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셔터를 누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시간을 거슬러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언젠가 아주 그리워하게 될 거란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되는 장면들 앞에서.
32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들이 휴대폰 사진첩 속에서 소환한
각자의 보석 같은 순간들.
매해 친구가 사는 일본 가마쿠라에서 새해 아침을 맞는다. 1월 1일 가마쿠라의 날씨는 어김없이 아주 쾌청하다. 친구들과 바닷가를 산책하며 시작하는 새해 아침 전통은 201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풍경은 같지만, 매해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니 2019년 사진이 가장 아름답다. 바다의 윤슬과 인어 같은 서퍼들의 모습이 항상 감동적이다. 이유미(할로미늄 디렉터)
고양이가 두 살 영유아의 IQ를 가졌다고 들었다. 그럴 리가. 고양이인 ‘숙희’랑 ‘남희’는 웬만한 성인 인간 동물보다 확실하게 애정을 보낸다. 나를 거대한 엄마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정확하게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계속 배운다. 수많은 귀 언어, 꼬리 언어, 눈빛 언어. 그들을 향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사랑해, 존경해). 볼과 머리 끝을 보듬는다(우리는 서로의 영역이야). 어디서든 무릎을 내어준다(필요할 때마다 나를 침대로 써). 두 종의 생명이 교차하는 순간들. 이훤(시인 겸 사진가)
6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이자카야. 일회용 카메라로 손님들을 기록해 벽에 붙여두던 사장님. 빨개진 코와 꽁꽁 언 손이 어묵탕의 온기와 해맑은 미소에 순식간에 사르르 녹았다. 손꼽힌(하티핸디 대표)
몇 해 전 여름, 친구를 따라 단편영화 스태프로 참여한 적이 있다. 뜨겁고 습한 8월의 공기는 카메라 뒤에서 맡은 일을 잘해내고 싶은 초보 스태프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 어느 틈에 찾아온 숲속의 까만 밤, 정신없이 오가다 멈추어 바라본 현장의 모습은 한데 모여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빛나는 순간이었다. 강진아(배우)
우리 집 일곱 살 아이가 이렇게 작은 이를 스스로 빼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전날만 해도 울 것 같은 표정이더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그날 밤 아이는 이빨 요정에게 주겠다며 칫솔로 이를 닦다가 개수대 구멍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러곤 엉엉 울면서 잠들었다. 이 사진을 보면 빠진 이를 바라보며 내가 해냈다고 소리치던 아이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니나안(사진가)
영화제 참석을 겸해 홀로 떠난 유럽 여행에서 맞이한 생일날, 아녜스 바르다의 무덤을 찾았다. 너무나 그다운 무덤을 보니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엉엉 울었다. 눈물을 닦으며 씩씩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테니 지켜봐달라고 (한국어로) 말씀드렸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순간. 오세연(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