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아픔을 달래주고 웃음을 주며
한세기를 함께 한 송해가 영면에 들었습니다.
송해는 1927년 4월27일
황해도 재령군 재령면에서 출생했습니다.
고향에서 성악을 공부했고,
한국 전쟁 당시 미 군함을 타고
부산까지 내려왔다가
남한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죠.
실향민으로 바다를 건너온 그는
바다 해를 예명으로 썼습니다.
우리가 아는 송해의 시작입니다.
악극단에서 가수로 활동하다
특유의 입담을 살려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방송과 영화에 코미디언으로 등장하며
점점 더 대중과 함께 호흡했습니다.
1986년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후
방송 활동을 쉬었고
2년 뒤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으며 MC 송해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전국 방방 곡곡을 누비는
‘전국노래자랑’에서 그는
삶의 애환을 녹인 노랫소리에
함께 눈물을 흘렸고,
구수한 웃음을 나누며
힘겨운 시절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준 이이기도 했습니다.
1988년부터 2022년까지,
34년동안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은
그의 기록은 국내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한 프로그램 진행자입니다.
또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
(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걸 초월한 것 같다”
송해의 소감입니다.
수십년을 한결같이 활동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어려움입니다.
짧고 빠른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요즘은
더욱 더 그의 삶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잦은 건강문제로 병원을 찾으면서
많은 이들이 송해의 안녕을 걱정했습니다.
결국 34년간 함께 한
‘전국노래자랑’의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우리 국민들께 주셨던
웃음과 즐거움을 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내려주시길 기도드린다.
제가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이 멘트를 하면 가장 좋아하셨죠?
‘여러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가 아니고
원래 사면이 바다였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송해,
그 어른은 바다셨습니다,
송해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용식
“언제나 전국의 모든 국민과 함께 하셨던 선배님,
국민들과 오랜 시간 웃고 울며
한마음으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리수
“제일 먼저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이끌어주신 선생님,
잘되고 나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세요”
-송가인
송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집니다.
일요일을 깨우던 ‘전국~ 노래자랑’
그 목소리를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