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만큼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고요한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요?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입체파의 실험부터, 산맥의 장엄함을 추상으로 풀어낸 한국 근대 회화, 그리고 공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숯의 아우라까지.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벼려낸 작품들을 마주하며 메마른 감성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보세요. 

퐁피두센터 한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입체주의의 위대한 탄생과 진화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방대한 컬렉션이 드디어 서울에 상륙했습니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영광스러운 개관전인 이번 전시는 피카소와 브라크를 필두로 기존의 원근법을 완벽히 해체하고 20세기 미술의 판도를 바꾼 큐비즘의 20년 역사를 폭넓게 조망하는데요. 대상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고 재구성하여 캔버스에 담아낸 시각적 혁명은 후안 그리스, 페르낭 레제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확산되며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자리 잡았죠. 퐁피두센터가 엄선한 91점의 진귀한 소장품을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1점의 한국 근현대 회화와 아카이브로 구성된 특별 섹션 코리아 포커스입니다. 1920년대 이후 파리에서 불어온 아방가르드 바람이 한국의 문학, 음악, 무용 등에 어떤 흥미로운 자국을 남겼는지 입체적으로 교차 검증하는 과정은 묘한 지적 쾌감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63로 50 63빌딩 별관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점, 선, 면으로 축조한 숭고한 추상

서울시립미술관이 한국 추상 미술의 위대한 선구자 유영국의 탄생 110주년을 맞아 그의 화업 60년을 총망라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미공개 작을 대거 포함한 170여 점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통해 오직 추상이라는 아방가르드를 묵묵히 실천했던 거장의 숭고한 삶을 반추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뻔한 연대기적 구성을 과감히 탈피했다는 것인데요. 유영국의 예술적 정점에 달했던 1964년을 기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다시 순행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역동적인 관람을 제안하죠. 그에게 고향 울진의 산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점과 선, 색과 면이라는 회화의 본질로 빚어낸 내면의 단단한 구조였습니다. 디지털과 AI가 난무하는 오늘날, 거장이 캔버스 위에 직조해 낸 크고 깊은 산맥은 회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과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주소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뮤지엄 산 <En attendant: 기다리며>

ⓒ Museum SAN, Photo by Sangtae Kim
ⓒ Museum SAN, Photo by Sangtae Kim

안도 다다오의 공간에 피어난 먹빛 숯의 아우라

원주의 수려한 자연을 품은 뮤지엄 산이 개관 이래 최초로 국내 작가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숯의 화가 이배인데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과 이배의 거대하고 원초적인 숯 조각이 만나 빚어내는 장엄한 오라는 그 자체로 완벽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합니다. 뮤지엄 처마를 떠받치듯 우뚝 솟은 거대한 숯 덩어리 기둥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이야기하며, 숯 가루를 정교하게 압착해 거대한 붓질의 궤적을 허공에 띄워낸 평면 및 입체 작업은 한국적 여백의 미를 압도적인 스케일로 구현해 냈네요. 특히 야외 공간에 10미터 높이로 세워진 6점의 거대한 브론즈 조각은 주변의 나무와 바람, 산세의 흐름과 완벽하게 호흡하며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이 공간 속을 천천히 거닐며 깊은 사유와 명상을 경험해 보시기 바랄게요.

주소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김창열 화가의 집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

종로구
종로구

거장의 숨결이 살아있는 영감의 공간

작가가 실제 머물며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웠던 공간만큼 훌륭한 전시장은 없습니다.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 화백이 2021년 별세하기 전까지 무려 30여 년간 머물렀던 평창동 자택이 김창열 화가의 집이라는 공공문화시설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을 기념해 그의 예술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한지 작업을 집중 조명합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캔버스를 수놓았던 그 유명한 물방울, 회귀 연작의 밑작업과 판화, 드로잉 등 희귀한 24점의 작품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하 작업실입니다. 높은 층고 아래로 쏟아지는 풍부한 일조량과 물감이 튄 낡은 이젤은 수만 개의 물방울을 탄생시켰던 거장의 위대한 시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7길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