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웅 마리끌레르

맥시 셔츠 재킷 비안 키미이예(Bien Kimiiye), 니트 슬리브리스 크롭트 톱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스니커즈 라프 시몬스 아디다스 (Raf Simons ×adidas),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앨범이 나오기 전에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꺼내도 될지 모르겠지만… 원래 3월에 나오려던 계획이 미뤄진 거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3월에 일곱 트랙을 담은 앨범을 거의 완성했는데, 이대로 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 없어 모두 엎고 새로 만들다가 또 버리고. 그러다 이제야 앨범의 형태가 보이는 것 같아 마무리 짓게 됐어요. 좀 늦더라도 나중에 들었을 때 후회하지 않는 트랙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그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데뷔할 때부터 늘 옆에 조력자 같은 분들이 있었어요. 앨범을 구상하고, 녹음하고, 믹싱하는 단계마다요. 아주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다 보니 앨범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제 방식대로 컨트롤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혼자 하는 방법을 모르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모든 곡이 제가 만든 거지만 온전히 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만의 것을 담은 앨범을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애써 만든 것을 버리고, 하지 않던 부분까지 관여하고. 어느 때보다 난관이 많았을 것 같아요. 3월에 엎을 때는 그 이후로 두 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음악도 안 했고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었거든요. 그러곤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고 할 수 있을지, 저를 멀리서 지켜보는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이후의 난관을 이겨내고 새 앨범을 만들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다수의 취향을 담은 곡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저는 만족하는 앨범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안병웅 마리끌레르

스카프 레씨토(Lecyto).

새로운 작업물을 공개하기 전에는 누구나 떨림과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그런 확신이 들었다면 불안감은 조금 가벼워졌다고 봐도 될까요? 이전보다는요. 자신감은 아니고 떳떳한 마음인 것 같아요. 아주 많이 고민하고, 시도해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길 거듭했고, 그 모든 결정의 중심에 제가 있었으니까요. 결과를 모두 제가 다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아요.

후회하지 않는 방식을 찾았어요? 분위기에 휩쓸릴 때가 좀 있었어요. ‘같이 작업할래?’라는 말에 들떠서 어쩌다 보니 곡을 내게 되는, 당시에는 즐겁게 지나가지만 돌아보면 내가 왜 했을까 싶은 것들이요.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요. <쇼미더머니> 끝나고 이때 내야 한다는 생각에 낸 곡도 있거든요. 모두 제가 한 일이지만, 주체적이지 못한 선택이었죠. 이제는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저를 기준으로 삼고 가자는 기조가 생겼어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만든 이 앨범에 넣고 싶었던 것,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게 꼭 기존에 없던 곡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데,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건 못 봤다 싶은 인상을 주려고 했어요. 익숙한 새로움이랄까요?

작업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가요? 이번 앨범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요.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회사의 형, 누나들이 웃으면서 ‘내가 네 나이 때는’이라 말하는데, 저는 진심으로 스물넷이라는 나이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시작할 때 상상한 스물네 살의 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저한테 너무 많이 실망했고, 그래서 이번 앨범으로 어느 정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요. 다들 아직 어리다고 말할 거란 걸 알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마음으로 작업해요.

안병웅 마리끌레르

톱과 니트 카디건, 액세서리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과거에 상상한 스물넷의 안병웅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슈퍼스타였던 것 같아요. 저도 제 음악도 지금보다는 훨씬 인정받는 상황을 꿈꿨거든요. 그리고 저도 제 음악을 인정하고 좋아하길 바랐는데, 아직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정도예요.

이제는 가야 할 길이 확실히 보이나요? 꿈꾸는 곳에 닿을 수 있는 길이요. 감히 얘기하자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아요. 경로를 알게 됐다기보다 어떻게 가야 할지 자신이 생겼다고 할까요? 나 자신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됐거든요. 예전에는 그런 거 없이 디스하고 싶으면 하고, 다른 거 하고 싶으면 또 하고, 약간 망나니처럼 지냈는데(웃음), 지금은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좀 떨어져서 상황을 살피려고 해요.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패기가 넘치는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일들도 있잖아요. 아쉽지는 않을까요? 얼마 전에 그 시절에 한 인터뷰들을 본 적이 있어요. 제가 봐도 많이 건방져 보이더라고요.(웃음) 물론 아쉽기도 해요. 그 태도가 원동력이 되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지금은 조심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으니까요. 변해가는 게 싫은 건 아닌데, 하고 싶은 걸 확 해버리지 못하는 데 대한 미련은 있어요.

안병웅 마리끌레르

반소매 셔츠 라퍼(laugher), 안에 입은 슬리브리스 롱 티셔츠 어나더유스(Another Youth), 레이스업 스니커즈 발렌시아가(Balenciaga),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변해가는 과정에서 음악적 취향이 바뀌기도 했나요? 많이 바뀌었어요. 붐뱁 장르로 저를 알렸기 때문에, 그게 대중이 원하는 제 모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는 무조건 붐뱁을 해야 해’ 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제 생각이었어요. 그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선입견을 버리고 이것저것 해보려고 노력해요. 최근에 카키 형이랑 낸 ‘Get the Bag’이 그중 하나고요.

그래도 여전히 붐뱁을 좋아하죠? 너무 좋아하죠. 그 마음은 변함없어요.

음악적으로 다양하게 시도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요. 제 색은 변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좋아질 수도,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음악을 탐구하는 마음은 놓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좋아서 음악을 하는 거거든요.

찾아보니 MBTI 성격 유형이 INTP던데요. INTP의 기질 중 하나가 파고들면서 연구하는 걸 좋아하는 거래요. 그런데 게을러서 완성하기 쉽지 않은.(웃음) 오! 맞아요. 제가 그래요.

그래도 작업물을 내긴 해야 해요. 더 미루지 말고. 그럼요. 사람이 본능만 가지고 살 순 없잖아요. 살을 깎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타고난 게으름을 이겨내고 할 거예요. 거의 다 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