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과거의 기억과 기술이 만들어 낼 낯선 감각 사이에서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Meiro Koizumi)가 그려내는 희망의 형상.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제공.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일본의 침략 전쟁과 국가주의를 되짚으며 사회적 망각과 집단심리를 탐구해 온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Meiro Koizumi)가 국내 첫 개인전 《고이즈미 메이로: 불, 어느 아카이브》로 한국을 찾았다. 그가 주목해 온 것은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기록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개인의 경험과 그것이 다른 세대에 가닿는 방식이다. 기억의 흔적을 좇던 그의 시선은 점차 집단 속 개인이 폭력에 가담하는 심리와 선택을 좌우하는 외부의 힘으로, 나아가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본능까지 바꿔놓을 가능성으로 확장되었다. 인간의 잔혹함과 기술의 위험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찬 미래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에게 그 사이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물었다.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제공.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지난 10월 27일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 《고이즈미 메이로: 불, 어느 아카이브》가 막을 올렸다. 영상과 드로잉, VR,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제작한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이처럼 작업의 영역을 넓혀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2008년 무렵 일본 사회에서 국가주의적 정서가 고조되고 정치권이 이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며, 예술을 통해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마주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 문제를 10여 년간 다루면서 관심은 점차 역사적 사건 자체에서 집단 속 개인의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평범한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때 어떻게 잔혹한 폭력에 가담하는지, 지극히 개인적인 결단처럼 보이는 선택조차 법과 문화, 교육과 선전 등 외부의 힘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살피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을 넓혀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 교육 등을 통해 일상에서 작동하는 최면의 메커니즘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이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AI와 같은 기술은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고 욕망의 방향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삶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의 발전과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전쟁의 파괴 사이에도 분명한 연관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예술을 통해 전쟁의 파괴와 개인 및 집단의 심리, 의례의 미학, 현대 과학과 정보기술 사이에 놓인 연결 관계에 형태를 부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번 전시 또한 이러한 장기적이고 야심 찬 프로젝트의 시도 중 하나다.
전시명에 등장하는 ‘불’이 서로 다른 작품을 잇는 하나의 매개인 듯하다. 불의 어떤 속성에 특히 주목했나?
서구 전통에서 불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함께 기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인류에게 번영과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우리를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폭력을 통해 불의 파괴적인 속성을 다룬다. 그러나 불은 치유와 의례의 수단이기도 하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불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켜 왔고, 제물을 태우거나 물질을 변화시키는 의례를 통해 신이나 자연과 연결되고자 했다. 불이 지닌 이러한 여러 측면이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다. 한마디로 합리성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현대 문명과 기술의 이면에 어떤 폭력적인 의례가 존재하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제공.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VR 설치 작품 〈불을 가져오는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인간이 나비의 망막세포를 이식받아 이전과 다른 빛과 색을 감각하는 미래를 관객이 직접 경험한다. 기술로 인해 인간의 몸이 변화하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당시 열 살이었던 아들과 함께 제작한 작품이다.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고, 인간과 기술이 화해하는 모습을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 팬데믹을 겪으며 기존의 사회적 질서와 의미가 생각보다 취약하고, 상황에 따라 쉽게 달라질 수 있음을 목격했다. 인간의 본성이나 본능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영감을 준 것 중 하나는 야코프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이 제시한 ‘움벨트(Umwelt, 환경세계)’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동물은 저마다의 생물학적 감각으로 구성된 고유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어떤 동물은 열을 통해, 또 다른 동물은 음파를 통해 주변을 감지한다. 이는 예술가에게 인간의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세계를 상상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자연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생물학적 감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인간의 본능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환경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소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VR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예술이 우리의 무의식적 구조를 바꾸고 나아가 본능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다.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기술이 지닌 강력한 힘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낸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오늘날 우리가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은 실제로 매우 위험하다. 정보기술이 모든 것을 데이터와 패턴으로 처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반면, 우리 삶에는 그런 방식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욕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기술이 규정하게 된다면 그러한 경험들은 배제될 것이다. 그렇기에 기술과 어떻게 화해하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다만 이러한 화해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순진한 낙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문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가가야 한다. 〈불을 가져오는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생명공학을 통해 인간의 본능이 새롭게 쓰이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일종의 불가능성을 통과하는 셈인데, 작품에서 자신의 아이를 산 채로 땅에 묻어야 하는 장면이 바로 이를 표현한다. 잔혹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작품을 경험하면 고통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제공.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3채널 영상 설치 작품인 〈증언의 천사들〉에서는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증언해 온 노병 곤도 하지메의 말을 젊은 세대의 몸과 목소리로 다시 전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쳤을 것 같다.
곤도 씨는 전쟁 경험으로 깊은 트라우마를 겪었다. 트라우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증언을 다루고 역사를 서술하는 일에는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그 불가능성이 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곤도 씨는 75세가 넘어서야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했고, 내가 만났을 당시에는 이미 99세였다. 그의 증언은 그에 관한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했던 말조차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말들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증언을 담아낼 새로운 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6세부터 27세까지 청년 11명에게 곤도 씨의 말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암기하게 한 뒤, 사람들이 붐비는 도쿄의 거리에서 직접 발화하도록 했다. 사회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결국 잊힐 수밖에 없는 그의 말을 보존하기 위해 예술이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였다. 이를 통해 곤도 씨의 복잡한 심리와 집단적 망각을 신체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뿐 아니라, 기억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데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술은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다. 곤도 씨의 증언은 너무나 끔찍해서 읽어 나가는 것조차 견디기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이야기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감각이 무뎌지고 상상력도 마비된다. 그의 증언을 다루면서 나 또한 같은 경험을 했는데, 당시 중동에서 벌어진 ISIS의 폭력이 수십 년 전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보다 내게 더 가깝게 느껴졌다. 어떤 사건에 자신을 연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국가적 정체성보다 동시대성에 가깝다. ‘나는 같은 시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라는 직관이 핵심인 것이다. 따라서 7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관객들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이러한 감각을 어떻게 불러일으킬지가 중요한 과제였다. 〈증언의 천사들〉을 통해 곤도 씨의 말은 예술적 형태를 갖게 되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인으로서 나는 그의 증언을 통해 내 안의 잔혹함과 책임, 죄책감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지른 죄는 아닐지라도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 안에서 성장한 이상 범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 모든 나라에는 저마다 어두운 과거가 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하며, 누구나 집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 폭력적인 존재로 변할 수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인식하는 것이 미래의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제공.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고이즈미 메이로: 불, 어느 아카이브》
기간 10월27일~12월27일
장소 아트선재센터(서울시 종로구 율곡로3길 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