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큰 관심을 받으며 소란하게 보냈다.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있나? 지난해에 좋은 발판을 마련했으니 새롭고 특별하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막연한 기대감에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겠다는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일일이 다 계획해 버리면 기대감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큰 주목을 받은 뒤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혀 무섭지 않고 마냥 재미있다. 어떻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지난해에 방송에 출연하며 생긴 하이프(hype, 반향)가 진정되길 바라는 마음도 든다. 무명인 상태에서 조금씩 알려지는 것보다 알려지고 난 뒤 관심이 걸러지는 것도 흥미로운 일 같다. 스스로를 하나의 사회현상이자 실험이라고 보고 있다.
내가 주체인? 어디까지 해야 대중이 나를 좋아하고 이해할지 궁금하다.
머드 더 스튜던트의 음악을 들으면 특유의 뾰족함과 날카로움이 있다. <Field Trip>에 실린 곡이 대부분 그렇지만 ‘Off Road Jam’이 특히 와닿았다. 지난봄 발매한 EP <Field Trip>은 사회 초년생으로서 받은 상처를 담은 앨범이다. 상경한 이후 1년 반 동안 서울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애썼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내가 사회적인 사람이 아니고 완전 ‘아싸’에,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의 상처를 쏟아낸 게 <Field Trip>다.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내게는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느낀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사람들을 같은 마음으로 위로하고 싶고.
다음에 나올 음악에는 사회 초년생의 상처 그다음 이야기가 실리는 건가? 그렇다. 다음 작품은 보다 어른스러운 나를 그리고 싶은데 아직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여전히 나 스스로 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의 태도가 남아 있지만 이전보다는 어른이 된 나를 그리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이전보다 어른이 됐다고 느낀다면 아마 <쇼미더머니 10>(이하 <쇼미>)의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엄청나게 크다. <쇼미>에 출연하며 정말 많이 배우고 얻었다. 이전의 나는 그냥 집에만 있는 사람이었고, 어느 분야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몰랐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알게 됐다. <쇼미> 안에는 래퍼도 있지만 감독이나 작가 등 제작 관련 스태프도 많다. 래퍼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과 더 많이 마주치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내가 음악으로 고군분투할 때 이 사람들 역시 각자의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깨달음 덕분에 꿈도 다르게, 더 넓게 꿀 수 있게 됐다.
머드 더 스튜던트의 경연 영상 클립에 가장 많이 달린 댓글 중 하나가 ‘작두 탄 것 같다’다.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웃음) 몰입하는 능력만큼은 타고난 사람 같다.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어떤 걸 경험하든 그 순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즐기자’다. <쇼미> 역시 순수하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다. EP 앨범을 낸 뒤 새로운 모험을 갈망하던 상태에서 <쇼미>를 만났다. 나는 래퍼도 아니니까 그냥 즐기자는 마음이 가장 컸다. 매 순간 즐기자고 되새겼고, 그 과정에서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특성상 즐기는 마음이 훼손되는 순간도 있지 않나. 맞다. 디스전을 끝내고 팀 결정 어필 랩을 준비할 때 고비가 있었다. 출연 이후 네 번째로 하는 랩이었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하루 전날 랩이 외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외워지지 않아서 결국 바밍타이거(머드 더 스튜던트 소속 크루) 디렉터인 산얀 형을 찾아갔다. 그때 형이 ‘네가 랩을 잘하고 못하고, 외우고 외우지 못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넌 지금 본질을 잃고 있다. 즐기려고 시작하지 않았냐’라고 하더라. 경연 하루 전날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가사 외우는 걸 관두고 명상하며 마인드 컨트롤에 집중했다. 다음 날 무대에서 가사를 완벽하게 뱉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이미 다 외웠는데 부담과 스트레스에 짓눌려 계속 꼬였던 거구나. 이후 크고 작은 긴장과 부담이 있었지만 무대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했다.
머드 더 스튜던트의 음악은 규정하기 어렵다. 록과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뒤섞은 혼종이다. 레퍼런스가 없는 상황에서 장르를 섞고 이전에 없는 스타일을 만들 때 창작자로서 드는 의심도 있나? 곡 만들 때 잠깐잠깐 드는 거 외에는 크게 의심하는 편은 아니다. 내 음악은 어떤 음악보다 근본 없는 음악이지만, 사실 우리 세대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장 근본 없는 세대 아닌가.
어떤 면에서? 우리가 힙합을 한다고 해서 1980~90년대 힙합 골든 에라를 살아본 것도 아니고, 내가 얼터너티브 록을 한다고 해서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붐을 겪은 세대도 아니지 않나. 2000년대생은 어떤 황금기도 겪지 않았다. 그저 인터넷 세상 속 정보를 흡수할 뿐인데, 그 덕분에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정보를 흡수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본다. 나는 그 능력을 기반으로 각종 정보를 혼합한다. 그래서 내가 모은 정보의 영향을 받고, 이를 기반으로 취향이 만들어지고, 하고 싶은 대로 섞을 뿐이다. <쇼미>에서 딱 붙는 티셔츠를 입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보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래퍼들이 카니예 웨스트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따라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로커들이 멋있어서 따라 한 것뿐이다. 자연스럽게.
1980~90년대의 록, 그리고 1990년대의 힙합 신에서 주로 무엇을 취사 선택하나? <Field Trip>은 1980~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인디 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얼터너티브 록, 인디 록을 향한 샤라웃(shout out) 같은 느낌인 거다. 젊고 거친 요소에 많이 끌렸다. 예를 들어 페이브먼트(Pavement)나 다이노소어 주니어(Dinosaur Jr.), 소닉 유스(Sonic Youth) 같은 밴드의 음악만 들어봐도 거칠고 날것의 느낌이 강하다. 박자도 음정도 제멋대로인데 혼이 느껴진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완벽하고 잘 전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자체로 매력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게 진짜 젊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음악은 박자, 음정 모두 완벽하다. 튜닝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다 날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일상은 날것에 더 가깝지 않나. 청춘을 완벽하게 보낼 수 없고, 어딘가 들어맞지 않고 덜컥대는 게 우리 일상이니까.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맞다. 머드 더 스튜던트의 음악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정제하지 않은 날것스러움’일 거다. <Field Trip>에 ‘G-LOC’이라는 노래가 있다. 1990년대 슈게이징 영향을 받은 음악인데, 슈게이징은 코드 음이 분간 되지 않을 정도로 디스토션으로 기타 소리를 찢어놓는다. 그걸 듣고 ‘아, 이게 젊음인가?’ 하고 감탄했다. <Field Trip>에 일렉트로니카와 힙합도 섞여 있는데 어떻게 보면 내 음악은 1990년대 IDM 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IDM 신도 묘한 날것의 매력이 있다. 왜 요즘 음악은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나. 근데 그 시절 음악은 뜬금없이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쓸데없이 긴 곡도 많다. 그저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필터링 없이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걸 매력적으로 느껴 IDM이나 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자신의 감각과 재능으로 섞어내는 결과물이 최소한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가? 앨범마다 다르겠지만 아티스트의 정체성이라면 젊음, 패기, 장난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 도발적이고 장난스럽고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이길 바란다. 내 감정을 다 넣어서 도발적이고 당황스럽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