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공연 예술가 키아라 베르사니(Chiara Bersani).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모두예술극장에 ‘젠틀 유니콘’, ‘덤불’, ‘애니멀’, 총 3편의 작품을 들고 왔죠. ‘골형성부전증이 있는 키 98cm의 예술가’라는 납작한 말에는 다 담을 수 없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한은 처음이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키아라 베르사니입니다. 이탈리아의 예술가이자 장애인 여성이고요. 다양한 예술적 언어를 활용해 작업해요. 주로 무용·안무 작업을 하지만, 현대 미술과 영화 분야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죠. 저는 장애 인권 활동가이기도 해요. 특히 예술계에서 장애인이 일할 권리에 집중해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공동체는 저를 이루는 아주 중요한 조각이에요. 저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왔는데요. 그런 면에서 공동체에 아주 큰 영향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늘 다양한 공동체에 머물려고 해요.

한국까지 오는 길이 아주 길었을 것 같아요.

아주 놀랍고도 긴 여정이었죠. (웃음) 사실 4년 전에 처음 (모두예술극장을 운영하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국에서 ‘젠틀 유니콘’ 공연을 올려 보자고요. 그런데 코로나19가 찾아왔고, 모든 게 멈췄죠. 그래도 논의는 계속 이어갔어요. 온라인으로 아티스트 토크와 기획 영상 제작을 함께했고요. 그러다 마침내 이렇게 한국에 올 수 있게 됐어요. 기다림이 길었지만, 그동안 제 작업은 더 단단해졌어요. 처음에는 한 작품만 선보이려 했는데, 이번에 세 편이나 들고 오기도 했고요.

이번에 한국에서는 대표작 세 편을 선보입니다. 그 중 첫 작품인 ‘젠틀 유니콘’ 공연이 이제 막 끝났어요.

벌써 그리운 기분이에요. 아직 다른 공연이 두 편이나 남았는데도요. (웃음) 저에게 ‘젠틀 유니콘’은 정말 특별한 작품이에요. 저와 관객의 관계에 기반해 진행되는 작품이라, 관객을 알아가는 기회가 되거든요. 그래서 ‘젠틀 유니콘’으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나기로 한 정말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도, 한국 관객에게도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젠틀 유니콘’이라는 독특한 제목은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요?

제목을 짓는 법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젠틀 유니콘’의 경우에는 제목이 퍼포먼스보다 먼저 저를 찾아왔어요. 시작은 농담이었죠. 어느 날 어머니가 집에 와이파이를 새로 설치하신다고 해서 도우러 갔는데, 기본으로 설정된 비밀번호가 ‘gentleunicorn123(젠틀유니콘123)’인 거예요. 너무 웃긴다고 생각하면서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어요: “언젠가 내가 솔로 퍼포먼스를 만들면, 이거 제목으로 괜찮겠는데?”

그러다 유니콘이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라는 걸 알게 됐어요. 유니콘은 수백 년 동안 다양한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그게 스스로가 부여한 의미는 아니잖아요. 정작 그의 목소리는 지워져 왔죠. ‘젠틀 유니콘’은 바로 거기서 출발했어요.

다른 두 작품의 제목인 ‘덤불’과 ‘애니멀’에 얽힌 얘기도 궁금해요.

‘덤불(원제: Sottobosco)’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제목이에요. (작품에 등장하는) 숲의 작고 비밀스러운 것을 표현할 단어를 찾고 있었죠. 처음에는 영어 단어를 떠올렸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이탈리아어로 제목을 짓고 싶었어요. 코로나19 때의 제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작품이라 저 자신, 저의 기원, 제 뿌리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계속 얘기를 나누다 ‘덤불’이라는 단어에 다다랐어요. 그때 우리 모두 ‘이거다!’ 했죠.

‘애니멀’이라는 제목은 ‘프랑코 바티아토’라는 이탈리아 가수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어요. 그의 노래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죠. 우리 안에 살고 있지만, 늘 굶주린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짐승에 관한 노래예요. 제가 이 작품을 준비할 때, 프랑코가 작고했는데요. 제 매니저 줄리아에게 “키아라, 프랑코가 돌아가셨어” 하고 연락이 왔어요. 저는 이 노래를 틀어둔 채 전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었고요. 그런데 그 순간에 ‘어, 이거 작품 제목으로 완벽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 ‘모든 몸은 정치적이다’라는 말을 쓰시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보는 건 그의 몸이에요. 그 순간, 우리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편견엔 ‘그러려니’ 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다음에 하는 생각은 함께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대화를 나누고, 상대의 몸을 넘어 시선, 웃음, 표정, 움직임 같은 것들을 보면서요.

‘모든 몸은 정치적이다’라는 말은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몸에는 첫인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는 데 기여할 힘이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의미죠. 그게 제가 얘기하는 ‘정치적인 힘’이에요. 결국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예요. 제 몸은 정말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모든 몸이 큰 가능성을 품고 있죠.

공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무대에 서는 순간, 온 신경을 관객에게 쏟아요. 관객의 피드백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아요.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공연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관객과 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제 작품은 끊임없이 변해요. ‘젠틀 유니콘’만 해도 그렇죠. 이탈리아에서만 공연했다면, 이 작품은 벌써 죽었을 거예요. ‘젠틀 유니콘’이 아직 살아 있는 건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공동체를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제 태도를 매번 ‘새로 고침’ 하는 느낌이랄까요. 한국에서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나면, 퍼포먼스가 분명 또 많이 달라질 거예요.

한국의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먼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분명 ‘낯선 동물’처럼 느껴질 거로 생각하는데요. (웃음) 단순히 제가 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먼 땅에서, 너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왔으니까요. 그런데도 이틀 간의 ‘젠틀 유니콘’ 공연에 정말 많은 분이 와주셨어요. 그 깊고 상냥한 호기심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더 알아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