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의 뷰티 화보를 준비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 뭐해’라고 했어요.(웃음) 오늘 어땠나요? 어떤 느낌으로 입생로랑 뷰티를 보여줘야 할지 기대감을 품고 왔어요. 입생로랑 뷰티 핑크 쿠션 등 제품과 제 얼굴로 나타내고 싶은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어요. 오늘은 첫 촬영인 만큼 뷰티 화보의 정석대로 해봤어요.(웃음)
지난 겨울을 미니 앨범 <Peaches> 활동으로 보냈어요. 시작할 때와 마무리하는 지금의 마음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지금은 <Peaches>의 좋은 기억을 안고 깨끗해진 상태예요. 새 마음으로. <Peaches> 앨범을 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앨범을 내고 활동할 때마다 배우는 게 다르죠? 어떤 때는 앨범을 통해서, 또 어떤 때에는 앨범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내 기분과 상태에 따라 배우는 게 달라요. <Peaches>를 준비하고 활동하면서는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데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력 면에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이번 앨범 작업을 할 때는 유독 무언가를 찾으려 했는데, 나를 더 분명히 알고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방법으로 영화나 책을 보기도 했 는데 의외의 것들에서 답을 얻었어요. 방심하고 본 코미디영화들이 깨달음을 주더라고요.
코미디영화요? <Peaches>와는 결이 무척 다른데요. (웃음) 달라요.(웃음) 그 영화들의 공통점이라면 인물들이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넘겨요. 이런 태도를 견지하다 목표에도 가볍게 도달하죠. 그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집중하면 필요 이상으로 문제에 깊게 빠져들게 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저들처럼 조금은 가볍게 넘기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그간의 몰입과 집중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촬영을 위해 컨셉트 시안을 찾다 보니 유독 카이 솔로 앨범 이미지가 많이 검색 되더군요. 카이씨가 먼저 다 해버렸더라고요. 당시에는 전위적으로 느껴질 법한,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컨셉트를 시도하고 또 자연스럽게 해냈어요. 전체 작업의 완성도만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 아요. 음악과 퍼포먼스를 잘 풀어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좋은 결과물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새로운 의상이나 헤어에 도전할 수 있었어요. 어떤 시도는 누군가 이상하다고 여길 걸 알면서도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안전한 선택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잘생겨 보이지 않을 수 있고, 호감을 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체되고 발전하지 않는 건 피하고 싶었어요. 전위적이라 해도 저는 그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으니 아무런 거부감 없이 할 수 있었고요. 다행히 오늘처럼 제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때가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다시 해볼 수 있겠다 싶어요.
전에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믿음이 기반이 돼야 할 텐데요. 내가 내리는 판단과 결정, 동시에 이를 실행할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겠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나요? 믿음은 결국 만족의 경험치로 쌓이는 거 같아요. 그러니 내가 어디에서 만족을 느끼는지를 정확히 알아야겠죠. 결과물이 나왔을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게 나 자신의 만족인지, 결과물이 내는 수치에 대한 만족인지, 혹은 결과물을 본 사람들의 반응에 만족하는지 등 만족의 성격이 다 다르잖아요.
만족의 우선순위도 다 다르고요. 제 믿음의 우선순위에서 첫째는 나에 대한 만족감인 것 같아요. 스스로 옳다고 판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 충족감이 들면 그 믿음에 상응하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수치상의 만족을 추구하다 보면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것에 신경 쓰게 되고 주관이 흔들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는 원래 자신에 대한 만족감으로 작업하는 사람인데, 솔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모호했어요.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다 보니까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이게 옳은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솔로지만 그룹일 때만큼 많은 사람이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여러 가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건 내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어요. 스스로 중심만 잡혀 있다면 어떤 면에서 믿음을 갖는 건 쉬운 일 같아요. 얼마큼 스스로에게 집중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데, 이건 내가 하기 나름이잖아요.
이제 적어도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류의 욕망으로부터는 자유롭지 않을까 싶어요.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잘 지켜가고 싶다는 바람은 더 커질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그런 욕망이 없진 않죠. 많은 사람이 알면 좋으니까요. 물론 카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어요. 10년 넘게 가수로 살다 보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카이고 김종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둘을 구분 짓고 차별성을 두고 싶지만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카이가 김종인을 파고 들잖아요. 그래서 카이라는 이름이 흔들리면 김종인이라는 사람도 덩달아 요동쳐요. 그러니 카이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카이로서 더 유명해져야 한다고 사명을 주거나, 카이가 나의 전부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야 더 오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진짜 어려워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간 감정의 격랑 없이 안정된 느낌을 줬어요. 차분하고 오롯하게 할 일을 해나갈 수 있었던 건 훈련된 결과인가요? 이건 남이 시켜서 할 수는 없는 일 같아요. 이 일을 오래 하면서 느낀 건, 남이 하라 마라 해서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에요. 많은 일이 그렇듯이 이 역시 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고 감정은 훈련한다고 단련되는 게 아니잖아요. 폭풍 같은 감정의 파고를 겪는 시기가 있었고, 여러 생각이 드는 시기가 있었어요. 이럴 때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구하고 얻었어요. 특히 가족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누나나 매형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매형의 회사 이야기도 듣고요. 누나와 사는 이야기도 항상 하고 또 누나를 보고 배워요. 그러면서 느끼는 건 내가 하는 일 또한 한 명의 사람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하는 일이라는 점이에 요. 이 일이 현실 감각을 잃게 하는 면이 있는데 그걸 놓지 않으려고 항상 생각해요. 아버지가 무엇이 되기 전에 인간이 먼저 되라는 말을 많이 하셨는 데요, 전에는 왜 그 말을 하시나 싶었거든요. 내가 뭐 인간이 아닌가? 하면서.(웃음)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에서 느끼는 게 많아요.
이제는 뮤지션으로서, 아티스트로서 성공의 의미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큰 상을 받는 건 여전히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이미 대상을 받았는데 다음 해에 또 대상을 받고 싶은가?’ 하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근데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다 보면 저 역시 바라는 게 끝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이 예민의 화신이 돼요. 정도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일이 잘되는 기준을 제가 ‘얼마큼 자유로웠는가’에 둬요. 삶이 안정돼 있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가수도 마찬가지예요.
극도로 예민했던 순간을 지나온 사람의 말처럼 들려요. 그럼요. 많이 예민했어요. 무대에서 공연할 때 동작을 하나라도 실수하거나 마이크가 벗겨져 잠시라도 집중이 흐려지면 저 자신이 용서가 안 됐어요. 근데 그런 마음이 저를 잠식하고 잡아먹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고쳤어요.
쉽게 고쳐지던가요? 고쳐지죠. 뭐든. 그 대신 좀 놓는 게 있죠.
올해는 엑소 10주년입니다. 숫자라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어떤 순간에는 의미 있고 묵직하게 다가오죠.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기도 하고요. 어떤가요? 저는 잘 와닿지 않는데, 엑소가 10년 됐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들 10년이라는 숫자가 참 대단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10년이라는 이력을 쌓을 수 있는 연예인이 많지 않다는 말에 공감했어요. 뿌듯하더라고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활동했구나, 그리고 이렇게 다들 알아주고 축하해준다는 사실이 큰 선물 같아요. 10년, 15년, 20년 오래도록 이 일을 계속하겠지만 축하해주는 사람이 곁에 많은 지금, 이 순간을 더 감사하며 의미 있게 기억하려 해요.
지난 10년의 시간 중에 자신의 어떤 모습을 스스로 칭찬하고 싶어요? 10년 전에 데뷔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마음을 바꿔 데뷔한 나를 칭찬하고 싶어요.(웃음) ‘왜 했지?,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이런 생각은 누구라도, 잠깐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그런 마음이 무색할 만큼 10년 동안 아주 행복하게 살았어요.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많은 걸 경험하고,배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제가 스스로 잘 컸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건 가수를 했기 때문이에요. 가수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좋은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가수를 했기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오늘 얘기를 듣다 보니 직업 특성상 관계의 범위는 좁지만 누구보다도 타인과 깊이 관계 맺고 경험하면서 배우고 얻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넓은 관계는 중요하지 않죠. 전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아무런 사심이나 질투, 악감정 없이 나의 모든 것을 함께 즐기고 축하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점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한 명 곁에 두기도 힘든데 저는 그런 면에서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물론 넓은 관계도 경험해보고 싶긴 해요.제가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여행 유튜버들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인사하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그야말로 ‘인싸’의 삶을.(웃음) 한편으로는 부러워요. 그런 삶을 언젠가 꼭 경험해보고 싶어요.
깃털같이. 네. 깃털같이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녀보고 싶어요. 그런 삶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