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촬영을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많이 좋아진 거예요. 예전에는 사진에 담긴 제 모습을 보는 게 부끄러웠는데, 평소에 사진을 자주 찍어보며 노력했더니 점점 익숙해졌어요.
본인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가요? 제 연기를 살피는 건 아직 조금 어색해요. 부족한 점을 찾으려 하는 편이라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2018년에 데뷔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어요. 직접 경험해본 촬영장은 어땠나요? 굉장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 놀랐어요. 데뷔작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첫 촬영을 앞두었을 땐 너무 긴장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청심환을 먹었어요. 그런데 제 몸에 맞지 않았는지 떨리는 기분이 사그라들지 않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당시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촬영장으로 향할 때면 긴장감이 들어요. 편‘ 하게 하고 오자’ 하는 생각으로 가려고 노력해요.
혼자 연습할 때와 달리 현장에서 연기할 때 발현되는 것이 있죠? 맞아요. 현장에 가면 제가 대본을 읽으며 떠올렸던 상황이 실제로 구현되어 있잖아요. 제 상상과 같은 모습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이를테면 저는 등받이가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떠올렸는데, 현장에는 스틸로 된 스툴이 있는 식이죠. 그래서 연기의 전체적인 틀은 충실히 준비해 가되 세부적 요소에 대해서는 주로 현장에서 고민하려 해요. 감독님을 비롯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요즘은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도 느끼고 있어요. 연기하면서 제 성격이 더 밝고 활발해진 것 같아요.
연기가 이끌어낸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어요. 예를 들어 전 평소에 화를 잘 못 내는 편이데, 소리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을 찍을 때 제가 지은 표정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연기하면서 ‘내가 이런 감정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더라고요.
감정 표현이 풍부해지면 타인의 감정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길 수 있죠. 맞아요. 평소 지인들을 관찰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해보려고 해요.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왜 이토록 행복할까?’ 하면서요. 연기를 시작한 후 이런 시간을 더 자주 가지고 있어요.
연기에 도움이 되는 본인의 기질이나 성정이 있다면요?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연기할 때 눈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전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저도 지금 대화를 나누며 느낀 점이에요. 상대와 눈을 참 잘 맞추는구나 하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함께한 사람들도 배현성 배우의 눈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 같아요.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분이 제 눈에 대한 칭찬을 해주셨어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가 연기한 ‘정현’의 아버지 ‘인권’ 역을 맡으신 박지환 선배님은 제 눈을 보며 ‘이놈 봐라?’ 싶을 때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어요.(웃음) 저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도 하셨고요. 정현과 인권이 가진 복잡한 서사의 영향도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요.
정환과 인권이 화해하며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화제였죠. 이 장면을 연기한 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오열하는 장면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는데, 선배님의 연기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어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감정이 밀려왔죠. 마음이 되게 먹먹했고, 촬영을 마치고도 감정이 잘 추슬러지지 않더라고요. 여운이 길게 남은 만큼 깊이 각인된 장면이에요. 그 장면을 촬영하던 순간에는 선배님과 제가 진짜 아빠와 아들로 존재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연기하며 배우가 내 평생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죠. 연기라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것. 초심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저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이 참 재미있었거든요. 그 재미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온전히 재미만 느낄 수 있는 일은 아닐 거예요. 체력과 감정 소모도 많을 테고요. 지난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어디에서 얻나요? 주변 사람들이 연기하는 제 모습을 좋아해줘요. “어제 드라마 잘 봤다.” “연기 잘하더라.” 이런 말들이 제게 힘을 줘요. 시청자의 반응도 제가 배우로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고요.
배우가 된 후 자주 들은 말이 있다면요? 아빠와 엄마 중 누구를 더 많이 닮았느냐는 질문이요.(웃음)
대답이 궁금한데요.(웃음) 둘 중 한 분을 이야기하면 다른 한 분이 서운해하실 거예요. 그런데 두 분 다 어딜 가면 제가 당신을 더 닮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선한 인상이 배현성 배우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다른 인터뷰에서 악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어요. 무표정일 때는 강렬한 느낌이 든다는 말을 꽤 들었어요. 제 얼굴에 선악이 공존한다는 점을 극대화한다면 제 연기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기회가 된다면 칼을 다루거나 몸을 많이 쓰는 액션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라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9월 30일에 공개하는 드라마 <가우스전자>에서 배현성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사내에서 벌어지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다고 알려졌어요. 장르도, 제가 맡은 ‘백마탄’이란 인물의 성향도 전작과 결을 달리해요. 마탄은 독립을 꿈꾸며 가우스전자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재벌 2세예요. 살아온 환경에 차이가 있는 동료들과 부딪칠 때 보이는 반응으로 웃음을 자아내죠. 마탄의 솔직하고 뻔뻔한 매력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연기하고 있어요. 그를 연기하다 보니 제 안의 뻔뻔함이 커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웃음) 연기를 통해 제 안의 어떤 면을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나와 다른 면을 지닌 사람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마탄을 알아가기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했나요? 마탄이라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지 자주 상상했어요. 길을 가다가 ‘마탄은 어떻게 걸을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의 걸음걸이는 어떨까?’ 상상해본 뒤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걸어보는 식으로요. 인물의 일상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좀 더 빨리 이해되는 것 같아요.
<연애플레이리스트>의 ‘하늘’,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홍도’,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현’ 등을 거치며 배우로서 차근차근 성장해왔어요. 멋진 감독님, 작가님, 선배님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문득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나온 시간을 통해 많이 배웠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어요. 일찍이 저를 믿어주셨던 분들에게 ‘현성이가 이렇게 잘하고 있습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신뢰가 가고, 다음 연기가 궁금해지는 배우가 되기 위해 이뤄야 할 단기 목표는 무엇일까요? <가우스 전자>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시청자가 ‘배현성 배우가 이전과 다른 옷을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네’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자신 있는 거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신 있다고 말하면 자신감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그럴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