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곁에서 살아가는 5명의 필자가 지금 가장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미술을 향유할 때 일어나는 일들, 작품을 능동적으로 감상하는 방법, 주목해야 할 아시아의 신진 작가까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예술적 화두들.

예술을 능동적으로 향유하기

writer 박지민(전시 소개 인스타그램 계정 @crakti 운영자)

전시를 소개하는 SNS 계정을 운영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현대미술은 너무 어려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고민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부담 없이 보면 된다’라는 식의 허울 좋은 답변을 내놓았지만, 실은 (적어도 내겐)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복잡다단한 역사와 현안을 이야기하고, 주어진 대상과 사건을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동시대 미술은 내게도 항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동일한 질문에 나는 ‘관람객으로서 공부는 필수’라는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두꺼운 논문이나 비평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오늘 본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의 사회 정치적, 문화적 맥락을 살펴보고 미술가가 영감으로 삼은 주제를 더 파헤쳐보는 작은 노력을 해보자는 의미다. 작품을 ‘성의를 다해’ 이해하고자 하는 예술 애호가로서 우리는 어떤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현대미술을 보다 능동적으로 향유하기 위해 누구나 쉽게 활용, 참여할 수 있는 국내 온라인 자원과 공공 프로그램을 선별해 소개한다.

지난 3월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김윤신 개인전에 맞추어 공개된 스튜디오 비짓 영상. Courtesy of Kukje Gallery

먼저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자원으로는 갤러리 및 미술관의 공식 SNS 채널이 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는 전시와 작가를 홍보하기 위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속 작가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홍보할 책임이 있는 상업 갤러리는 갤러리 주최 전시 외에도 작가가 세계 여러 기관에서 참여 중인 전시 소식을 활발히 알리는 데 주력한다. 그중에서도 더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것은 각 기관이 작가를 홍보하기 위해 공유하는 스튜디오 비짓(studio visit) 영상이다. 주로 전시 기간에 맞추어 주최 기관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는 스튜디오 비짓 영상은 작업실 현장과 창작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각 미술가가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현장 속에 자리한 재료와 도구들, 이를 활용한 창작의 순간순간을 보여주는 영상은 이들의 작업 세계를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MMCA 리서치 랩’.
국립현대미술관 제공(Courtesy of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한편 소장품 연구와 시민 교육 의무가 있는 미술관은 SNS를 넘어 보다 짜임새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대표적인 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초 론칭한 ‘MMCA 리서치 랩’이 있다. MMCA 리서치 랩은 1945년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연보를 보기 쉽게 정리한 페이지를 비롯해 주요 인명, 단체, 기관, 용어를 쉽게 풀어 정리한 ‘미술용어’ 섹션 등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정보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문화예술진흥법’과 같이 국가 특정적인 용어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범세계적인 예술 운동까지 포괄하는 이 미술용어 섹션은 오늘날 작품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편리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일민미술관이 운영하는 ‘이마 온(IMA ON)’. Courtesy of Ilmin Museum of Art

일민미술관이 운영하는 ‘이마 온(IMA ON)’도 주목할 만하다. 이마 온은 매년 일민미술관의 기획 전시와 연계하여 진행한 작가 인터뷰, 아티스트 토크, 워크숍 등의 기록물을 업로드하는 아카이브 페이지다. 그중 주요한 부분을 이루는 ‘이마 크리틱스(IMA Critics)’ 시리즈는 심사를 거쳐 선정된 비평가들이 생산하는 비평 연구 프로젝트로, 그해 미술관이 진행한 전시를 주제로 한 비평문을 공유한다. 심도 있는 연구와 통찰에 기반한 글이기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해 관람한 전시를 더 넓은 사회적, 철학적 맥락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시간을 들여 읽어보길 추천한다.

전시 및 작가 관련 기록물을 공유하는 비영리 플랫폼 ‘에이독스(Adocs)’. ⓒAdocs

기관 운영 온라인 플랫폼이 미술사적 정보와 해당 미술관 주최 전시에 집중한다면, 또 다른 비영리 플랫폼 ‘에이독스(Adocs)’는 오늘날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 젊은 작가들에 대한 기록을 알차게 모아둔 곳이다. 전시 도록, 프로젝트 관련 기록, 비평집 등을 포괄하는 에이독스에서는 국내 기획자 및 비평가들의 글은 물론, 예술가들이 직접 쓴 글 역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특히 아직 비평문과 관련 논문을 온라인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없는 젊은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된다. 웹 도록에 실린 지난 전시 전경과 옛 작업 이미지를 살펴보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업 변화를 추적해볼 수도 있다.

보다 관람객 참여적인 활동으로는 전시 기관이 주최하는 강의와 연계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기획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의 학술 행사와 다양한 직업군과 나이대에 맞춰 이루어지는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코 작가를 직접 만나는 자리다. 한 작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창작자로부터 들어보는 것만큼 그 생각 회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로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작가와 기획자가 대담 형식으로 나누는 아티스트 토크와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는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 외에도, 관람객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을 살펴보길 추천한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시립미술관이 꾸준히 운영해온 ‘예술가의 런치박스’ 프로그램이 있다. 관람객과 예술가가 만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일상적 과정을 통해 미술가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는 각 작가가 현재 주목하고 있는 주제 의식을 소개하고, 이를 주제로 한 요리를 참여자와 함께 만들거나 나누어 먹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관람객은 이 과정을 통해 보다 캐주얼한 환경에서 미술가들과 교류하고, 이들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생각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기획 전시 또는 소장품과 연계하여 주기적으로 개최되는 ‘예술가의 런치박스’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와 SNS에 참여자 모집 소식이 수시로 올라온다.

이외에도 미술 전문지의 전시 리뷰를 읽거나, 보다 쉬운 호흡으로 읽히는 매거진의 작가 인터뷰를 참고하는 등 현대미술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경로는 많다. 미술가가 공들여 연구한 주제를 보다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싶은 애호가라면,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많은 자원들을 영리하게 활용해보기를 권한다. 현대미술을 ‘잘’ 보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당연함을 인정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