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한층 넓어진 지평 위에서 서른한 번째 축제의 서막을 연다. 세계 영화계를 이끄는 거장들의 신작과 비범한 신예들의 수작부터 영화가 남긴 발자취를 되짚고 동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까지, 올해 부산을 채울 다채로운 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열흘간 이어질 영화의 향연 속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저마다의 한 장면을 품어가길.
기대의 개막, 도약의 폐막
WRITER 정시우(영화 저널리스트)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첫 장면은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로 연다. 2024년 OTT 영화 <전,란>, 2025년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거친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개막작으로 선보이며 변화의 방향을 드러내온 영화제가 올해는 보다 내밀한 관계와 감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선보인다. 하나의 카페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시간대에 마주친 네 쌍의 남녀가 나누는 대화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부산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같은 카페를 찾은 유진(김민하)과 현오(주종혁)의 우연한 만남, 중학교 동창 상미(한선화)와 영민(장률)의 기묘한 재회, 웹 소설 작가 혜진(심은경)과 영화감독 동남(이희준)의 강렬한 첫 만남, 관계의 끝자락에 선 아이돌 준비생 나경(전소영)과 연인 종수(김동휘)의 애틋한 순간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 안에 차례로 펼쳐진다. 타인을 알고 싶어 시작하지만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연애의 속성은 오랫동안 관계와 욕망의 미묘한 순간을 포착해온 김종관 감독의 영화 세계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두 사람의 대화를 그렸다는 점에서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아무도 없는 곳>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김종관 감독이 집요하리만치 성실하게 탐색해온 영화적 관심사, 스타일, 세계가 잠정적 완숙에 이른 유려한 영화”라는 영화제 선정 이유를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감성적인 미장센, 인물에 대한 시선이 특히 섬세한 작품이다.
이번 개막작 선정은 <폴라로이드 작동법>부터 단편영화와 옴니버스영화에 꾸준히 애정을 보여온 김종관 감독의 시간이 하나의 성취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장편을 더 자주 만들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을 감독이 자신이 오래 탐구해온 옴니버스 형식으로 영화제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단편과 옴니버스가 장편으로 향하는 경유지가 아니라 김종관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루는 고유한 형식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결과다.
한편, 올해 영화제의 문을 닫는 영화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기억될 전망이다. 올해는 ‘부산 어워드’ 대상에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이 주어지는 첫 해다. 오랫동안 비경쟁 체제를 고수해온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경쟁 부문을 신설하면서 별도의 폐막작을 초청하는 대신 최고상 수상작으로 마지막 상영을 대신했다. 이어 올해 5월 아카데미 진출의 새로운 경로까지 확보하면서 경쟁 부문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칸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선댄스 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 장편영화상 출품 자격을 부여받는 6개 영화제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경쟁 부문을 도입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국제 무대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꽤 영화적인 전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