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 에어캡 톱 엘듀(ELBU), 티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뷔스티에 라인반드(Leinwande), 스커트 기준(Kijun),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베이비 야나 비닐 드레스 엘듀(ELBU), 티셔츠와 스커트 모두 기준(Kijun),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1990년대 삐삐밴드로 시작해 2000년대 EE, 그리고 2017년에 결성된 밴드 넘넘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아티스트 이윤정과 2020년대의 음악가 베이비 야나의 만남. 세대도, 음악 안에 담긴 언어도 완전히 다르지만, 이들이 나누고 공유하는 멋은 같은 형상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같은 무대에 오른다.

인스타그램으로 만난 사이라고요. 이윤정 같이 작업할 포토그래퍼를 찾으려고 인스타그램을 자주 둘러보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한눈에 들어온 되게 멋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만큼 모델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얘 왜 이렇게 멋있지?’ 싶었어요. 그 사람이 야나였죠. 모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음악을 한다는 거예요. 더 관심이 생겨서 야나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좋아요’를 눌렀나? 그게 시작이었어요. 베이비 야나 맞아요. 엄청 놀랐어요.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아티스트가 제 인스타그램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다니, 너무 좋아서 바로 디엠을 보냈죠. 이윤정 제 작업을 아주 잘 보고 있었다고, 멋있다고 디엠을 보냈더라고요. 그렇게 인스타그램에서 첫인사를 나눴죠. 베이비 야나 그러다 이번 EP 앨범의 더블 타이틀 중 하나인 ‘GO!’라는 곡을 작업하던 중 윤정 선배님이 생각났고, 제가 같이 하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실제로 만나게 됐어요.

협업을 제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베이비 야나 꽤 오래전부터 리스너로서 선배님 음악을 좋아한 것도 큰 이유였지만, 그보다 우리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날지 궁금한 마음이 더 컸어요.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이윤정이라는 아티스트와 2020년대에 탄생한 베이비 야나의 조화가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기대보다도 더 놀랍고 재미있더라고요. 선배님 첫 벌스 듣고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윤정 & 베이비 야나 (동시에) 으아아악!(웃음) 진짜 이랬어요. 베이비 야나 사실 녹음한 날이 실제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어요. 따로 연습도 안 했고, 심지어 선배님은 벌스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썼거든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게 제 음악과 썩 잘 어울리는 거예요. 녹음도 두세 번 만에 끝났어요. 그날의 놀라움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뭔가 통하는 게 있었던 걸까요? 이윤정 느낌적인 느낌이랄까요.(웃음) 제가 매번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아니고, 아무리 연습하고 노력해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야나의 곡은 들었을 때 ‘내가 이렇게 하면 잘 섞일 수 있겠다’는 지점이 있었고, 결국 그게 서로 잘 맞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이번 작업에 대해 ‘에일리언은 에일리언을 알아보는 법!’이라는 글을 남긴 거죠? 이윤 맞아요. 야나가 지금 하는 일들이 미리 확정 짓기보다 그때그때 본인의 생각을 풀어내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저 역시 춤을 출 때도, 스타일링을 할 때도,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쓸 때도 ‘이건 내가 놓치지 말고 꼭 표현하고 넘어가야겠다’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동질감을 느낀 것 같아요. 이런 친구 되게 오랜만에 본다 싶더라고요. 베이비 야나 제 입장에서 서로 통했다, 공감 가는 지점이 있었다고 말하는 건 과한 표현인 것 같고요. 그보다는 이제 시작하는 상황에서 제 방식이 괜찮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선배님을 만나면서 이대로 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은 거죠. 시대가 변하면 트렌드도 바뀌고, 음악을 즐기는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럼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선배님은 오랜 기간 음악을 해오면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나아가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니트 베스트 라인반드(Leinwande), 레이어드한 베스트 퍼버즈(Perverze), 아이보리 슬리브리스 톱과 팬츠 모두 기준(Kijun), 스커트와 리본 오브제 모두 2000아카이브(2000Archives),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라우스 누템퍼러 바이 키집(Nutemperor by KIZIP), 베스트 샬롬(Shalom), 레이어드한 스커트 퍼버즈(Perverze), 도트 무늬 팬츠 키집(Kizip), 헤드피스 갓섬웨어(Godsomware).

 

어딘가 닮은 구석이 보이는 베이비 야나의 모습을 보며 아티스트 이윤정의 시작점을 돌아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윤정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가수로 성공할 거야’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작업물을 계속 남기자는 의도로 만든 아트워크 개념으로 대했어요. 그래서 돈으로 보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야나한테서도 그런 면이 보이더라고요. ‘내가 이걸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는 태도가 없어서 좀 멋있어요. 아닌가? (웃음) 베이비 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아요.(웃음)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힐 때도 있긴 하죠. 그렇지만 그게 제가 음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아닌 거죠. 돈과 인기를 생각했으면 이런 음악도 안 했고, 오늘 같은 컨셉트의 화보 촬영도 안 했을 걸요, 하하.

두 분이 음악을 대하는 방식과 을악을 만드는 태도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반대로 다른 지점은 그 안에 담긴 언어들인데요. 베이비 야나가 우주, 사랑, 파라다이스 같은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을 노래한다면, 이윤정의 음악에는 보다 일상적인 언어가 많이 담겨 있어요. 이윤정 시기마다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주, 사랑, 그리고 나 자신. 이런 소재는 지금의 야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그 시기에 놓치지 않고 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저도 20대 때는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고요. 그리고 지금의 저는 좀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예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뉴스들에 대해 ‘이런 일이 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아요. 요즘 쓰는 가사에 사회문제를 꼬집고 비꼬는 이야기가 많은데, 다만 이게 잔소리처럼 들리게 하고 싶진 않아서 덤덤하게 툭툭 뱉는 식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다른 이야기를 꺼내게 된, 전환점이 된 시기는 언제였나요? 이윤정 어휴, 애 낳아봐.(웃음)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이 맞나 봐요.(웃음) 이윤정 혼자서 풍파를 겪던 때와 어떤 존재를 지키면서 세상을 마주해야 할 때는 완전히 다른 일이 터져요.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낳은 아이뿐 아니라 다음 세대와 소통하는 방식에서도 고민이 많아지고요. 여든 살, 아흔 살이 되어도 지금 야나와 같은 이들과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음악을 나누고 싶다. 이런 목표가 새로 생긴 것 같아요.

 

이윤정 에어캡 톱 엘듀(ELBU), 티셔츠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뷔스티에 라인반드(Leinwande), 스커트 기준(Kijun),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베이비 야나 비닐 드레스 엘듀(ELBU), 티셔츠와 스커트 모두 기준(Kijun),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블라우스 누템퍼러 바이 키집(Nutemperor by KIZIP), 베스트 샬롬(Shalom), 레이어드한 스커트 퍼버즈(Perverze), 도트 무늬 팬츠 키집(Kizip), 헤드피스 갓섬웨어(Godsomware).

 

세대가 다른 이와 소통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앞선 세대라면 더욱 그럴 테고요. 덜 고생스럽게 가도록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는 것과 묵묵히 응원하는 것 중에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할지 고민될 테니까요. 이윤정 무척 어려워요. 야나와 같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어려워하고 있을 때 제 눈에는 조금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이면, 언제든지 그 방법을 다 꺼내어 주고 싶어요. 그게 도움이 되어 더 즐겁게 음악을 하면,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또 스스로 부딪히는 게 없으면 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그래서 둘 다 필요한 것 같아요.

베이비 야나 입장에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요, 무언의 지지가 필요한가요? 베이비 야나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죠. 워낙 많아서 한번 날 잡고 다 물어보려고요.(웃음)

세대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세대를 바꿔보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베이비 야나가 1990년대에 음악을 했다면요? 이윤정이 2020년대에 음악을 시작한다면요? 베이비 야나 이번 앨범 <SPACE MULAN>을 준비하면서 1990년대 K-팝을 많이 찾아보고, 실제로 거기서 영감을 받은 지점도 많아요. 그 때문인지 오히려 더 잘 맞았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보다 더 파격적인 면도 있잖아요.

맞아요. 음악이나 비주얼이나 시대를 역행하는 이들이 있었죠. 이를테면 삐삐밴드 같은. 이윤정 세기말이라 그랬나 봐요.(웃음) 그런데 사실 표출하는 면에서 쉽지는 않았어요. 검열의 시대였잖아요. 음악 방송 하면 꼭 PD가 와서 이거 안 돼요, 저것도 안 돼요 하며 엄청 막았어요. 그런데 저보다 훨씬 노출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더 직설적으로 야한 가사를 쓰는 팀도 있었는데, 유난히 저한테 제재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사상의 문제로 검열한 게 아닐까 싶어요. 베이비 야나 얘기를 들어보니 쉽진 않을 것 같네요. 그런데 (그 시대에) 가보고 싶긴 해요. 뭔가 지금 제가 하는 음악을 더 자유롭게 해볼 수도 있겠다 싶거든요. 이윤정 제가 만약 지금 20대고, 막 음악을 시작했다면? 1990년대에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아이돌 음악이 만연한 신에서 ‘이게 다가 아니야!’ 하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웃음) 어느 시대든 그런 사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야나가 그중 한 명이고요.

 

베이비 야나 드레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레이어드한 스커트 엠에스지엠 바이 한스타일닷컴(MSGM by hanstyle.com), 네크리스 갓섬웨어(Godsomware). 이윤정 후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네크리스 뛰에우(Tuesou).

 

황금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음악 하는 이들에게 황금기는 어느 시대였을까요? 베이비 야나 글쎄요, 어떤 시대나 똑같지 않을까요? 모양만 다를 뿐. 예전에 비해 트렌드가 변하는 주기가 빨라져서 어려운 건 맞지만, 또 그걸 좇으려고 애쓰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치중하면 시대를 가리지 않아도 될 거예요. 또 누군가는 빠르게 전환되는 속도가 오히려 재미있을 거고요.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윤정 맞아, 사람들마다 환경을 다르게 받아들이니까. 다만 저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지금이 음악을 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관객과 대면하면서 공연해야 즐거운 사람인데, 팬데믹 탓에 공연 기회가 확연하게 줄었거든요. 랜선으로 잘 생존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던데, 저는 어려워요. 베이비 야나 그런데 또 주어진 환경이 쉬우면 재미가 없잖아요. 이윤정 이것 봐요. 우리 야나 다 컸어요. 베이비가 아니에요.(웃음) 베이비 야나 어렵고 힘든데, 하나씩 하다 보면 성장하는 게 느껴지니까요. 저도 계속 배워가는 중이에요.

그럼 시대가 아닌 특정 무대로 한정 지었을 때, 두 분에게 궁극의 무대는 어떤 모습인가요? 베이비 야나 너무 많죠.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에 너무 가보고 싶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같이 음악에 빠져 미친 듯이 노는 페스티벌을 경험하고 싶어요. 그런 무대를 경험하고 나면 제 음악이 또 달라질 것 같거든요. 이윤정 제가 2011년에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코첼라 무대에 올랐는데, 그땐 그게 그 정도로 대단한 기회인지 몰랐어요. 나중에야 ‘그렇게 큰 무대였어?’ 싶었고요.(웃음) 베이비 야나 진짜 제 롤 모델이라니까요. 이윤정 저는 앞으로 생기는 모든 무대가 꿈의 무대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웃음) 예전에는 무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되게 복잡하고 진지해졌어요. 무대마다 퍼포먼스도, 가사도 새로 짜면서 거기서 뭘 해야 할지 한없이 연구했거든요. 그런 일들이 다 지나고 이제 모든 게 간단해지다 보니 오히려 무대만 있다면 어떤 형태든 다 서고 싶어요. 오늘도 인터뷰 끝나고 라이브 영상 찍잖아요. 처음에는 못 하겠다 싶어서 거절했는데, 좀 지나고 보니까 그 말한 게 무척 후회돼서 야나한테 연락해서는 ‘할게, 할게’ 했어요. 뻔한 말이지만, 지금이 제 남은 인생에서 제일 젊을 때잖아요. 더 이상 주저하면 안 된다, 앞으로 생기는 모든 일들에 감사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하는 태도죠. 오늘이 궁극의 무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