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구경이>에 빠져 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런 뒤늦은 고백 많이 받죠? 네. 지금도 계속 보면서 분석하는 분들이 있어요. 감사하죠.
묘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열렬히 응원해주는 팬덤이 있는데도 시청률은 아쉬운 작품이잖아요.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장 빨리 마주하는 결과가 시청률이잖아요. 속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다만 생각보다는 그 마음을 금방 털어낼 수 있었어요.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다른 경로로 작품을 보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나니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어딘가에 우리 드라마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으로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찍었어요.
한 인터뷰에서 <구경이>를 만든 이정흠 감독이 김혜준 배우를 두고 덜 망가지려고 조절할 법도 한데 그런 것 하나 없이 필요할 때 가진 모든 걸 아낌없이 쏟아붓는 배우라고 했어요. (웃음) 부끄럽습니다. 감독님이 어떤 장면을 찍을 때 그런 면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연기할 때 ‘이 정도로 망가지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긴 해요. 그 점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요.
촬영 중 이영애 배우와 김해숙 배우에게도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고요. <구경이>는 배우로서 얻은 게 많은 작품일 것 같아요. 함께 작업한 스태프 중 한 명이 ‘혜준아, 난 아직도 <구경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어’ 하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에 크게 공감했어요. 작품 못지않게 촬영 현장이 무척 재미있었거든요. 칭찬을 많이 들은 것도 깊이 감사하지만, 촬영 현장에서 연기의 즐거움을 발견한 기쁨이 아주 커요. 예전에는 현장에 가는 게 무서울 때도 있었어요.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하는 것 같아 작아지기도 했는데, <구경이> 때는 달랐어요. 촬영하러 가는 것 자체가 설레고, 그 마음이 동력이 되어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구경이>를 마친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는 중인가요? 촬영 기간이 꽤 길었어요. 6개월 동안 이경이로 살면서 연극도 하고, 싸움도 하고, 사람도 죽이느라(웃음) 바빴거든요. 지금은 푹 쉬고 있습니다.
마리끌레르와 3년 만의 만남입니다. 3년 전을 회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수줍어하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런 촬영과 인터뷰는 처음이었거든요. 엄청 떨었던 것 같아요. 그랬죠? 사실 이후로도 크게 바뀌진 않았어요. 오늘은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편해서 그렇지, 낯선 촬영장에 가면 여전히 극도로 수줍어합니다.
인터뷰 내용도 기억나요? 연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내년은 너의 해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네요. 기억해요. 재미있는 게 제가 지난해 데뷔 6년 차였거든요. 그때 라이징 스타상을 받았어요.(웃음) 고이지 않고 끊임없이 떠오르는 중이라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때 연기하기 어려운 감정에 대한 질문도 있었어요. 극단의 감정을 오가는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는데, <구경이> 속 이경으로 마주하게 되었어요. 이경을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이에요. 하이 텐션으로 웃고 까불다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사람인데 그 사이를 오가는 게 힘들더라고요. 특히 텐션이 올라갔을 때가 평상시 저와 많이 다른 모습이라 연기하면서도 과장하는 게 아닌가 걱정됐어요. 다행히 감독님이 균형을 잘 잡아주셔서 믿고 연기할 수 있었죠. 그런데도 무척 어려웠어요. 해보니까 더 그래요. 모든 연기가 그런 것 같아요.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지속하는 건 그 안에 어떤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겠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까 계속 도전하게 돼요. 즐거움이라고 하면,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시너지를 발휘하는 순간일 테고요. 결과에서 얻는 성취도 있지만, 저한테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아요.
김혜준 배우가 좋아하는 현장은 어떤 모습인가요?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현장 있잖아요. 누구나 더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텐데 그걸 꺼냈을 때 ‘해보자’ 하는 분위기요.
그런 현장에서는 의견을 잘 제시하는 편인가요? 의견이 있으면요. 물론 되게 주저하면서요. 그런데, 그렇다면, 혹시를 꼭 붙이면서.(웃음)
(웃음) 방금 한 말에서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보였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이건 어떠세요?’ 하고 묻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우니까요.
그간 작품에서 맡은 인물들과 다른 성정을 지닌 것 같아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다수의 역할이 소위 말하는 일반적 혹은 보통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았어요. 기준을 정해놓은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끌리는 역할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세든 약하든 자기주장을 하는 인물이라는 거예요. 이런 인물을 발견하면 오디션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게 돼요.
실제 본인이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걸까요? 듣고 보니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잖아요.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고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에게 그다지 솔직한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바람을 연기로 승화하고 싶은가 봐요.
연기에 대해서 최근에는 어떤 질문을 품고 있나요?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이랑 맨날 ‘연기란 무엇일까?’라는 주제로 대화를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굳이 꺼내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저를 파고드는 사색을 더 많이 해요. 지난해부터는 제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마음먹은 만큼 자주 쓰진 못하지만 저를 들여다보는 데 보탬이 되고 있어요.
연기를 위해 어떤 경험이든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걸 해보고 싶나요? 미래로든 과거로든 갈 수 있다면요. 중·고등학생 때로 돌아가서 일탈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연애도 해보고요. 제가 그때 연애도 일탈도 못 해봐서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부모님이 아주 엄하셨거든요. 한 번쯤 지각할 수도 있을 텐데, 저는 1분만 지각해도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개근상 타는 학생이었나 봐요. 그 와중에 개근상은 못 탔어요. 지각 안 하려고 뛰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하. 그 정도로 안 된다고 하면 그대로 따르는 학생이었어요. 지금은 하지 말라는 일도 하는데 말이죠.
그런 학생이 어떻게 배우가 된 건지 궁금해지는데요. 그게 가장 큰 일탈이었어요.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말을 못 하고 있다가 대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니까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 큰맘 먹고 얘기했어요. 얌전히 공부만 하던 애가 느닷없이 연기를 하겠다니까 부모님도 놀라시긴 했는데, 제가 아주 진지하고 단호해 보였나 봐요. 바로 허락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일탈이 시작된 거네요.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삶이 달라졌어요. 대학 가서 일탈을 많이 했죠. 지각도 많이 하고. 즐거워졌습니다.
배우가 된 지금은 어떤 꿈을 꾸나요? 그때처럼 간절히 바라는 게 있나요? 명확한 꿈은 없어요. 지금은 그저 재미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정도예요. 저는 어디서든 즐거움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거든요. 크든 작든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행복을 쌓아가는 게 좋아요. 제가 큰 걸 바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떠오르지도 않고요.
큰 꿈을 품는 것도 좋지만, 작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삶도 평화롭고 좋아 보여요. 마지막에 올해의 목표를 물어보려 했는데, 이미 답을 들은 것 같아요. 맞아요. 올해도 그냥 일도 하고 일상도 살면서 즐거운 것을 찾아내려고요. 두루뭉술하죠? 제가 그래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