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아팠던 1949년, 제주의 봄. 영화 <내 이름은>에서 찾아낸 그날의 기억들.
정지영 감독과 염혜란 배우가 온 힘을 다해 꺼내 든 이야기.

“영화는 소중한 생명들을 잊지 않았고,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래, 결국은 그 얘기지’ 싶은 거예요.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이것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려는 얘기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염혜란 배우

1998년 봄, 제주. ‘정순’(염혜란)은 아홉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봄만 되면 내리쬐는 햇빛과 바람에 놀라 이따금 발작을 일으키는 연유도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서울에서 새로 온 의사의 도움으로 잊었던 기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한편, 촌스러운 이름이 인생 최대의 콤플렉스인 정순의 아들 ‘영옥’(신우빈)의 학교에 새로운 전학생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영옥은 의도치 않게 세력 다툼과 학교 폭력에 휘말린다. 그 사이 정순은 78년의 시간을 건너, 기억조차 버거웠던 제주의 아픈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왜 우리는 이토록 아프고 잔혹했던 시간을 기억해내야만 하는가. 잊지 않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지영 감독은 제주 4·3의 끔찍한 국가 폭력과 지금의 학교 폭력을 교차하고 연결 짓는 방식을 택했다. 아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며,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연대와 사랑뿐이라는 마음을 담아 영화 <내 이름은>을 완성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 하나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낸 정지영 감독과 염혜란 배우의 연대를 마주했다.

영화 재미있었어요. 제주 4·3이라는 엄중한 소재와 별개로 전개 자체가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지영 오, 그랬어요? 하하. 나는 만든 사람의 입장이니까 반응이 궁금하잖아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국내 관객은 또 다르게 볼 수 있으니까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열린 시사회 반응도 그렇고, 오늘도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일단은 안심이 되네요. 영화가 그래도 대체적으로 잘 나온 모양이지? 하하.
염혜란 아하하, 감독님 남 얘기 하듯 말하시네요.
정지영 (웃음) 아주 조금 자신감이 생겼어요.
특히 어떤 점에서 좋았는지 되짚어봤는데요. 기자 간담회에서 염혜란 배우님의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이야기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아서 좋았다.” 이 문장이 영화 <내 이름은>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지영 동감해요. 아주 적절한 얘기를 한 것 같아.
염혜란 저는 베를린에서 나온 리뷰 중에 공감한 말이 있어요. “영화는 소중한 생명들을 잊지 않았고,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래, 결국은 그 얘기지’ 싶은 거예요.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이것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려는 얘기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시작점으로 가볼게요. 제주 4·3이라는 잔혹한 역사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또 어떻게 다룰 것인지. 시작부터 너무나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염혜란 감독님께서 이건 제주도 사람이 못 건드리는 이야기라는 말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한 집 건너 한 집이 가해자고 피해자인, 다시 말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 있는 공동체라서 이를 어떻게 풀지가 굉장히 어렵고 예민한 작업이라고요.
정지영 특히 제주 4·3은 실제로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인데 그동안 감춰져왔어요. 최초로 언급된 게 1978년 단편소설 <순이 삼촌>이었어요. 30년도 더 지나서야 겨우 이야기를 시작한 거예요. 그마저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고요. 그 이후로도 세월이 한참 흘러, 1998년이 우리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해죠. 그때가 되어서야 겨우 공론화된 거예요. 말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알아가는 중인 것이죠. 그래서 시작점에서 잘 만든 대중영화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물론 <지슬>이나 <돌들이 말할 때까지> 같은 영화도 있고, 한강 작가의 소설도 있지만, 우리 영화가 4·3의 대중화에 또 하나의 신호탄이 되길 바란 거죠.
그래서 영화의 재미가 중요했던 거군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는 점에서요.
정지영 그렇죠. 많은 분이 봐주셔야 해요.(웃음)

영화엔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합니다. 10대인 아들 영옥과 60대인 엄마 정순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 영옥이 겪는 ‘학교 폭력’은 차츰차츰 엄마 정순의 잃어버린 기억 속 ‘국가 폭력’과 교차하고 연결됩니다. 과거의 국가 폭력과 지금의 학교 폭력을 연결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정지영 제주 4·3의 국가 폭력을 집단적 폭력으로 보고, 그것을 보편적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온 결론이 학폭으로의 연결이었어요. 우선 4·3의 폭력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잖아요. 이를 대놓고 보여주었을 때 받는 충격이 있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학교 폭력을 일종의 완충 장치로 둔 거예요. 다음으로 4·3 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전하는 부분에서도 학폭을 통해서 유추하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학폭을 통해서 폭력의 메커니즘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려 한 거죠. 마지막으로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폭력의 잔재는 남아 있다는 말을 영옥과 그의 친구들이 겪는 일을 통해서 전하고자 했어요.
잔혹한 폭력을 어디까지, 얼마큼 보여줄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정지영 그건 감독의 계산이 필요한 건데, 염혜란 씨는 4·3의 폭력을 너무 끝까지 보여준 건 아닌가 하던데요.
염혜란 저는 좀 길다고 그랬거든요.
정지영 나는 상당히 절제하려고 많이 애썼다 싶어요. 늘 그런 편이거든요.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런데 보는 사람에 따라 지나치다 할 수도, 모자라다 할 수도 있겠죠.
영화를 보며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 정순으로 염혜란 배우를 대체할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님 역시 배우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영화를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정지영 우리가 영화 <소년들>에서 짧게 만났지만, 그때 염혜란 씨의 연기 감각에 이미 반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배우를 믿고 온전히 캐릭터를 맡겼어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염혜란 씨가 “어떻게 하죠?”라고 묻더라고요.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하냐는 의미의 질문이겠죠. 나 딱 한마디 했어요. 선수가 왜 나한테 그걸 묻냐고, 하하.
배우로선 너무 막막한 답이었을 것 같은데요.(웃음)
염혜란 아유, 그렇죠.
정순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염혜란 실은 일견 편한 점도 있었어요. 정순은 엄청나게 아픈 과거를 갖고 있지만, 거기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들을 대하는 모습은 쿨하고 멋지기도 해요. ‘그런 거 아니겠니? 싫으면 말아라’ 하는 식의 쿨함. 사실 이런 면은 감독님과도 좀 닮아 있는데요.(웃음) 그 점이 좋더라고요. 연기를 하는 저로서도 어깨를 좀 가벼이 할 수 있었고요. 그러다 후반부 잊었던 과거를 찾아가게 되면서 힘들어졌죠. 마지막 춤을 출 때가 정말 어려웠어요. 지금까지의 모든 감정을 마주하고 갈무리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오래 고민한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세대의 절망감이 큰 것 같은데, ‘앞선 세대가 엄청나게 큰 아픔을 딛고 일어난 이후를 우리가 살고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극복한 이들에게서 힘을 좀 얻어도 될 것 같아요. 정지영 감독

정지영 감독 재킷과 셔츠, 니트, 팬츠, 슈즈 모두 Yuji, 안경 Saint Laurent, 손에 쥔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보리밭에서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이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슬펐어요. 그 장면도 온전히 배우에게 맡긴 결과물인가요?
정지영 물론이죠, 하하.
염혜란 “감독님 제발요,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아니, 혜란 씨 하고 싶은대로”(웃음) 너무 열어주시니까 더 힘든 거 있잖아요. 게다가 날씨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통에 그에 맞춰서 표현하기가 아주 어렵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은 나중에 한 번 더 찍을 뻔했어요.
정지영 나는 바람을 원했어요. 보리밭이 출렁이고, 거기에 나풀거리듯 춤사위가 이어지는, 말한 대로 아름다운데 슬픈 걸 포착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그날 촬영에서 바람이 도통 안 부는 거예요.
그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에서요?
염혜란 그러니까요. 그래서 강풍기도 쓰고, 또 해 질 녘의 빛이 딱 들어맞지 않아서 또 다시 찍고 그랬어요.
정지영 제주도 촬영은 대한민국 어느 지역보다 어려운 곳입니다. 날씨를 가늠할 수가 없어.
마지막 장면을 보며 정순의 춤은 어쩌면 4·3의 모든 희생자를 향한 애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영 복합적인 것이죠. 애도고, 제사고, 일종의 진혼굿이고, 또 화해고, 극복이죠. 그런 복합적인 마음을 춤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는 춤이 아니라 우러나는 몸짓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저는 그렇게 봤어요.
영화의 결말에 대해 감독님께선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의 저항이 아니라 함께 극복하려는 연대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잔혹한 폭력의 시대를 담아냈음에도 끝내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정지영 마지막에 정순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깨워내고 화해하듯이, 그의 아들 영옥도 결국 친구와의 연대로 학폭을 극복해요.
염혜란 정순과 영옥이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고 돌아와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게 원래 시나리오엔 없었는데, 이야기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찍은 장면이에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싶더라고요.
마지막 장면 이후, 정순의 삶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4·3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마주한 이후의 정순은 어떤 삶을 살게 될 거라 생각하나요?
정지영 아픔을 공유하면서 더 적극적인 삶을 살지 않을까 싶어요. 원체 쿨하고 멋있는 사람이니까, 인정하고 극복하면서 전보다 훨씬 더 잘 나아갈 것 같아요.
염혜란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아들 영옥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요. 서로의 아픔을 마주하고 보듬어줬으니 더 끈끈해지지 않을까요.
그럼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요? 이 영화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길 바라나요?
정지영 20~30대가 많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요즘 젊은 세대의 절망감이 큰 것 같은데, ‘앞선 세대가 엄청나게 큰 아픔을 딛고 일어난 이후를 우리가 살고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극복한 이들에게서 힘을 좀 얻어도 될 것 같아요.
염혜란 제주 4·3이 올해 78주기인데, 이 사건이 어느 정도 생명력이 있는 얘기일까 생각해봤어요. 이 지점에서 감독님 세대와 저희 세대, 그리고 더 어린 세대가 느끼는 4·3이 다를 거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 아주 옛날 얘기고, 책 속에 있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났으면 해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대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젊은 세대가 질문을 이어가기를 바라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믿나요?
정지영 나는 그건 거짓말이라고 보거든요. 누구 한 사람의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요. 다만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언급하고 공감하며 토론할 때, 조금씩 바뀌어나갈 거란 생각은 해요.
결국 연대와 사랑이네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도 엄청난 연대가 있었죠. 제작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고, 1만여 명이 참여하며 역대 극영화 최고 수준의 펀딩 기록을 남겼습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에 참여한 모든 이의 이름이 올라오는 5분여의 시간 또한 영화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지영 그렇죠. 그 또한 참 의미가 있어요. 이 사람 영화를 제대로 봤네, 싶은 리뷰가 있었어요. ‘엔딩 크레디트 또한 영화 제목’이라고 쓴 거예요. 자신의 이름을 거기서 찾는다는 거죠.
어떤 연유로 펀딩 방식을 택한 건가요?
정지영 이런 영화는 투자를 받기가 어려워요. 왜 아픈 걸 끄집어내서 보여줘, 재미있는 거 많은데, 하는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시민 펀딩을 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고, 이를 위해서 함세웅 신부님, 조정래 작가님, 백낙청 교수님 등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제작추진위원이 되어달라고 했어요. 이 과정에서 해볼 수 있겠다 생각한 건 내가 이런 영화를 한다 얘기했을 때 어느 한 사람도 ‘시나리오 좀 봅시다’ 한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꾸려진 서울과 제주의 추진위원단분들이 밀어준 덕에 ‘도와주십시오’ 할 수 있었던 거지. 위원단분들과 펀딩에 참여해준 시민들, 그리고 참여하진 못했지만 영화에 관심을 갖고 보러 와주는 모든 분이 이 영화의 이름들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엔딩 크래디트에 이름들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이요, 염혜란 배우가 직접 부른 것이 맞나요? 영화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가사이며 목소리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염혜란 맞아요. 다들 잘 모르시는데, 제가 부른 거예요.
정지영 그걸 관객한테 꼭 알려주고 싶어요. 염혜란 씨의 노래를 듣고 싶으면 끝까지 앉아 있어라. (웃음) 김민기의 ‘친구’라는 곡인데, 아마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1970~1980년대에는 국민 노래였어.
염혜란 저희 세대는 너무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곡이에요. 그래서 감독님이 이 곡을 부르라는데 처음엔 못 하겠다고 했어요. 김민기 선생님의 목소리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그런데 가사가 영화의 내용과 너무나 닮아 있고, 음악도 좋고, 또 젊은 세대는 이 곡을 새롭게 들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괜찮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최대한 용기를 내서 불러봤습니다.(웃음)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까지. 도전으로 완성된 영화네요.
염혜란 맞아요. 벌써 3년도 넘었네요. 제주도에 가서 제작발표회를 한 날이 떠올라요. 마치고 추진위원회분들이랑 식사하러 갔는데, 식당 사장님이 뭐 하는 분들이냐고 묻기에 4·3 영화 찍으러 왔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내용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맙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제주도분들에게 4·3은 이런 의미구나. 그날 느꼈던 어떤 책임감, 그리고 감독님에 대한 믿음으로 도전한 것 같아요. 아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잖아요. 사실 바꾸기엔 미미한 힘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박제되어 있는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건 영화니까, 그 정도의 역할을 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에 함께하게 된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