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반응이 좋아요. 드라마가 공개되고 완성본을 봤을 때 어땠어요? 편집본을 처음 봤을 때는 제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시청자 입장으로 보고 있어요.
‘백이삭’ 역으로 캐스팅이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들었어요. 캐스팅 초반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연기 영상과 줌 미팅으로 진행했어요. ‘선자’(김민하)와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역할이라 캐스팅 물망에 오른 김민하 배우와 호흡을 맞춰보기도 했고요. 여러 번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한 끝에 이삭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백이삭’ 캐릭터가 유독 끌린 이유가 있나요? 올곧은 성격의 ‘이삭’을 알아가고 싶었고, 그가 좋았어요. 섬세하고 어려운 캐릭터라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요. 이 역할을 준비하면서 고민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어요. 잘 표현하고 싶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죠, 한국인으로서.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라 이전에 경험한 제작 환경과 조금 달랐을 것 같아요. 일단 스케일이 굉장히 컸어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참여하다 보니 현장에서도, 연기를 할 때도 세 가지 언어를 사용해야 했어요. 그럼에도 아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제작 환경이었어서 소통이 원활했어요. 아주 멋지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연출하는 스태프뿐 아니라 함께 연기하며 호흡하는 배우들과의 소통도 중요했겠어요. 재능 있는 배우들과 함께하다 보니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이삭’이라는 인물은 극 중 여러 인물을 만나요.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크게 영향을 받기도 하죠. 그래서 상대가 주는, 연기에 대한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현장 분위기는 어땠어요? 극중에서 다루는 시대 자체가 무거워요. 한 예로, 재일 동포들이 일본 순사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장면을 ‘이삭’이 목격하는 장면. 이런 상황들을 연기하고,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 정말 억울하고 슬프더라고요. 마치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요. 현장에서 그 순간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려고 했어요. 모두가 각자 부여된 역할과 상황에 몰입해 촬영했죠.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과 서로 토닥이는 영상을 봤어요. 그 영상을 보면서 ‘모두가 진심으로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촬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촬영은 6개월 정도 진행됐어요. 무척 긴 여정이었죠. 그 영상 속 장면은 ‘이삭’이 ‘선자’와 오사카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는데, 그게 제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모든 촬영의 마지막. 마지막 신이 끝나고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고생했다고 인사를 나눴어요.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시간이 끝났을 때, 기분이 묘했을 것 같아요. 묘하기도 했는데, 촬영이 딱 끝났을 때는 솔직히 기뻤어요. 워낙 오랜 기간 동안 힘든 작품과 함께 했다 보니 ‘아 이제 끝났다’ 하는 후련한 마음과 더불어 ‘축하한다’, ‘고생했다’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죠.
어릴 때 미국에서 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왔죠? <파친코>가 고국을 떠나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낯선 환경에 놓인다는 공통점이 있죠. 제가 ‘이삭’ 역으로 연기하는 시대에 재일 동포들이 겪었던 불합리나 억압, 차별은 없었지만, 타국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평소 고민이 많은 편인가요? 고민은 항상 많죠. 생각도 많고.(웃음) 많은데, 없어요! 부딪혀서 계속 배워가야죠. 생각만 할 때와 막상 할 때 다른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냥 하기만 하는 것도 안 되고, 생각만 하는 것도 안 되고, 이 두 가지를 같이 해나가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생각을 하고 해야 할 때 하는 것. 그렇죠. 그런데 일단 해야죠.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와 모델이 되었어요. 모델 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원래는 군대에 가려고 한국에 왔어요. 군대에 가려고 기다리던 와중에 우연히 패션 화보를 찍게 되면서 군대를 미루고 일을 시작했어요. 모델 일을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연기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일단 모델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연기를 시작하고 7년 정도 시간이 흘렀어요. 7년 전의 노상현과 지금의 노상현은 많이 달라졌나요? 많이 달라졌죠! 20대 초반에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지금의 저는 그때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밝고, 긍정적이고, 강해졌어요. 20대 초반에는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죠.(웃음)
혼란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그냥 혼란스러워했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저 견뎠던 것 같아요. 세상을 제 방식대로 알아가려고 했어요.
긍정적이고 강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멘토를 만나면서 인생이 좀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분이 중심이 되어줬다고 해야 할까요?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있다고 믿어요. ‘어떤 상황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인생은 고통이다.’ 이 명제가 기본값이라고 생각해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유지해야 견딜 수 있고, 나아갈 수 있고, 또 나아가다 보면 가끔 행복이 오고, 그런 거 아닐까요?
그렇죠. 그런데 항상 긍정하긴 힘들어요. 남들과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급해지거나 힘들진 않았나요? 그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분명히 답답하죠.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내 안에서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내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 내 관점을 바꿔야죠. 아까 얘기했던 멘토를 만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 후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생을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하고요.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히 조급한 마음이 사라졌어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연기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하겠어요. 저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깊이 고민하고, 알아가려고 할수록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잖아요. 연기는 삶을 표현하는 거니까요.
앞으로 연기하는 데 있어 <파친코>는 어떤 의미가 될까요? 정확히 어떤 의미일지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봐야 알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제 삶의 길을 제시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의 방향을 정하고, 연기의 방향을 정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에게 노상현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저는 제 일에 충실하고 싶어요. 진심으로, 열심히. 이걸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웃음) 결국에는 진심으로 연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