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기회로 만들며, 패기를 무기 삼아 전진하는 새 시대의 새 얼굴들.

황 철 호

2000
디자이너

산업 미학을 주제로 한 아트 퍼니처를 선보인다. 일상에서 접하는 산업 소재나 구조물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색다른 매체나 형태로 탈바꿈시킨다. 인천대교의 사장교 구조에서 영감 받아 제작한 ‘장력 미학’ 시리즈에서 와이어 줄의 장력만으로 의자의 형태를 완성해 2023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의 ‘베스트 영 디자이너’ 3인에 선정됐다.

“디자인은 이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공부가 삶의 해상도를 높여준다고 하지 않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산업 미학과의 첫 만남 스물두 살 때 디자인 은사님을 만나 온종일 비주얼을 공부하며 지금 내가 천착하는 산업 미학이라는 주제를 만났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특유의 정제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베스트 영 디자이너 인천대교 같은 사장교의 장력 구조물에서 느껴지는 간결한 인상이 좋아서 군대에 있는 동안 이 원리를 적용해 가구 스케치를 발전시켰다. 그걸 들고 당시 아트 퍼니처 분야에서 앞선 행보를 보이던 채범석 디자이너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그의 제안으로 신진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하는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에 참여해 최종 3인에 들었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형태와 미학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다.

디자인과 삶 디자인은 이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공부가 삶의 해상도를 높여준다고 하지 않나.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알면 알수록 눈에 보이는 게 많아진다.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위해 하루 종일 글자만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길가의 깨진 간판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렇듯 나만 아는 미감이 생긴다는 게 디자인의 매력이다. 디자인을 계속 공부하며 70대 할아버지가 됐을 때는 세상에 재밌고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더 많이 보일까 생각하곤 한다.

꿈에 한발 다가간 순간 엘리엇 에밀(HELIOT EMIL)은 산업 미학의 관점에서 내가 추구하는 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덴마크의 패션 브랜드다. 디렉터 율리우스 율 (Julius Juul)을 오래전부터 동경한 터라 다이렉트 메시지도 보내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지만 당연하게도 매번 무시당했는데(웃음), 우연히 그의 친구와 한 작업이 계기가 되어 얼마 전 을지로4가에서 율리우스를 직접 만났다. 학업을 다 제쳐둔 채 그에게 보여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건네준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믿기지 않지만, 지금 그와 함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새로운 프로젝트 의자와 테이블, 조명에 ‘1번’이라는 이름을 붙여 선보인 기존 장력 프로젝트의 다음 시리즈로 ‘2번’을 제작하는 중이다. 얼마 전 갖고 싶었던 조명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자동차에 달린 와이퍼를 봤는데, 둘이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와이퍼를 조명의 소재로 활용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여러 방면으로 고민 중이다. 또 기존 작업에서 장력만으로 의자의 구조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앉으면 무너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언젠가 장력만으로 사람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의자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지키려는 태도 좀 여유 있게 살고 싶다. 율리우스를 만난 날, 그가 긴장해서 쭈뼛거리는 나를 가볍게 툭 치더니 윙크를 하는 거다. 그날 결심했다. 훗날 나를 동경하는 작업자가 찾아왔을 때 윙크 한번 가볍게 날릴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