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첫 실험실,
어머니의 베란다

writer 신혜우(식물학자)

 

나는 식물 연구를 위해 미국의 한 연구소에 왔다. 미국에 도착했을 땐 한겨울이었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들만 무성한 숲엔 간간이 눈이 내렸지만 나는 주말마다 연구소 숲속을 산책했다. 타국의 이국적인 식물들은 잎이 없어도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어느새 볕이 따뜻한 4월, 봄이 되었다. 온 천지에 봄꽃이 피어나 나는 처음 보는 외국 꽃들을 부지런히 관찰 중이다. 지난 주말에도 어김없이 숲속을 걷기 위해 연구소 숙소를 나섰는데, 숙소 문 앞에 익숙한 식물이 돋아나 있었다. 쇠뜨기였다. 작고 간단한 소나무 모형처럼 생긴 쇠뜨기는 내게 아주 익숙한 식물이다. 내가 제일 처음 이름을 외운 식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시골집 문 앞에 있던 쇠뜨기가 미국 숙소 문 앞에 자라는 모습은 알 수 없는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가만히 관찰하고 있으면 어느새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미국에서 만난 쇠뜨기는 한국의 쇠뜨기와 분명 다른 존재지만, 그 똑같은 모양과 습성은 그들이 모두 하나의 조상 쇠뜨기에서 왔음을 보여준다. 모든 생물은 그와 닮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또 자신과 닮은 자식을 남긴다. 우리도 생물이기에 그 흐름 속에 있다. 나는 내가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그래서 식물학자가 된 것이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어머니, 외할머니, 그 이전부터 내게 전해진 운명이라 생각한다.

작년 추석에 이모네에 모였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느꼈다. 어머니, 이모, 외할머니, 나.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모가 베란다에서 30년 넘게 키운 난초 이야기를 들었다. 큰 화분은 난초 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대개는 한두 촉을 화분에 담아 고고한 멋으로 판매하는 난초인데, 이모네 난초는 밭에서 자라는 파나 부추처럼 건강하고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이모는 그 옆에 있는 다른 난초들과 결혼할 때 외할머니가 주셨다는 군자란도 보여줬다. 매년 꽃을 피운다며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이모의 이야기에 이어 당신이 키우는 식물들에 대해 얘기하셨다. 어머니의 꽃 키우기 역사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방대한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옆에 계시던 외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지만, 사실 이 식물 사랑의 역사는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 가면 어려운 살림에도 화분에 고추나 상추 외에 제라늄 같은 예쁜 꽃을 키우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제라늄은 유독 한국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꽃이다. 웬만해서는 죽지 않고 가지를 꺾어 심기만 하면 금세 새로운 개체로 자라나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제라늄은 어머니의 베란다에도 늘 있었는데, 나는 제라늄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외할머니는 95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걸어 다니셨고 눈과 귀도 밝으셨다. 공원에 도착해 언덕을 조금 올라갔을 때 나는 한 은사님이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은사님의 친구분이 연세 많은 어머니를 모시고 학교에 오셨는데, 교정의 벚꽃이 너무 예뻐서 벚나무 아래에서 친구와 어머니의 사진을 찍어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친구의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결국 그 사진은 그분이 건강하실 때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나는 먼저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불현듯 그 이야기가 떠올라 사진을 찍자고 했다. 찍어줄 사람이 없어 울타리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울타리를 따라 키 순서대로 일렬로 서서 사진을 찍었다. 땅속 가는 줄기 마디마다 싹을 틔워내고 차례로 솟아오르는 쇠뜨기처럼 우리는 나란히 서 있었다. 사진 속 우리는 서로 닮았다. 모습뿐 아니라 행동도, 좋아하는 것도 말이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왜 지금 식물을 연구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쓰러지셔서 지금은 요양 병원에 계신다. 추석 때 찍은 사진은 결국 외할머니가 건강하실 때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나는 평소 아주 무뚝뚝한 딸로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전화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외할머니 병간호로 심란하실 것 같아 평소 거의 하지 않던 화상 통화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밝은 모습으로 전화를 받으셨다. 내가 미국에 올 때 키울 수 없어 맡긴 고양이 두 마리를 번갈아 불러 인사시켜주시고 곧 베란다로 나가 꽃이 핀 화분을 하나씩 보여주셨다. 어머니의 안색을 살피려고 전화했는데, 휴대폰 화면에는 어머니의 베란다에서 자라는 꽃들만 하나씩 계속 등장했다. 늘 그렇지만 어머니는 내가 식물학을 하고 있다는 걸 개의치 않으신다. 내가 꼬마일 때 처음 식물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어머니이듯 지금도 내게 식물 이름을 알려주고 설명하신다. 나는 그냥 가만히 듣는다.

어머니의 꽃 가꾸기는 한 번도 지친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이사를 여러 번 갔는데 항상 깊은 시골이었고 집에는 넓은 빈터가 있었다. 어머니는 호박이나 고추를 심기도 하셨지만 대부분 예쁜 꽃과 나무를 심으셨다.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갈 때면 어머니의 솜씨로 빈터는 무성한 정원이 되어 있었다. 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베란다에 식물을 키우셨다. 넓은 정원을 가꿔온 솜씨로 베란다는 금세 정글이 되고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워냈다. 식물은 그렇게 늘 어머니 곁에 있었고, 그곳에서 자연스레 내가 태어나고 자라났다. 어머니의 식물들은 내가 만지고 관찰할 수 있는 나의 첫 번째 식물 표본이자 연구 대상이었다. 나는 식물 다큐멘터리에서 제라늄 씨앗의 번식 원리를 보기 전에 이미 어릴 때 어머니가 가꾸던 베란다의 제라늄 씨앗을 관찰하며 그 원리를 스스로 깨쳤다. 제라늄 씨앗의 긴 꼬리는 수분이 많고 적음에 따라 스프링처럼 돌돌 말리거나 펴진다. 나는 어머니가 물을 주면 제라늄 씨앗의 꼬리가 펴지고, 햇빛이 쨍쨍해 건조해지면 돌돌 말리며 날아가 흙에 파고드는 걸 보았다. 내 식물 관찰의 최초 목록에는 어머니의 식물들이 있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외할머니의 식물도 있을 것이다.

모든 식물이 자신과 닮은 자손을 만들고 같은 모양의 꽃을 피워 지구를 물들이는 수천 년의 시간 속에 어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그 위의 조상들이 차례로 그 식물들 곁에 있었다. 식물이 물, 흙, 햇빛이 있는 곳 어디에서든 초록색 잎을 틔우고 광합성을 하도록 조상 대대로 DNA를 물려받듯 나의 식물 사랑은 나의 어머니, 외할머니, 그보다 오랜 나의 조상에게서 받은 DNA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대에 걸친 식물 사랑으로 내가 지금 실험실에서 식물을 연구하게 된 것이라고. 두 달 전 아버지가 은퇴하시자 어머니는 오랫동안 바라던 정원이 넓은 시골집으로 이사 갈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 어머니는 이제 아주 많은 식물을 가꾸실 것이다. 어머니의 베란다 식물들도 더 넓은 곳에서 아름답게 활짝 필 것이다. 나는 그 시골집 정원에서 어머니의 식물들을 만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