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안팎에서 부지런히 진화를 거듭하는 ‘뉴타입’ 스토리텔러.

연상호 감독이 증명해내고 있는 것들.

바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걸 다 어떻게 해내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연상호 감독의 행적을 갈무리할 새로운 단어 개발이 시급할 정도다. 지난 5월 개봉한 <군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작 <실낙원>이 극장가에 당도할 채비를 마쳤다. 영화는 실종된 아들의 빈자리를 AI가 대체한 상황, 9년이 지나 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실제 아들 앞에서 혼란스러운 ‘소영’(김현주)의 심리를 중심에 둔다. 우리에겐 왜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가. 혹은 이 시대는 어떤 이야기를 필요로 할까.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가뿐하게 허무는 창작자로서 연상호 감독의 부지런한 행보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다. 쉬이 식어버리지 않는 이 창작자의 호기심은 마주할 때마다 매번 고마울 정도다.

<실낙원>

현재 한국에서 가장 바쁜 연출가라는 데 이견이 있기 어렵다. 영화 <계시록> <얼굴> <군체> <실낙원> 연출,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 <가스인간> 각본 작업까지. 지난해부터 올해 이미 공개됐거나 예정된 참여작만 다섯 편에 달한다.

<얼굴>에서 <군체>로 이어지는 흐름이 특별히 분주했던 것 같다. OTT 영화와 오리지널 시리즈는 일단 공개하고 나면 감독으로서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극장 개봉작은 과거에 비해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일이 크게 늘지 않았나. 몸은 피곤해도 재미는 확실히 더 크다고 느낀다. 책임감의 농도가 달라지는 기분이랄까. 한국에서는 개봉 상황이 이미 정리된 후지만 해외 개봉 일정으로 한동안 바빴다. <얼굴>의 일본 개봉과 <군체>의 미국 개봉 날짜가 본의 아니게 같은 날(8월 28 일)로 겹치면서 두 나라를 정신없이 오갔다.

연상호 감독이 마음에 품고 있는 이야기와 알맞은 때는 어떻게 만나는 걸까? 단편 <지옥>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얼굴>이 그래픽 노블에서 영화로, 류용재 작가와 원안을 만들고 오성은 작가가 집필한 소설 <블랙 인페르노>가 <실낙원>이 되기까지는 모두 시차가 존재한다.

제작과 공개 시점을 의도할 순 없다. 가령 <지옥>은 처음부터 산업적 측면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최규석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우연히 넷플릭스와 연이 닿은 경우다. <얼굴>은 제약을 돌파할 방법을 역으로 찾은 결과다. 처음부터 선뜻 나서는 투자 배급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 를 묵혀두다가 ‘저예산으로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결과적으로는 <얼굴>이 있었기에 <실낙원>도 가능했다고 본다. <블랙 인페르노>는 규모가 제법 큰 이야기다. 출간 후 시간을 두고 바라보니 핵심만 추려서 간결하게 재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얼굴>의 제작과 배급 과정에서 얻은 일종의 자신감이 도움이 됐다는 뜻인가?

그렇다. <얼굴>은 나뿐만 아니라 투자 배급 담당자들에게도 작은 환기가 된 것 같다. 사비를 들여 저예산으로 이미 완성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적은 리스크를 안고 출발할 수 있었다. 각본을 제안하고 투자사의 검토를 받아 제작에 돌입하는 그간의 방식이 조금은 관성적으로 느껴지는 아쉬움도 있던 터다. 관객의 취향은 나날이 세분화되고 바뀌어가지 않나. 산업 측면에서 관객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한 테스트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얼굴>의 결과가 좋았기에 <실낙원> 또한 배경의 규모를 줄여 핵심적 이야기로 접근할 수 있었다.

<실낙원>의 원작인 소설 <블랙 인페르노>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에 위치 한 거대한 절벽을 핵심 공간으로 삼는다. 애초에 이 절벽의 이미지 때문에 해외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된 걸까?

압도적인 절벽 이미지를 이야기의 주제와 연결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배경을 단순히 한국으로 옮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영상화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의 폐광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좁고 깊은 탄광의 이미지는 대자연의 한복판에 자리한 절벽과는 또 다르게 막막한 심연이더라. 절벽을 탄광으로 바꾸면서 원래 이야기가 가진 핵심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지점을 걷어내며 각본의 형태로 다시 매만졌다.

절벽과 탄광, 수직의 방향성이 두드러지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탄광의 이미지를 보자마자 깊숙한 두려움이 연상되더라. 강원도 삼척에 있는 탄광에 직접 가보니 상상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15m 정도 걸어 들 어가면 통신 신호도 아예 잡히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갱도로 진입하면 말 그대로 지옥에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촬영은 실제 탄광과 세트를 섞어 진행했다.

애초에 어떻게 떠올린 이야기인가?

실은 어머니의 아이디어를 샀다.(웃음) 본가에 갈 때마다 “영화 찍는 거 힘들지 않냐, 어떻게 매번 글을 쓰냐” 라고 물으시길래 “한글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다”라며 둘러대곤 했다. 그런데 그 말에 용기를 얻으셨는지 어느 날 이야기를 쓴 노트를 보여주시더라. 4~5페이지 분량이었는데 꽤 괜찮은 내용이었다. 그길로 어머니 께 원안을 사서 발전시킨 것이 <블랙 인페르노>다. 핵심은 우리가 모성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연상되는 기묘한 폭력성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가지고 있던 것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라 예고한 건가?

그렇다. 내 초기 연출작인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작품은 사회 시스템의 폐부를 겨냥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실낙원>에서는 그간 내가 구체적으로 닿지 못하던 인간 본연 의 이중성과 원초적 욕망을 다뤘다.

AI는 앞서 SF <정이>에서 한 차례 탐구한 소재다. 당시 AI를 바라보던 개인적 시각이 <실낙원>을 작업하면서 보다 확대된 면이 있나?

<정이>를 작업할 때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조금은 허무맹랑한 소재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실생활과 조금 거리가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필요를 느꼈던 것 같다. <실낙원>의 초기 각본도 훨씬 더 먼 미래가 배경이었는데, 그사이 인공지능이 이미 실생활 안으로 빠르게 파고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극 중 주인공이 쓰는 VR 안경도 별도의 디자인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요즘 실제로 나오는 AI 스마트 안경 제품들이 언뜻 일반 안경의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데이터와 기억으로 구현한 AI와 실제 아들의 간극에 놓인 엄마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파고드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만든 내 모든 작품 중에 ‘인물이 왜 이런 선택을 내렸는가’에 대해 가장 명확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백을 남겨두는 영화일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누가 봐도 비슷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영화의 큰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화를 자주 보며 아주 깊이 있게 해석하는 사람들과 어쩌다 한 번 보는 사람들 사이 감흥의 격차를 줄이는 연출이 중요한 목표였을 정도다. 하지만 <실낙원>에서는 인물의 혼란을 너 무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그 인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소설과 그래픽 노블을 포함한 서적과 영상 콘텐츠를 연계하는 작업에서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군체>는 속편이 아니라 책과 게임을 통해 세계관을 넓힐 예정이라고 들었다.

내가 꽤 이상주의자다. 매체 간 장벽을 허물고 싶은 바람이 있다. 가령 영화는 많이 보지만 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존재하고, 만화를 즐겨 보지만 영화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매체의 형태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관 자체를 즐기는 형태로 관람 문화를 바꿔나가고 싶다. 나 역시 평소 연극과 뮤지컬을 거의 보지 않는데, 뮤지컬 <데스노트>를 즐겁게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만화책과는 또 다른 재미가 발군이더라.

<가스인간>의 작업 과정도 궁금하다. 타국의 문화를 배경 삼아 글을 쓰는 것 이 말처럼 쉽고 간단하진 않았을 듯한데.

처음에는 분명 두려웠다. 대본 초안을 두고 도호 스튜디오의 프로듀서들과 논의할 때 “일본에서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피드백을 들으면 괜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타국인인 내가 일본 작품을 끝까지 쓰는 게 가능할까 싶었던 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좋았다. 마치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경험한 기분이다. 아예 정착해서 사는 건 아니지만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서 즐긴 느낌이라고 할까.

일본 도호 스튜디오가 제작한 고전 특수촬영물 <가스인간 제1호>를 현대적 으로 각색한 작업이다. 어디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갔나?

본인은 순애보라 생각하고 남들이 보기엔 비뚤어진 방식의 사랑이라는 점이 문제지만, 원작을 관통하는 중요한 정서 자체가 멜로라고 봤다. 늙지 않는 외형을 갖게 된 가스인간과 ‘쿄코’(아오이 유우) 그리고 ‘켄지’(오구리 슌)의 삼각관계가 중요했다. 문제는 내가 멜로를 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집필한 류용재 작가도 문제였다. 우리 집 큰애가 어느덧 열두 살이고, 류용재 작가 아들은 스물한 살이다. 그런 두 아버 지가 만나서 얼마나 대단한 멜로 얘기를 하겠나.(웃음) 쉽진 않았지만 원작의 정체성이라 느낀 핵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본의 사회적 이슈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이다. 내 안의 근거가 필요할 때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올림 픽의 몸값>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1960년대 도쿄 올림픽 때문에 희생을 치러야 했던 인물이 올림픽을 인질로 테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가적 대형 이벤트를 위해 판자촌에서 밀려 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최규석 작가의 단편 만화 <선택>이나 다큐 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가스인간>의 연출을 맡은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주관이 매우 뚜렷한 사람이라는 점도 다행 이었다. 본인이 옳다고 믿는 연출의 방향이 있으면 대본과 조금 달라지 더라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안심했다. 한국 인인 내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일본인 감독이 현지 사정에 맞게 바꿔 줄 것이라는 믿음이 컸다.

출연 배우들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있었나?

연출가로서 현장에서 함께 작업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일부 있었다. 실은 묻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특히 아오이 유우는 연기와 삶의 방식 모두 탁월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요즘도 메신저로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블록버스터 체급의 작품보다는 드라마 장르를 선호해온 배우이기에 신선한 캐스팅이었다.

맞다. 그간 자신이 없어서 출연을 고사해왔다고 하더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며 가짜로 연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 했다고. <가스인간>을 촬영하면서는 제작진, 동료 배우들과 공통의 목 표를 또렷하게 인지한 덕분인지 “현장에서 정말 가스인간이 눈앞에 보 였다”라고 하더라. 그게 엄청나게 새로운 경험이었다고도 했고. 표현도 섬세하고, 작품마다 완벽히 다른 결을 보여주는 놀라운 배우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연출가와 배우로도 다시 조우하고 싶다.

믿음, 의혹, 모멸감, 집단성의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은 연상호 감독 세계관의 중요한 토대다. 요즘 가장 흥미롭게 느끼는 감정이나 인간의 상태는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연 진짜가 맞을까’라는 의심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다양한 정체성은 각각 다른 세계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가상의 정체성을 쉽게 만들 수 있고, 나아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실제 인간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우리 모두는 과연 여러 정체성 사이의 간극을 하나로 묶는 균형감을 지닐 수 있는 존재일까? 요즘 골몰하는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