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한층 넓어진 지평 위에서 서른한 번째 축제의 서막을 연다. 세계 영화계를 이끄는 거장들의 신작과 비범한 신예들의 수작부터 영화가 남긴 발자취를 되짚고 동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까지, 올해 부산을 채울 다채로운 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열흘간 이어질 영화의 향연 속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저마다의 한 장면을 품어가길.
6편의 빛나는 조각들
WRITER 임유청(영화 도서 전문 편집자)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대표 섹션으로, 세계적 거장의 신작과 많은 관객이 기다려온 올해의 화제작을 소개한다. 감독과 배우들의 참석이 예정된 작품들도 있어 영화제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킨다.


먼저 정주리 감독의 신작 <도라>의 소식이 더없이 반갑다. 영화는 심인성 피부 질환으로 고통받는 열여덟 살 소녀 도라의 상황과 감정, 욕망을 따라간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도라 사례 연구’에서 출발한 작품은 정주리 감독이 첫 장편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해온 이야기다. 프로이트의 연구에서 욕망의 대상이던 도라는 욕망의 주체로서 배우 김도연을 통해 생생한 역동을 얻는다. 도라가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인물로, 유방암을 앓았던 나미를 배우 안도 사쿠라가 연기해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그 안에서 힘겹지만 강인하게 서로를 잇는 사람 간의 연대를 이야기해 온 정주리 감독은 이전 작품 <다음 소희> <도희야>에 이어 <도라>로 다시 한번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바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괴물> 이후 후지모토 다쓰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룩백>을 차기작으로 택했다는 소식은 일찍부터 영화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룩백>은 뛰어난 재능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소녀 후지노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동급생 쿄모토의 그림에 큰 충격을 받으며 시작한다. 함께 만화를 그리며 친구이자 동료가 된 두 사람은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마주한다. 원작 만화와 2024년 개봉한 애니메이션영화 역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두 소녀가 겪는 인생이라는 사건과 찬란한 성장, 서로를 향한 애틋한 동경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을 거쳐 어떻게 새롭게 태어날지 기대를 모은다.


올해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은 위대한 동시대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만남으로 더욱 풍성하다. 프랑스 배우이자 감독 주디트 고드레슈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여자아이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그 소녀의 기억>으로 부산을 찾는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의 보편적 진실을 포착해온 작가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는 주디트 고드레슈 감독이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과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져 한층 확장된다. 마르크 피투시 감독과 네 번째로 호흡을 맞춘 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내일은 이름이 있다>에서 엑스트라지만 꿈을 잃지 않는 무명 배우를 연기한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는 배우 양자경의 신작 또한 반갑다. 바이 슈에 감독의 <우리 할머 니는 큐브왕>에서 그는 양로원에서 생활하는 70대 여성 자오를 연기한다. 집과 가족의 마음을 잃고 실의에 빠진 자오는 한때 매직 큐브 세계 챔피언이던 청년을 만나 큐브를 배우며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

연상호 감독은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속 인간 군상의 어둡거나 밝은 몽타주를 근면 성실하게 그려가는 중이다. 영화 <군체> <얼굴>뿐만 아니라 OTT 영화와 시리즈까지 쉴 틈 없이 작업해온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신작 <실낙원>을 선보인다. 13명의 아이를 태운 스쿨버스가 사라지는 충격적 사고를 겪은 뒤 9년을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온 엄마 소영에게 증강현실 속에서만 만나던 아들 선우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실제 인간으로 돌아온다. 배우 김현주와 배현성이 연상호 감독 특유의 날카로움과 실낱같은 온기를 잃지 않는 새로운 심리 스릴러의 얼굴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