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이하 <종이의 집>)의 파트 1이 공개되었습니다. 감상평을 보면서 호오가 분명하게 나뉘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반응을 열심히 찾아 보진 않았어요. 여러 말들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건 누군가에겐 필요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들뜨기도, 무너지기도 쉬운 일이니까요. 일희일비하게 되는 거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제 이름 검색하는 일도 그만둔 지 10년이 넘었어요. 그저 내 길을 가고 싶거든요. 작품을 할 때도 같은 이유로 반응을 찾아 보지 않아요. 그것도 하다 보면 중독되거든요. 그러니까 아예 하지 말자 하게 된 거죠.
첫 영화 <베테랑>을 찍고 다음 작품 <세자매>를 하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그리고 1년 반이 지나서 <종이의 집>이 나왔고요. <베테랑>을 끝내고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2년여의 공백기가 있었어요. 이후 복귀하려고 할 때 고민이 되는 지점이 많더라고요. 연기에 확신을 갖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좋은 워밍업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토크 예능 프로 <방구석1열>에 출연했거든요. 그 프로에 참여하면서 1백여 편의 영화를 보게 됐어요. 어마어마한 감독, 작가, 배우들을 만났고요. 제가 영화과를 나왔는데, 뒤늦게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만큼 배우는 것이 많았죠. 그렇게 어느 정도 확신을 쌓아갈 때쯤 <세자매>를 하게 됐어요. 비록 두 번 정도 거절하고, 고민한 끝에야 시작했지만요. 배움의 시간을 거쳐서 그 영화 찍고 나니 깡이 좀 생기던데요?(웃음) 이제는 가리지 말고 해보자 싶었고, <종이의 집>도 그런 마음으로 찍은 작품이에요. 그리고 1년 반 사이에 아직 개봉하진 않았지만 영화 <시민 덕희>와 <1승>에도 출연했어요.
이전보다는 선택의 시간이 짧아지고, 결정하기 수월해졌나요? 아뇨, 배턴터치 하듯이 가보자 싶었는데, 성향상 쉽진 않았어요. 순서상으로는 <시민 덕희>와 <1승> 촬영을 마친 후에 <종이의 집>을 제안받은 건데 이렇게 바로 다음, 그다음을 하려니 좀 버거웠어요. 그나마 캐릭터를 이해하고 잡아나갈 몇 달의 시간이 주어졌고, 이전과 다른 걸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결정한 거죠. 아무래도 저는 연기할 인물을 만났을 때, 좀 깊숙하게 들어가보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거창하게 세계관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알고 가는 것과 주어진 설정만 알고 임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에게 ‘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좀 더 내가 표현할 거리를 찾고 싶은 거죠.
그런 면에서 ‘나이로비’라는 인물은 파고드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했을 것 같아요. 사기꾼이라는 간단한 설정만으로도 속내를 알기 힘든 사람이라는 걸 예상했을 테니까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 서사가 장황한 인물이에요. 첫 파트에서는 사기꾼답게 좀 가볍게 날아다니는 모습이라면, 두 번째 파트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나와요. 특히 나이로비가 표현하는 감정에 대해 저 스스로 납득하고 연기하는 게 아주 중요했어요. 비주얼을 만드는 부분에서도 고민이 많았고요. 저에게는 여러모로 도전이었어요.
나이로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만큼 이번 작품은 앙상블에 대한 고민도 컸을 것 같습니다. 한정된 공간에 다수의 인물이 공존하고, 그러면서 다양한 관계가 생기잖아요. 아직 연기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혼자 직진하는 것보다 주고받는 걸 좋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제 스스로 깨달았어요. 그래서 앙상블에 대한 고민과 기대는 늘 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좋았어요. 실제로 배우들끼리 사이가 좋았고, 그래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컸어요. (유)지태 오빠는 20년 만에 만나는 거라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저 반갑기만 했고, (이)원종 선배님은 넓은 시선으로 모두를 아울러주셨고, (전)종서는 스스로 관계 맺기가 어려운 사람이라 말한 것에 비해 금세 모두와 가까워졌어요. 사람들 덕분에 촬영하면서 참 좋다,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작품이든 만족과 아쉬움이 공존하기 마련일 텐데요. 이번 작품은 어떤 마음들이 남았나요? 좀 전에 얘기한 것처럼 배우들 간의 호흡도 그렇지만 나이로비라는 인물을 제 방식대로 구축한 것도 만족스러운 지점이에요. 맞고 틀리고를 떠나 제가 충분히 생각하고 표현한 지점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아쉬운 부분이라면,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점이에요. 원작이라는 지표가 없었으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유롭게 감상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보면서 자꾸 원작의 흔적이나 원작과 다른 지점을 찾게 되잖아요. 저는 아예 다른 작품이라 생각하고 임했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그것도 어떤 면에서는 재미의 요소겠지만요.
미스봉(<베테랑>)에서 미옥(<세자매>), 그리고 나이로비(<종이의 집>). 다음은 어떤 인물일까요? 또다시 깊숙하게 들어가보고 싶은 인물을 이미 만났나요? 지금 얘기할 순 없지만 배역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재미있게 탐구할 수 있는 몇몇 인물을 찾아서 준비하는 중이에요.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서두르지는 않으려 해요. 제가 빠져들 수 있는 캐릭터를 기다리는 덕목도 갖춰야 할 것 같거든요.
모델 활동을 하던 10대 시절부터 꾸준히 작품을 제안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미 지난 일이지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고 가정한 적도 있나요? 당연히 해봤죠. 학교 다닐 때도 왜 연기를 안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열아홉 살 때부터 연기 제안을 받은 데다 대학도 영화과를 갔으니 안 하는 게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조금도 아쉬움이 없어요. 그땐 모델로서 저를 표현하는 게 좋았거든요. 만약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를 찍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겠죠? 배우로서 어떻다는 게 아니라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아요. 어쩐지 결혼도 안 했을 것 같고.(웃음)
반대로 미래를 가정해보면 어떤가요? 시간이 한참 흐른 후를 생각하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요즘 스스로 이런 질문을 품어요. 계속 하고 싶은데 바람처럼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이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계속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일단 지금까지는 열심히 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잘’ 가고 싶거든요. ‘일단 간다’가 아니라요. 이제 막 연기에 대한 재미를 알았는데, 이 마음도 잘 간직하고 싶고요.
열심히, 잘 나아가는 길에서 만나고 싶은 작품과 인물도 있겠죠? 많죠. 미옥이보다 더 적나라하고 리얼하면서도 나이로비의 의뭉스러움이 뒤섞인 인물도 연기해보고 싶고, 박해영 작가님이 그려내는 인물이 되어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보고 싶기도 해요. 노희경 작가님이 만드는 일상의 세계에도 빠져들고 싶고요. 제가 노희경 작가님 작품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걸 아는 친구들이 얼른 전화해서 그 사단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무슨 전화를 해. 하하.
듣고 보니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덤덤하게 머무는 장윤주 배우의 얼굴이 궁금하네요. 전화해보세요.(웃음) 저도 그런 작품에서 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그런데 안 들어와요. 왜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