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과 트라우저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안에 입은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길거리 공연이건, 수백 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운 대형 무대건
혹은 30초짜리 TV 보험 광고건

그 사람의 연기를 보고 누군가 감동했다면
성공한 배우라고 본다. ”

 

베이지 롱 트렌치코트 아미(Ami), 화이트 터틀넥 톱 프라다(Prada), 블랙 와이드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리끌레르 영화제를 준비하며 첫 감독 연출작 <로그 인 벨지움>을 다시 봤다. 영화는 팬데믹 기간 중 앤트워프의 한 호텔 방에 고립된 상황에서 시작된다. 도시가 봉쇄되고, 슈퍼마켓의 먹거리가 동나고, 거리가 텅 빈 풍경을 보는데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개봉 당시 보고 이후 다시 보지는 않았는데 관객과의 대화(GV)를 앞두고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촬영한 지 3년 만이고, 개봉 후 2년 만이다.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현실감을 찾기 위한, 정신 건강을 위한 일종의 돌파구였다. 내게는 영화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누군가는 기록을 글로 하겠지만 나는 배우니까 기록의 방식이 영상이었을 뿐이다. 그 후 1년 뒤 편집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극장 개봉에 대한 조언을 들었고, 배급사의 도움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도시 시스템이 멈춘 상황 속 누군가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기력한 시간이라 느낄 법한데, 본인은 그 통제된 시간에 생산성을 부여했다.

늘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배우가 표현하는 사람이지 않나. 행위로써 나를 표현하는 게 직업이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표현할 방식, 내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시를 쓰고 선율을 입히면 곡이 되고(자작곡 ‘My Perfume’, ‘Coelln 1988’, ‘Overwhelming’ 등), 시에 이야기를 덧입히면 동화(<양말 괴물 테오>)가 됐다. 글과 음악이 아니면 레시피가 돼 요리로 완성되기도 하고.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관객을 만나는 경험은 어떻게 다르던가?

크게 달랐다. 마음이 담긴 작품이니까. 내 마음에 품은 것들을 처음으로 솔직하게 꺼내어 다른 이들에게 보여준 거다. 어떤 면에서는 솔직한 내면의 소리를 담아 환상적 요소를 넣었는가 하면, 전개를 위해 기승전결을 구성하기도 했다. 재미를 위해 극적 요소를 더하기도 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내 민낯의 겹을 벗겨내고 드러낸 일이기 때문에 보다 관객과 보다 깊게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이 작품을 완성하며 고립과 고독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다.

맞다.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이 어느 때보다 빈번하고, 그 강도도 센 때이지 않나. 내적으로 몰입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상황이 잘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당시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립됐기에 내면의 자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다. 요즘 알고리즘을 타고 내 휴대폰에 가장 많이 뜨는 게 ‘다크 리트리트(dark retreat)’다. 리조트 같은 곳에서 며칠씩 내내 빛 없는 방에 머무는 거다. 앱솔루트 다크니스(absolute darkness), 절대적 어둠. 불빛도, 소리도, 시간 개념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것들이 서로 부딪치는 시간을 보내는 거다. <로그 인 벨지움>과 일맥상통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가장 와닿은 건 ‘지금’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거를 곱씹지 않고, 미래의 두려움에 압도 되지 않으며 오직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결코 달성하지 못할 목표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맞다. 트라우마와 걱정,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니까.

 

영화를 완성하고 나니 정리가 되던가?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거나 혹은 없어야 할까?

나 역시 현재를 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고, 답을 찾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배우가 된 건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이 그 시작인 것 같다. 타인에게 갈망하는 애정과 관심,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야 지금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성취감을 바깥이 아니라 나로부터 찾는 것. 그게 오늘에 집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소셜미디어가 일상을 채운 시대라면 더더욱. 사진 한 장 업로드하는 행위와 그로부터 얻는 ‘좋아요’ 수가 도파민 수치에 영향을 주지 않나. 휴대폰을 의식적으로 덜 보며 내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단순하게는 내 손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 의식하는 거다. 아침에 눈을 떠서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여는 게 아니라, 커피를 내리고, 운동으로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하루는 분명 다를 거다.

 

베이지 롱 트렌치코트 아미(Ami), 화이트 터틀넥 톱 프라다(Prada).

슬리브리스 톱 렉토(Recto), 데님 진 팬츠 디젤(Diesel),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니트 톱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anna), 트라우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코트, 트윌 팬츠, 레더 앵클부츠 모두 프라다(Prada).

 

타인의 인정에서 자유롭다하더라도 자기 기준이 높다면 그 또한 삶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단어 선택이 중요한 것 같다. 자기 기준이 높다기보다는, 내 상태를 정확하게 보고,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다문화, 다국적 환경에서 자라오며 새롭고 낯선 상황에 자주 놓였다. 모든 환경은 그곳의 특수한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 생활권 안에서 누군가 나를 두고 ‘너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면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며 오해를 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정확할 수밖에 없다. 정확해지려는 노력이었던 거다. 언어는 정서를 온전히 담을 수 없고, 언어권마다 정서의 정도를 다르게 담기도 한다. 언어가 만드는 어쩔 수 없는 격차 속에서 멜랑콜리, 외로움을 늘 느꼈다. 트라우마도 상처도 많지만 어떤 면에서 예술 하는 사람에게는 이 특수한 환경이 특권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고독과 외로움이 고맙기도 하다. 남과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자극했으니까.

 

정체성에 관한 고민들,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준 것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문을 거듭하면서 자아가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직업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나라는 보편적으로 어떤 나이에는 학교를 가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식으로 삶의 경로가 있지 않나. 그 단계를 하나하나 거치다 보면 결국 40~50대가 되어서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는 경우도 생기지는 것 같다. 어쩌면 경계에서 살아오며, 다양한 문화의 외곽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나에 대한 질문을 비교적 빨리 던졌고 그로 인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성공한 배우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나? 오늘 만난 배우 유태오라는 사람은 트로피 몇 개를 가진다 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

길거리 공연이건, 수백 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운 대형 무대건 혹은 30초짜리 TV 보험 광고건 그 사람의 연기를 보고 누군가 감동했다면 성공한 배우라고 본다. 최근에 어떤 보험 광고를 보며 울었거든.(웃음) 어느 자리에서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기를 했다면 배우로서 자기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움직인 연기들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 쾰른에서 본 손가락 인형극 <헨젤과 그레텔>을 시작으로 미하엘 엔데 작가의 <모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 등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연기들이 있다. 나의 연기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면 그만한 성공이 또 있을까. 낭만적인, 혹은 철없는 대답일 수 있겠지만 이 생각은 내가 무명일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