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종서와 함께한 마리끌레르 BIFF 에디션

코트와 니트 원피스 모두 블루마린(Blumarine).

작품을 선택하는 시선에 변화가 일어났을 때 택한 작품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 1>(이하<종이의 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출연할 작품을 정할 때 대중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차에 <종이의 집> 을 만났어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한 거죠.

시선이 바뀐 이유가 있나요?
제가 외향적인 편이 아닌데, 연기를 시작하면서 이런 성향이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왜 저렇게 숨어서 활동하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 이런 시선을 많이 받았죠. 게다가 작품을 선택할 때 제가 좀 남다른 시선을 가졌다는 걸 인식하게 됐고요. 제 기준에는 좀 시시하다 싶은데 사람들은 무서워서 못 보겠다고 하고, 이건 너무 재미있다 하면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그러면 이 부분에 의문을 가져야 하나 싶었던 거죠.그 과정에서 이제 좀 다른 선택을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작품 선택에 오로지 제 취향만 반영했다면, 이젠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추가하게 된 거죠.

이 생각도 전종서 배우에 대한 오해일 수 있겠는데
요? 왠지 그런 말을 들어도 괘념치 않을 것 같은데, 의외의 변화인 것 같아요. 그런 전환이 일어난 지 2년 정도 지났는데, 최근에는 다시 원래대로 가자는 식으로 바뀌었어요.(웃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대중성과 멀어지겠다는 뜻은 아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다만 스스로 꽂혀서 좀 미쳐 있는 때가 가장 나다울 수 있으니, 그걸 잃지는 말자고 다짐한 거죠. 결국은 두 지점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임인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방식을 택한 셈이네요. 밸런스를 맞춘
다는 게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맞아요. 심지어 요즘은 채널이 워낙 다양해서 제가 어떤 밸런스를 맞춘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의 취향이란 게 언제든 달라질 수 있잖아요. 저도 좋아하는 게 일주일에 일곱 번도 넘게 바뀌는데요.(웃음)어떻게 보면 운인 것 같아요.

배우 전종서와 함께한 마리끌레르 BIFF 에디션

블랙 재킷과 팬츠 모두 생 로랑(Saint Laurent).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임한 <종이의 집>에선 어떤 경험을 했나요? 몇 편으로 나뉘어 공개하는 작품의 형태도, 다수의 배우들과 함께한 것도, 이렇게 오랜 기간 찍은 것도 제겐 모두 처음이에요. 이전 작품들을 할 때는 운 좋게도 늘 촬영장에 가면 제가 찍을 분량이 있었는데, <종이의 집>은 달랐어요. 어떤 날은 엄청 많이 찍어야 했고, 또 어떤 날에는 대사 한 마디도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어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은 이런 점이 다르구나 하면서 환경 면에서 새로운 점을 느낀 것 같아요.

다수와 함께하는 작업은 어땠나요? 내향인에겐 꽤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 다수를 1년 동안 보면 되게 작고 조밀해 보여요. 당연히 처음엔 힘들었죠. 어쩐지 집에 가고 싶고.(웃음) 잘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좋은 동료와 선배님들의 힘이 컸어요. 누구 하나 저를 따갑고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건강하지 못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었어요. 다같이 있을 때면 웃을 일이 많았죠. 예상보다 훨씬 친해져서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것 또한 변화 중 하나겠어요. 작품을 하러 가서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돌아오는 것이요. 맞아요. 팸이 만들어진 거죠.(웃음)

그럼 연기를 하기 전후로 시점을 옮기면,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어릴 때, 나이가 한 자릿수일 때부터 했어요.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상이 어린 저에게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거든요. 첫 작품인 <버닝>을 할 때까지 계속 그 환상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후로는 ‘영화 같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지금은 영화가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영화 작업을 하는 것이 일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저는 직업이라고, 그러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서 일로 대하는 시점은 아니고, 영화라는 걸 좀 더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된 것 같아요.

이렇게 영화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게 결국 긍정적으로 작용하나요? 좋아요. 여전히 동경하고 크게 손댈 수 없는 거라고 느끼면 피곤할 것 같아요. 영화와 더 가까
워지고, 그래서 더 사랑하게 된 지금이 좋아요. 그런데 연기를 꽤 늦은 나이에 시작했어요. 어릴 때는 꿈이 생겼다고 해도 그걸 제 힘으로 이루긴 어렵잖아요. 게다가 부모님은 학교생활 잘 하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서 평범한 인생을 살길 바라셨고요. 시간이 좀 지나서야 그럼에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원래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잖아요.(웃음)

영화에 빠져 배우를 꿈꾸던 시절의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건가요? 그때의 저는 현실에서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무언가 영화를 끊임없이 봐야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비디오를 엄청 많이 빌려서 봤고, 중·고등학생 때는 아이팟에 담아 등교해 수업 시간에도 영화만 봤어요. 하루에 서너 편은 봤을 거예요. <천국의 아이들>처럼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수십 번씩 다시 봤고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 은 영화관에서 처음 봤는데, 영화가 끝나도 집에 가기 싫더라고요. 감독이 만든 세계에 저도 계속 머물고 싶었어요. 그 정도로 영화에 빠져있었던 거죠. 그럼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생각했을 때, 이야기를 만드는 쪽보단 연기하는 편에 더 마음이 갔어요.

요즘도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나요? 지금은 영화를 찍으러 가야 하기 때문에.(웃음)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매일 한편은 꼭 보고 자요. 드라마 <작은 아씨들>, 엄청 재미있던데요. 그 여자의 정체가 뭘까요?

한 인터뷰에서 좋은 연기를 하고 싶고,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여기서 ‘좋은’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예상하지 못한 걸 봤을 때 매료되는 지점인 것 같아요. 계속 봐온 것 말고, 그럴 것 같다고 예상한 것과는 다른데 좋은 거요. 그러니까 몇 시간씩 이어지는 영화도, 몇 초짜리 광고 영상도 보는 이를 빠져들게 만드는 어떤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순간을 배우로서 현명하게 잘 만들어내고 싶어요.

이를 위해 시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그게 연기의 기술을 익히거나 바꾸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대단하고 큰 계획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잘 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사소하지만 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것들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온전하고 건강한 삶에서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믿는 거죠? 아마 누구나 그럴 거예요.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못 만나면 예민하고 짜증 나서 다른 걸 못 보잖아요. 일상을 행복하게 꾸리는 게 결국은 생기를 부여하는 일 같아요. 그런 상태일 때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고, 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더 좋은 무언가를 접하고 해낼 수 있는 거죠. 의식주가 참 중요해요.(웃음)

요즘은 의식주를 잘 챙기며 지내고 있나요? 요즘은 촬영 중이라 온전한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왔다 갔다 해요. 그런데 이런 상황도 나름대로 재미있어요. 즐기는 중이에요.

스스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 전종서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럼요. 재미가 없으면 할 이유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