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자 20세기 예술에 가장 거대한 충격을 안겨준 선구자, 백남준. 기술과 문명,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그의 전위적인 상상력은 디지털 시대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더욱 날카롭고 선명한 통찰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특히 백남준 서거 20주기를 맞이해 곳곳에서 그의 압도적인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굵직한 전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는데요. 지금 당장 발걸음을 옮겨야 할 매혹적인 백남준 전시 4곳을 소개합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탐험선에 올라탄 비디오 아트
현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IVE’가 성황리에 진행 중입니다. 4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들어선 7개의 전시실 중에서도 발걸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둘 곳은 한국 현대미술의 묵직한 거장 백남준과 이불의 작품이 병치된 4전시실이겠죠. 이곳에서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백남준의 ‘콘-티키(KON-TIKI)’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처음 공개된 역사적인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와 거북선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모니터 주변으로 국적 불명의 인형, 불상, 흑백 사진들이 무질서한 듯 정교하게 얽혀있죠. 동서양의 문화와 과학, 예술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위트 있게 녹여낸 이 기발한 조형물은 전 지구적 미디어 환경을 예견한 작가의 놀라운 통찰을 시각적으로 증명합니다. 단, 작품 보호를 위해 12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은 운영이 중단되니 관람 계획 시 유의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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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기계가 내뿜는 소음이 음악이 되는 마법
세계적인 갤러리 화이트 큐브는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타키스(Takis)와 백남준의 예술적 교감을 소환했습니다. 두 거장은 선불교에 심취하고 우연의 미학을 전파한 존 케이지를 동경했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니는데요.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자성을 이용해 예측 불가능한 기계적 파열음을 내는 타키스의 조각들과 예술의 통제권을 내려놓고 자유를 탐구했던 백남준의 사유가 묘한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79년 독일에서 성사된 두 작가의 퍼포먼스를 녹음한 한정판 LP ‘듀엣(Duett)’입니다. 백남준의 변칙적이고 불안한 하프시코드 연주 위로 타키스의 금속 조각이 내는 육중한 소음이 간헐적으로 충돌하는 이 당혹스럽고 전위적인 사운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강렬한 경험으로 다가옵니다. 기계와 사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역동적인 날것의 에너지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매혹적인 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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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안


비디오 아트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글로벌 갤러리 가고시안이 ‘백남준: Rewind / Repeat’ 전을 개최합니다. 서울에서 약 25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이미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는데요. 1950년대 초기부터 2000년대까지 그의 궤적을 촘촘히 좇는 이번 전시는 제목 그대로 시간과 기술의 흐름을 되감고 반복합니다. 반라의 여성 첼리스트 가슴에 소형 텔레비전을 얹고 연주하던 파격적인 퍼포먼스 기록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부터 동양의 선 사상과 현대 미디어의 극적인 충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마스터피스 ‘골드 TV 부처’까지.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된 융합 예술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죠. 다시 재생되는 천재의 비전은 여전히 세상을 놀라게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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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어린이의 눈높이로 다시 쓰는 엉뚱하고 발랄한 우주 오페라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백남준을 마주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백남준아트센터가 서거 20주기를 기념해 개관 이래 최초로 어린이를 위한 기획전 ‘색동: 우주 오페라’를 선보입니다. 전시 제목의 ‘동’을 아이 동(童) 자로 재해석한 기발한 발상부터가 흥미로운데요. 관람객의 움직임에 시시각각 반응하며 변화하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과 서로의 감각을 나누는 참여형 드로잉 공간 등 아이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우주의 리듬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백남준의 대표작 ‘글로벌 그루브’와 함께 전시장 전체가 춤을 추듯 교차하는 공간인데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직접 색을 칠하고 형태를 만들며 자신만의 엉뚱하고 발랄한 리듬을 생성하게 됩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드로잉, 클레이, 탐조 등 다채로운 연계 프로그램이 이어져 단순한 감상을 넘어 오감으로 즐기는 완벽한 주말 나들이 코스로 강력 추천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