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한 부산국제영화제의 교육 프로그램, 아시아영화아카데미(BAFA). 2005년에 시작해 3백60여 명의 젊은 영화인과 함께해온 아시아영화아카데미가 팬데믹으로 2년간 휴지기를 가진 뒤 샤넬의 지원으로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20명의 펠로우는 9월 말부터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리티 판(Rithy Panh) 감독을 비롯한 멘토들의 교육을 받았고, 단편영화 <어느 지붕 아래>와 <이곳으로>를 제작했다. 3주간의 여정을 회상하며, 촬영 멘토로 함께한 엄혜정 촬영감독과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상금을 수여받은 펠로우 2인 중 1명인 수라즈 파우델(Suraj Paudel)이 영화를 향한 사랑을 꺼내 보였다.

촬영 멘토
엄혜정 촬영감독

제1회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멘토로 함께한 기분이 어땠나? 감회가 크게 새롭지는 않았다. 올해 펠로우들이 어떤 ‘반짝임’을 갖고 부산에 찾아올지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펠로우들에게도, 내게도 3주간의 일정이 힘들지만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항상 열심히 하자’를 모토로 삼고 있는 만큼, 이번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 멘토로서 최선을 다해 임하려고 했다.

펠로우들에게 무엇을 가장 강조했나? 곁에 있는 펠로우들을 생각할 것.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안 서로 의지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는 혼자 할 수 없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 같이 협업하는 일이라 소통과 이해가 아주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통해 펠로우들과 영화를 이야기하며 그들이 ‘차세대’가 아니라 조만간 영화의 세계 안에서 함께할 동료라고 느꼈다.

펠로우들의 단편영화 제작에 어떤 도움을 주려고 했나? 각 숏에 대해 다양한 각도와 방식으로 접근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내 조언을 각자의 판단에 따라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영화의 완성을 목표로 나아갈 때는 수만 가지 길이 있고, 선택한 길마다 다른 결과물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펠로우들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녹록지 않은 상황에도 즐겁게 촬영하는 펠로우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촬영 현장은 내내 즐거움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시간을 거치며 ‘잘 끝냈다’는 성취감을 남기는 곳이지 않나.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두 편의 영화가 완성되어 기쁘다.

다수의 단편영화를 만들며 경험을 쌓은 뒤 영화 <해빙>(2017)으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기술상을 수상했고,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 등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유독 인상 깊었던 촬영 현장이 있나? 영화 <해빙>의 첫 촬영이 떠오른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난 후 상업영화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날이었다. 다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항상 머릿속이 앞으로 촬영할 시나리오와 그에 대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전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지워지는 것 같다.(웃음)

촬영감독이 하는 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감독이 구현하려 하는 영화 속 세상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첫 번째 관객’이다. 뷰파인더로 또 다른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즐겁고, 그 세계를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이 지난하다는 것이 촬영감독으로서 느끼는 어려움이다.

영화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시나리오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는 편인가?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면밀히 파악하려 한다. 내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가 감독님이 생각한 이미지와 부합하는지, 내가 감독님에게 다른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읽는다.

촬영감독으로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중요한 장면에서 인물의 감정을 잘 포착해낸 순간. 시나리오 속 캐릭터가 느껴야 할 감정과 이를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며 촬영을 준비하는 편인데, 배우의 연기를 뷰파인더로 바라볼 때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올해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의 전체 선발 인원 중 여성 영화인의 비율이 70%에 가깝다. 앞으로 여성 영화인이 더 널리 능력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성 영화인이 더 큰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일하면 좋겠다. 근거 없는 자신감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야 각자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영화인에게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붙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영화인으로서 앞으로 꾸준히 지켜 나가려는 태도가 있다면? 현장에서의 집중력과 오래 일할 수 있는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려 한다. 또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할 생각이다. 영화를 만드는 기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발전할 테고, 변화를 인지하고 있어야 새로운 방식의 촬영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온 날들에 멈춰 있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

영화의 어떤 점을 가장 사랑하나? 영화는 글로 이루어진 시나리오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이지 않은가?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세계를 탄생시켜 스크린에 펼쳐낸다는 것. 그게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다.

 

 

펠로우
수라즈 파우델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 참가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 연극 각본과 연출 작업을 하며 영화의 세계에 빠졌고, 영화학을 전공한 후 올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은 영화 <로리(Lori)>를 비롯한 다수의 단편영화 작업에 함께하며 꿈을 키워왔다. 영화계 선배와 동기들이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는 소감을 자주 들려주었다. 아시아 전역의 영화인이 모여 3주 동안 단편영화 한 편을 제작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 흥미로웠다.

프로그램을 통해 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네필들의 영화 제작기를 다룬 단편영화 <이곳으로>의 제작에 편집자로 함께했다. 이 작품을 편집할 때 무엇에 중점을 두었나? 4명의 감독이 영화 한 편을 구간별로 나눠 맡는 등 각자 본인의 역할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제작이 진행됐는데, 편집자는 나 한 명이었다. 그래서 다른 펠로우들보다 영화 전체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 했다. 각 감독의 서로 다른 스타일을 존중하며 하나의 영화로 합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첫 번째 편집을 마친 뒤, 각 감독에게 전달받은 요청 사항을 모두 숙지했고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쉴 새 없이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편집을 종료하고 후반 작업으로 넘어가는 ‘픽처 록(picture lock)’ 직전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을 잃어 당황스러웠다.(웃음)

단기간에 한 편의 단편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만큼 팀원과의 협업이 더욱 중요했을 것 같다. 내 역할이 편집자이기 때문에 다른 펠로우의 작업에 개입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팀원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협력했고, 서로의 의견을 잘 수용해준 덕분에 시나리오 등에 관한 내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함께했던 영화 제작 현장에는 경험할 수 없던 과정이었다. 많은 논의를 거친 덕분에 더 좋은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으로도 활약한 적이 있다. 영화 제작의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경험이 편집자로서 작업할 때 어떤 영향을 끼치나? 시나리오 집필과 영화 편집에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편집자로서 영화의 구조를 잡고 서사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이야기 저변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도움이 된다. 또 감독을 맡았던 경험은 내가 편집해야 할 촬영본을 더 존중하게 한다. 모든 촬영본에는 마법이 숨겨져 있고, 그 마법을 펼쳐내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멘토가 했던 말 중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나? 내가 소속한 팀의 편집 멘토가 ‘소리는 이야기의 감정을 전하고, 영상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해주었다. 영화인으로서 평생 마음에 품어야 할 말이다.

같은 꿈을 가진 젊은 영화인들을 만난 것 또한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영화보다 더 의미 있는, 평생 소중히 여길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우리가 곧 다시 뭉쳐 협업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팀원들은 각자 차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나도 앞으로 내 꿈을 제약 없이 펼쳐나가려 한다.

젊은 영화인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영화의 세계를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나? 사회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영화를 통해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국적, 종교, 문화의 경계를 넘어 많은 이들을 하나로 이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게 영화인으로서 내가 품은 가장 큰 목표다.

영화의 어떤 점을 가장 사랑하나? 영상과 감정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언어이고, 두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영화가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을 통해 내 생각을 전 세계에 전할 수 있어 영화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