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홍시

writer 김예지(작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이면 엄마네 집 부엌의 작은 창문 앞에는 매년 홍시가 나란히 올려져 있다. 아빠의 고향은 경남 밀양, 홍시가 유명한 청도와 가까운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추석 무렵 할머니 댁에 다녀오면 온갖 음식 재료와 감을 챙겨 오는데 그중에는 단감도, 곶감도, 그리고 홍시도 있었다. 수확량이 많은 해에는 꽤 많은 수의 홍시가, 그렇지 못한 해에는 외로이 하나가 달랑 올려져 있기도 하다. 그 때문일까. 나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날이면 항상 그 풍경이 떠오른다.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으며 빨갛고 탐스럽게 익어가던 홍시들이 말이다. 그런 홍시는 엄마가 유달리 애정을 기울이는 음식 중 하나다.

엄마는 일평생 자기 취향을 고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취향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웬만하면 가족에게 먼저 취향을 양보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음식을 먹든, 어느 장소를 가든, 그렇게 무던하고 둥근 사람.그래서 나는 엄마의 취향을 자주 잊곤 한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어김없이 홍시가 올라온 후에야 깨닫는다. ‘아, 엄마가 좋아하는 홍시다. 맞아. 홍시를 참 좋아하셨지’ 하고 말이다. 이맘때쯤 엄마는 홍시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다. 처음 시골에서 바로 가져온 홍시는 부엌 창가에 둬 좀 더 익힌 후 상온에서 몰랑해진 상태로 즐긴다.

식사를 마친 후에 조금 허기질 때쯤 엄마는 부엌 창가로 가 가장 마음에 드는 홍시를 골라 접시에 올린다. 그러곤 TV 앞으로 가져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홍시의 반을 가른다. 그러면 햇볕에 잘 익은 홍시의 겉은 부드럽게 저항감 없이 반으로 쫙 갈리며 몰랑한 속살이 나온다. 그때 엄마의 얼굴에 나타나던 기쁨과 환호를 자주 기억한다. 어쩐지 자랑하고 싶은지, 그렇게 가을에 첫 홍시를 개시할 때면 나에게 어김없이 말씀하셨다. “이거 봐, 아주 예쁘게 잘 익었지? 색이 참 예쁘다. 향도 진짜 달아. 너도 반 개 줄까?”

내가 먹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매번 이렇게 권한다. 나는 홍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꾸만 먹이고 싶어 하는 엄마. 그래서 매번 내가 싫다는데도, 꾸준히 물어본다. 그럼 역시나 항상 거절하는 나를 두고 엄마는 신이 나서 자그마한 티스푼으로 홍시를 한 입 떠먹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하다. 나와 다른 미각을 가진 엄마는 입 속에 홍시를 물면 꽤 황홀한가 보다. 몰캉하고 단내가 진동하는 홍시에 또 기뻐한다. “이야! 이번에 진짜 잘 익었다. 햇볕이 좋았나 봐!” 매년 먹어도 매번 기뻐하는 사람. 그렇겠지, 계절을 매번 겪어도 좋은 것처럼 홍시도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엄마만의 특별한 맛일 테니까. 그렇게 상온에 말랑하게 잘 익은 홍시들은 시간이 지나면 상하지 않게 냉동실로 옮겨진다. 그럼 그 이후로는 냉동 홍시를 즐기게 되는데, 평소에는 차가운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엄마지만, 차가운 홍시는 꽤 좋아한다.

나도 언 홍시를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희한하게도 홍시는 얼어도 먹을 때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살짝 얼어 있으면 셔벗처럼 사르르 입에서 녹는 게 재미지다. 나이가 들어 차가운 걸 잘 못 먹는 엄마지만 홍시만큼은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 “아, 차가워!” 하면서도 끝까지 드신다. 그렇게 가을에 받은 홍시는 겨우내 엄마의 훌륭한 간식으로 애호의 대상이 된다. 엄마를 제외한 나, 오빠, 아빠는 좀 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길 좋아한다. 그래서 각자의 공간에 자신을 표현하는 여러 물건이 놓여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취향을 드러내고야 만다.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취향을 잘 아는 엄마는 장을 보러 갈 때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식들을 사다 냉장고를 채워둔다. 고기와 과자는 주로 오빠를 위한 것, 제철 나물이나 한식은 아빠나 엄마한테 잘 맞는 것. 그리고 가끔 집에 와서 식사하는 나를 위해 준비해둔 반찬과 과일들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취향은 그 어디에서도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장을 봐 와도 가족이 좋아하는 것을 나눠 먹거나 자신의 영역에 어떤 특별한 물건을 수집하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대도 없고 옷도 가짓수가 아주 적어 엄마 물건 자체가 집 안에 별로 없다.

대부분의 소비를 지양하는 사람인지라 어찌 보면 이렇게 물건이 없는 게 더 엄마의 취향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집 안에서 엄마의 취향이 깃든 물건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어쩌다 찾는다 해도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매년 가을 홍시는 그렇게 엄마의 취향을 드러내며 낯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사실 홍시도 엄마가 먹으려고 산 게 아니라 매년 추석 때 들르는 시댁에서 필수로 얻어 오는 음식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홍시를 유독 엄마가 좋아했을 뿐이다.

그나마 가족 중 아빠가 엄마와 함께 홍시를 즐겨주지만, 오빠와 나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나는 홍시보다는 곶감을 더 좋아한다. 어찌 됐든 시골에서 받아 창가에 잘 익으라 둔 것이지만 그 과정을 가장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이는 엄마다.

어느 해인가 아빠가 시골에 내려가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는 마트에 가 잘 익은 홍시를 사 왔다. 그리고 포장을 뜯어 어김없이 부엌 창가에 올려두었다. 그곳이 가장 선선해 잘 익는 자리라며. 내가 본 가장 분명한 엄마의 취향 표현이었다.

그해 엄마는 여전히 여러 방법으로 홍시를 즐겼고 여느 해처럼 똑같이 행복해하며 나에게 권했다. 내가 먹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