 큰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이런 고민의 과정이 저에게도 있었던 거죠. 중학교 3학년 때 제가 뭘 하면서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봤고, 어느 순간 ‘나 음악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결정을 딱 내리고 나니 확신이 들더라고요. 장르 구분 없이 모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보컬로 예고 입시를 준비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쇼미더머니 3>를 보게 되었는데, 각자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음악 안에 전부 솔직하게 풀어낸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래퍼들의 문화가 멋있다고 느꼈고요.
멋있는 것은 뭐라고 생각해요? 나다운 거 아닐까요? 나답게 살자. (‘나답게 살자’라는 문장이 손 글씨로 크게 적혀 있는 휴대폰 배경 화면을 보여준다.) 2년 전쯤부터 이게 제 배경 화면이에요.
‘비오다운’ 음악은 뭘까요? 상상하게 하는 음악. 제 곡을 듣고 나서 “비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상상이 된다”라는 말을 할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가사로든 멜로디로든, 제 음악을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그려지기를 바라요. 또 곡에 녹여낸 제 의도가 사람들에게도 통한다면 좋겠어요. 위로를 전하거나 자신감이 차오르게 하는 식으로요.
의도를 숨기지 않는 편인가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음악도 있잖아요. 곡마다 조금씩 달라요. 예를 들어 ‘BAD LOVE’는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쁜 사랑을 겪었을 때 드는 혼란스러운 마음,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척하는 개구쟁이의 느낌을 표현했죠. 반면 ‘Blurry in my hotel room’은 여러 가지 해석을 바라며 좀 어렵게 썼어요. 이 곡에 대해 저와 같은 해석을 한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리무진’과 ‘네가 없는 밤’ 등 <쇼미더머니 10> 경연을 위한 곡뿐 아니라 앞서 발매한 음악도 주목받고 있죠. 깜짝 놀랐어요. 특히 ‘문득’이 수록된 <Bipolar>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내가 그동안 해온 음악이 괜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뻐요.
큰 관심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나요? 부담되지만 어쩔 수 없죠.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역시 좋다’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음악을 알리기 위해 넘은 산이 아주 높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해볼 만할 것 같아요.
비오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는 제 곡들 모두 당시 상황과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그걸 대중도 조금이나마 느낀 게 아닐까 해요. <쇼미더머니 10>에 출연하면서 가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어요. 2차 예선에서 선보인 ‘Counting Stars’도 가사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사랑받지 못했을 거예요. 1차 예선을 보기 전 할아버지가 계신 요양 병원에 다녀와서 하늘을 봤는데 별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 순간 생각이 참 많았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Counting Stars’ 가사를 썼죠. 감정을 호소하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쓰고 싶었어요.
12월 12일에 ‘Counting Stars’ 음원을 발매했어요. 이 곡 역시 차트에서 상위권을 기록했고요. <쇼미더머니 10> 세미파이널 때부터 발매를 준비했어요. 원래 ‘Counting Stars’를 음원으로 낼 계획은 없었어요. 개인적으로는 2차 예선을 위한 곡으로 남겨두고 싶었는데, 발매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죠.
빈지노가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한 것도 화제예요. 어떻게 성사된 협업인지 궁금해요. 빈지노 형이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저와 ‘Counting Stars’를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이 곡에 함께한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요. 형이 해외에 계셔서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곡을 완성해갔죠. 나중에 돌아오시면 꼭 뵙기로 했어요.
비오와 빈지노의 이야기가 곡 안에서 잘 어우러지는 게 중요했을 듯해요. 형이 ‘Counting Stars’에 본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주셨어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작업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사실 형의 파트를 처음 들었을 때 조금 울었어요. 특히 ‘지금 눈물 참느라 비음 됐어 난’이라는 가사가 재치 있으면서도 슬프게 느껴지더라고요. 진심이 너무나도 잘 와닿는 가사를 써주신 빈지노 형에게 깊이 감사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음악적으로 본인에게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아요? 예전엔 그 옷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가끔 한 번씩 입는 정도였어요. 입었을 때 자신감이 생기진 않았거든요. <쇼미더머니 10> 덕분에 이게 꽤 괜찮은 옷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이제 이 옷을 토대로 여러 가지 스타일을 가져와보려고 해요.
본인이 지닌 기질 중 음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면이 있나요? 악바리 기질이 있어요.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몸이 망가진 상태일 때도 계속 작업을 하더라고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내 장점이다’라고 생각했어요. 2021년에 음반을 더 내고 싶어서 한 달에 50곡 이상 만들기도 했어요. 새해에는 숨겨둔 곡들을 차차 풀어보려고 해요.
새해의 비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요? 요즘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밖에 오래 나와 있다 보니까 편한 옷, 충전기, 향수 등 챙겨 다닐 물건들이 늘어나더라고요. 저와 잘 어울리고, 제가 좋아할 만한 가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그 가방을 직접 묘사한다면요? 제가 평소에 블랙과 실버의 조합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가방도 그런 디자인일 것 같아요.
‘까만 리무진’은 언제 탈 수 있을까요? 2022년에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정산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