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척 화창하네요. 아까 소희 씨가 좋아한다고 말한 목련도 스튜디오 근처 골목에 활짝 피었고요. 그러니까요! 날씨 덕분에 기분도 너무 좋아요. 햇빛을 받으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화보를 찍은 건 오랜만이라 촬영하는 동안 되게 편안했어요.
‘소원’ 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서른, 아홉>이 얼마 전 종영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방송을 봤나요? 촬영을 마친 다음에 방영이 시작되어서 마치 시청자가 된 듯했어요. 그래서 작품을 보다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요. 대본으로만 접한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는데, 전개를 알고 있는 상태로 시청했는데도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소원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소원은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낸 후 좋은 가정에 입양돼 오빠 ‘선우’(연우진)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지만, 과거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아픔이 겉으로 드러나진 않더라도 내면에 깊이 자리할 것 같았죠. 마냥 밝지만은 않은, ‘묵직한 맑음’을 지닌 친구라고 느꼈어요.
그 묵직한 맑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해요. 어떤 방식으로 소원이라는 인물에 접근했나요? 작품 속 인물을 만나면 눈에 띄는 매력이 있어서 끌릴 때도 있지만, 소원은 왠지 모르게 그냥 마음이 갔어요.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는데, 소원 곁에 오빠 이상의 큰 존재인 선우가 있다는 점이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친언니를 향한 제 마음을 생각하면서 소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선우 역을 맡은 연우진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했겠어요. 연우진 선배님과 단편영화 <아노와 호이가>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고, 그때 현장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거든요. <서른, 아홉>을 통해 다시 만나서 기뻤어요. 소원과 선우가 만둣집에 가면서(웃음) 대화하는 장면을 제일 먼저 촬영했는데, 같이 호흡을 맞추다 보니 첫 촬영의 긴장이 빨리 풀리더라고요. 진짜 가족처럼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배님에게 감사했어요.
선우뿐 아니라 ‘미조’(손예진)도 소원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아요. 미조와 소원은 보육원에서 자라 새 가정에 입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미조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대본을 읽으면서 미조가 한 말들에 표시를 많이 해두었어요. 이를테면 ‘아무리 사랑받더라도 입양아라는 상처를 지울 수 없다’는 식의 말들이요. 그리고 우연히 아버지를 마주한 소원이 도망치려 할 때 미조가 가지 말라면서 손을 잡잖아요. 현장에서 손예진 선배님이랑 동선을 맞추고 소원과 미조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발전시킨 장면인데, 제 단독 컷을 찍을 때도 선배님이 손을 꽉 잡아주시더라고요. 그 순간 소원의 감정을 더 끌어올릴 수 있었어요.
작품의 후반부에서 소원은 큰 변화를 맞이하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만두었던 피아노 연주를 다시 시작했고, 아버지를 향한 마음의 벽도 조금은 허물어졌어요. 소원의 변화는 내면에서 출발했다고 느꼈어요. ‘나는 입양아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은 채로 살다가 스스로를 오롯이 받아들이게 된 거죠. 그래서 소원이 아주 기특해요. 누구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꿔나가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서른, 아홉>이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번 드라마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아직 서른아홉 살이 되진 않았지만 <서른, 아홉> 속 인물들에게 충분히 공감했어요. 이번 드라마에 등장하는 39세 친구들과 비슷한 이야기가 지금의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주변 상황이나 인간관계를 다시금 돌아볼 기회를 준 작품이에요.
실제로 서른아홉 살이 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평소 10년 후에 대해 자세히 상상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 찐친들과 계속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어요. 서른아홉 살이 되었을 땐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했을 친구들과 <서른, 아홉>의 미조, 찬영(전미도), 주희(김지현)와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
30대 후반까지 돈독한 우정을 이어가는 미조, 찬영, 주희의 관계가 부럽다는 시청자도 많더라고요. 지난 주말에 한 친구랑 이런 대화를 했어요. 아무리 친해도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자주 못 만나기 마련인데, 우리 정도면 진짜 많이 보는 거라고요. 적어도 1~2주에 한 번은 같이 시간을 보내거든요. 맛집을 찾아다니고, 전시도 보러 다니고, 사소한 일상까지 전부 털어놓으면서요.
서른한 살로 살아가는 소희 씨의 지금을 시간에 비유한다면 몇 시쯤일까요? 오전 11~12시요. 본격적으로 업무에 돌입할 시간이니까요. 보통 출근 직후에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다른 일들을 좀 하다가 11시쯤이면 집중하게 되잖아요. 30대가 되니까 10~20대 때보다 저 자신이 조금 더 명확해진 기분이 들어요. 스스로를 잘 다잡고 무언가 해보려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에요.
오전 11시는 긴 오후를 남겨둔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정신이 바싹 들 때의 느낌이 오전과 오후 각각 다른 것 같아요.
직장인의 패턴을 정확히 알고 있네요.(웃음) 친구들이 다 회사에 다니거든요. 제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알려줘서 참 고마워요.
반대로 소희 씨가 친구들한테 알려주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 전 제가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서….(웃음) 아무래도 배우로 활동하다 보면 작품마다 직업을 바꾸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잖아요. 경험을 통해 배운 것들을 제 친구들한테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배우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 일상의 경험이 있다면요?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점이요. 한 작품이 시작되면 수개월 동안 밤낮없이 연기에 몰두해야 해서 체력이 좋아야 해요. 아! 그리고 춤을 춘 것도 도움이 돼요. 눈빛과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몸 또한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춤추면서 몸을 많이 움직여봤으니까 크고 작은 동작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액션 연기도 잘 소화할 것 같은데요? 최근에 ‘번지 피지오’라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처음 도전했다가 매력을 느껴 꾸준히 하는 중인데, 번지점프를 하듯이 천장에 달린 줄과 연결된 하네스를 착용하고 동작을 취하는 방식이 와이어 액션과 비슷하더라고요. ‘준비가 되었군!’ 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웃음) 배우들끼리 합을 맞춰가는 데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언젠가 액션이 필요한 인물을 연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어요. 액션 중에서도 특히 검술이요.
소희 씨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 여러 경험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게 느껴져요.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기간에는 일상이 매일 거의 똑같거든요. 그러다 보면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종종 있는데,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땐 온전히 쉬고 그렇지 않으면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해요.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바쁘게 일상을 보내도 쉽게 지치지 않더라고요.
<서른, 아홉> 이후의 휴식기도 알차게 보낼 예정이겠죠? 그럼요. 다음 작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재미있는 것들로 다채롭게 채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