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지금처럼 머리를 이렇게 짧게 자른 적이 있어요? GOT7 데뷔할 때 말고는 없어요.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자른 건데, 촬영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짧았어요. 딱 1cm였죠. 지금은 그래도 많이 자란 거예요.
어때요? 이미지가 많이 달라 보여요. 훨씬 편해요. 그리고 이 모습이 더 저 같아요. 머리가 길 때는 이미지상 어쩐지 따뜻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웃음) 물론 열심히 다정하긴 하지만, 이 머리가 지금의 저라는 사람한테 더 잘 맞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이렇게 짧은 머리로 어떤 인물을 표현했을지 궁금하네요. 좀 세요. 정제되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반듯하고 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좀 거친 면모가 있어요.
그간 연기해온 인물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반듯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경우가 많았어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선택이었나요? 시나리오가 들어왔기에 가능한.(웃음) 저는 항상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하거든요. 다만 20대 초·중반에는 부드럽고 상냥한 인물이 많이 들어왔고, 맡은 역할을 소화하다 보니 저라는 사람이 대중에게 그렇게 인식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사실 제가 그렇게 로맨틱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죠. 이번에는 감독님이 저에게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발견해주셨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택했습니다.
얼마 전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야차>는 어떤 의미의 선택이었는지 궁금해요. 시원하고 경쾌한 액션영화던데요. 설경구, 양동근, 박해수, 이엘 선배님이 이유였죠. 배우로서 꼭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었던 분들이거든요. 감독님의 전작도 재미있게 봤고요.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어요.
현장에서 배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연기도 연기지만, 선배님들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배운 점이 많아요. 특히 설경구 선배님은 막내인 저한테도 친구처럼 대해주셨어요. 후배 배우들이 현장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중심이 되어주셨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내 자리에 있어야겠다 싶었어요. 물론 선배님의 연기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너무 좋았죠. 언제 또 그런 기회가 있겠어요.
라이브로 직관한 셈이네요.(웃음) 설경구 선배님의 바스트 숏을 찍으면 모든 배우가 모니터 앞으로 쪼르르 가서 지켜봐요. 그러다 선배님이 모니터 보러 오시면 안 본 척 뒤로 빠지고.(웃음) 저를 포함해 몇 명의 배우가 팬심을 마구 드러냈으니, 아마 굉장히 부담스러우셨을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주눅 들고 작아질 수 있는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그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연기를 해나갔어요? 최선을 다하되 욕심부리지 말자는 태도로 임했어요. ‘내가 해봤자 되겠냐’ 이런 거죠.(웃음) 절대 덜 하거나 물러선다는 건 아니고요. 옆에서 저분들의 호흡만 잘 받아도, 온전히 잘 서 있기만 해도 성공이다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것만큼 열심히 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럼 성공이라 봐도 될까요? 성공 못 했죠. 제가 나올 때마다 스페이스 바(정지 버튼)를 눌렀어요. 그러다 ‘그래 끝까지 보자’ 하며 손 부여잡고 봤어요. 그런데 막상 쭉 보니까 제가 아니라 영화가 보이고 재미있더라고요. 시원하고 멋있었어요.
원래 본인이 나오는 작품을 잘 못 봐요?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보려고 애써요. 당연히 봐야죠. 어떻게 했는지 확인해야 그때의 나를 알 수 있으니까요. 모니터링을 충실하게 하는 편이에요.
필모그래피를 보니까 첫 작품을 10년 전에 했더라고요. 그간 출연한 작품 수도 10편이 훌쩍 넘고요. 야금야금 열심히 했네요. 시간을 생각하면 깜짝깜짝 놀라요. 내가 10년차라니.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겠죠? 구체적으로 뭐가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매 순간을 사는 데 충실했거든요. 그런 건 있어요.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뭐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현장에 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연기라는 작업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주체 의식이 생겼다고 할까요?
언제쯤부터였어요? 전환점이 된 시기가 있었나요?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에 출연하면서 ‘내가 앞으로 연기를 진지하게 대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현장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재미있었고요. 일할 때 내 역할이 보여야 직업에 애정과 자부심이 생기잖아요. 그걸 처음으로 발견한 시기였어요. 그 발견이 생각보다 강렬해서 이제는 그거 한번 느껴보려고 작품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일이든 그 발견이 큰 동력이 되어주죠. 반대로 내가 여기서 하는 역할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테고요. 죄송하죠. 출연료 받고 하는 일인데, 그만큼 해내야 한다고 자각해야 하잖아요. 물론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면 몸이 굳어서 연기가 잘 안 되기도 하지만요.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하는 것 같아요.
그간 연기하면서 나와 닿아 있다고 느낀 역할도 있었나요? <사랑하는 은동아>의 ‘현수’요. 다른 작품에선 맡은 인물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다면, 현수는 저절로 이해돼서 그냥 내 안에서 나오는 대로 한 경우예요.
<유미의 세포들>의 ‘유바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정하지만 약간 의뭉스러운 모습이…(웃음) 제가 의뭉스러운 스타일이긴 하죠.(웃음) 바비를 보면 데뷔 초의 제 모습이 생각나요. 저라는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해 남들의 시선에 좌우되곤 할 때였어요. 그럴 때 보통 잘 보이고 싶어 다정하고 착하게 굴잖아요. 본인의 소신을 내세우지 않으려 하고요. 그랬던 사회적인 제 모습들이 바비에게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안쓰러웠어요. 그런데 실제 제 성격과는 달라요. 저 그렇게 부드럽게 말하지도 않고, 불같은 면모도 있거든요.
곧 나올 시즌 2에선 아마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겠죠. 원작 웹툰을 본 사람들은 벌써 바비를 비난할 준비를 하던데요. 욕먹을 각오가 필요할 것 같아요. 누나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니 괜찮겠나?” 묻길래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하긴 했는데.(웃음) 바비를 하면서 욕먹을 일이 생긴다면 그만큼 인물을 잘 소화했다는 뜻이니까 칭찬으로 받아들이려고요. 그리고 끝까지 한 가지 모습으로 가는 것보다 이런 뒤틀림이 있을 때 재미도 있거든요. 배우로서는 인물을 더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연이어 새 작품을 선보이는 와중에 GOT7 컴백 소식도 들려요. 네. 작업은 다 끝냈고 연습하면서 음반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아마 많은 이들이 기다리면서도 기대하지 못한 일일 것 같아요. 그 말, 무슨 뜻인지 알아요. 맞아요. 다들 못 할 거라고 했거든요. 소속사가 다 다른데 어떻게 모일 수 있겠느냐고요. 쉽진 않았어요. 앨범을 내줄 회사부터 찾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딱히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각 멤버들 소속사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고, 다 같이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이것 또한 GOT7의 인복이 아닐까 싶어요.
노래하고 춤추는 거, 꽤 오랜만일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저 중간중간 음악 작업도 많이 하고 춤도 혼자 많이 췄어요. 10년 이상 하던 일이라 안 하는 게 오히려 어려워요. 사람들이 “연기하느라 1년 넘게 안 해서 괜찮겠어?” 하고 묻더라고요. 멤버들도 그랬어요. 진영이 형이 하는 게 제일 궁금하다고요. 그런데 저는 한 번도 노래와 춤을 놓은 적이 없거든요. 그 질문을 받고 그저 웃었어요. “그냥 열심히 했어” 하면서요.
어떤 음악이에요? 새로운 건 아닌데, GOT7으로 활동할 때 타이틀곡으로 쓴 음악도 아니에요. 수록곡 중 하나로 실릴 때마다 우리끼리 ‘이게 우리 음악인데!’ 했던 음악이에요. 제 생각에 GOT7은 우리끼리 노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때 매력이 나오는 팀인데, 그게 담긴 음악이지 않을까 싶어요.
새 앨범도 나오고, 연이어 <유미의 세포들> 시즌 2와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되게 부지런히,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일하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리고 저 서울에 상경한 시골 청년이잖아요. 늘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선배님들이 작품이란 지금의 나를 기억하는 거라고 말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에 깊이 공감해요. 음악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도 계속 하나씩 남기면서 그때의 저를 남기는 게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쉬지 말고 열심히 하자, 번아웃이 오기 전까진’ 하면서 가는 거죠.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번아웃 온 적이 없어요? 왔던 것 같기도 한데, 뭐 어떻게 하겠어요.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나 힘들다고 안 할 수 없으니까요. 다행히 GOT7으로 활동할 때는 힘들면 저를 채워주는 멤버들이 있었어요. “오늘은 너 뒤로 빠져 있어, 내가 할게”라고 말해주는 멤버들 덕분에 번아웃인지도 모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해요? 지금은 집에서 울면서…(웃음) 장난이고요. 대화를 많이 해야죠. 저는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 편이에요. 힘들 때 매니저나 친구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그래 해야지’ 하면서 털고 일어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어떤 상태예요? 비워두는 상태예요. ‘푹 쉬면서 다음을 잘 준비하자’ 하는 마음으로요. ‘아, 춤추고 싶다!’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저 진짜 춤 많이 추고 싶었거든요. 쇼케이스 준비할 때 처음엔 곡이 지금보다 수가 적었는데 제가 늘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 춤 좀 추자” 하면서요. 춤바람을 일으켜보려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