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또렷한 취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이들의 시선은 귀중한 경로가 된다.
날 선 감각을 지닌 25명의 문화 예술계 인물에게서
요즘 보고, 듣고, 읽고, 사고, 즐기는 것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고성 천진해변

©양보연

5년 전쯤 이 해변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를 소개했고, 우리는 여름이라는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됐다. 파도가 치는 날에는 서프보드를 안고 바다에 몸을 던졌고, 볕이 내리는 날에는 백사장에 누워 세월아 네월아 맥주를 마셨다. 어쨌든 웃는 얼굴로 보낸 시간이었다. 그 볕과 바다와 해변 그리고 친구들이 전쟁 같은 일정에 치여 사는 요즘 가장 절실하다. 양보연(콘텐츠 디렉터)

 

가고시안 파리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조각품이 있다. 공간을 지배할 만큼 크고, 관람객의 행동을 재설정하듯 비좁은 작품 사이의 공간을 거닐게 했다. 업스테이트 뉴욕의 디아 비콘에는 더 많은 리처드 세라의 조각품이 있지만, 가고시안 파리의 그것만큼 압도적이지는 않다. 내가 작품에 압도당한 건 처음이었다. @gagosian 양보연(콘텐츠 디렉터)

 

서로재

강원도 고성의 한적한 마을 삼포리에 자리 잡은 스테이. 새벽이슬을 기분 좋게 느낄 수 있고, 오랜 세월 자리한 소나무와 느릅나무를 마주하며 빛과 그림자, 바람과 새소리, 천천히 흐르는 공기를 음미하게 한다. 한마디로 자연을 큐레이션한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그곳에서 천천히 내려 마시는 따듯한 차 한 잔은 잡념을 씻어내주는 듯하다. @seorojae 박정애(공간 및 브랜드 컨설턴트)

부르

지하철 언주역 인근에 새롭게 문을 연 컨템퍼러리 다이닝. 이곳에서는 와인이나 맥주, 위스키 등 다양한 주류와 함께 한식과 프렌치 퀴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후 자주 찾아가는 곳. 셰프의 내공이 느껴지는 세련된 메뉴도좋지만, 넓은 공간과 깔끔한 인테리어 덕분에 미팅이나회식 등 다수의 인원이 함께하는 모임에 유용한 장소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샤블리 한 잔과폭신한 트뤼플 푸아그라 교쿠로 시작해 한우 라구 파스타, 홍새우 먹물 파스타, 꽃살, 연잎 생선 카다이프 등 인원에 맞춰 취향껏 즐긴 후 마무리는 꼭 더덕 아이스크림으로 해보길. @vuur.seoul 맹나현(큐레이터)

 

더 북 소사이어티

온갖 종류의 예술 관련 서적을 접할 수 있는 독립 서점으로, 현재 위치로 이전하기 전부터 자주 방문하던 곳이다. 국내에서 발간된 예술 관련 이론서나 아티스트 북뿐 아니라, 해외에서 발간한 주목할 만한 책도 꾸준히 소개하는 곳. 창성동 MK2 근처 2층에 있을 때는 특유의 자유분방한(?)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었는데, 옥인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조금 더 정돈된 형태를 띤다. 어떤 방식이든 이곳만의 감각으로 고르고 배치한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tbs_book_society 맹나현(큐레이터)

 

구하우스

©구하우스

전국 곳곳의 미술관을 ‘도장 깨기’ 하던 시절,양평에 집을 컨셉트로 한 미술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실제 집처럼 거실과 서재 등으로 구성한 덕분인지 머무는 내내 편안했고, 작품 감상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후 매해 이곳을 찾아가고 있고, 지난 주말에도 다녀왔다. 현재 5백여 점에 이르는 컬렉션은 꾸준히 추가되는 중인데, 방문할 때마다 새롭게 접하는 작품들이 많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신기한 아이템으로가득한 뮤지엄 숍도 둘러보기를 권한다.@koohouse_museum 이지현(문화기획자)

 

M+ 뮤지엄의 라운지

©Winnie Yeung at Visual Voices/M+, Hong Kong

올해부터 홍콩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아트 마켓이 발달한 곳이라 주말이면 옥션 하우스와 갤러리를 여러 곳씩 찾아 다니곤 한다. 2년 전 문을 연 M+ 뮤지엄도 빼놓을 수 없어 방문했는데, 아름다운 건물과 전시 퀄리티에 반해 바로 멤버십에 가입했다. 또 다른 이유는 멤버십 가입자만 갈 수 있는 최상층 라운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KusamaYayoi)의 작품에서 영감 받은 애프터눈 티 세트 등 독특한 메뉴가 많고, 공간 자체도 근사하기 이를데 없어 자주 들른다. @mplusmuseum 이지현(문화기획자)

 

GUVS

내가 사는 파주 헤이리에 자리한 GUVS는 꼭 구매하지 않더라도 산책 겸 들러서 가구와 책을 구경하고 스태프들과 커피 한잔 하고 오면 기분이 꽤 좋아서 자주 간다. 대부분의 빈티지 가구 숍과 달리 비싼 디자이너 가구로만 채우지 않아 진입 장벽이 낮고, 가끔 열리는 소소한 이벤트들도 즐길 수 있다. @guvs_heyr 굿넥(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