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면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미술 수집을 시작하고 인생의 작은 변화를 경험한 컬렉터의 집을 방문했다.
이현희ㆍ김유연 모녀
갤러리 산책이 취미인 이현희 모녀가 컬렉션을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서로를 위한 추천 전시 리스트를 만들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녀의 다정한 대화는 아름다운 집으로 이어진다.
미술 작품 컬렉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이현희 아이들 학업을 위해 서울과 뉴욕을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뉴욕은 현대미술의 중심이고, 서울은 끝없이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는 도시잖아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도시의 아트 신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컸어요. 딸과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니다, 10여 년 전부터 컬렉팅을 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인테리어에 목적을 두고 우리의 시선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소장하는 데에 기준을 두었던 터라, 투자 가치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누구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작품의 유명세나 투자 가치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작품을 소유하게 된 거죠.
가장 처음 컬렉션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현희 강익중 작가의 평면 작품과 이스라엘 미술가 데이비드걸스타인(David Gerstein)의 입체 작품이 최초의 컬렉션입니다. 강익중 작가의 작품은 복도에,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은 아들 방에 설치되어 있어요.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지닌 특유의 에너지에 반해서 소장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침실에 설치한 작품이 인상 깊습니다. 이현희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라질리에(Andre Brasilier)와 김환기작가의 작품이에요. 앙드레 브라질리에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작품에 담긴 컬러가 침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이곳에 두게 되었어요.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흔치 않은 드로잉 작품이라 더 매력적입니다. 김유연 침실에 설치한 작품은 전적으로 제가 결정했어요. 오상택 작가의 드레스 이미지 작품과 정고 요나 작가의 꽃 그림을 걸었죠. 오상택 작가의 작품은 마치 그림 같은 정적인 아름다움이 매혹적이에요. 정고요나 작가의 그림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져 좋아해요. 그리고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엔 엄마가 그려준 저의 어릴 적 모습이 놓여 있어요. 방은 전체적으로 클래식한 분위로 구성했고, 작은 방에 큰 그림을 걸었지만 거울을 활용해 공간이 넓어 보이도록 배치했어요.
컬렉팅을 하는 것에 이어,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이현희 2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을 배우러 다니고 있어요. 아직은 시작 단계라 주로 사진을 보면서 유화를 그리곤 해요. 딸과 강아지 로이의 초상을그렸고, 요즘은 사진을 보면서 내 뒷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예전에는 작가가 도대체 어떻게 그렸을지 감도 잡을 수 없었는데, 직접 그림을 그려보니 이제는 회화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졌어요.
최근에 컬렉팅한 작품도 궁금해요. 어떤 점에 매료되어 소장하게 되었나요? 이현희 원래는 거실 중앙에 미국 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작품이 걸려 있었는데 이를 현관으로 옮기고, 얼마 전에 소장한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oniel)의 신작을 걸었어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도 선보인 핑크색 오얏꽃 작품이에요. 항상 오토니엘의 구슬 조각보다는 평면 작품에 더 매력을 느껴왔어요. 거실에 걸려 있는 박서보, 하종현, 오토니엘 작가의 작품들이 비교적 최근에 들인 컬렉션이에요.
컬렉션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이현희 김환기 작가의 드로잉 작업에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작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를 읽고 감동을 받아 소장에 이르게되었죠. 김향안 여사의 제안으로 서울, 파리, 뉴욕을 오가며 작품 생활을 한 부부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거든요. 그러다 옥션에 작가의 드로잉 작품이 나왔길래 대뜸 전화로 응찰하게 됐어요. 옥션을 통해 구입해본 적이 없던 터라 추정가보다 높은 금액에 낙찰을 받은 거예요. 당시엔 너무 다급하게 구매한 것 같아 후회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작가의 감정과 느낌이 잘 담긴 작품인 것 같아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볼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김유연 미술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했는데, 첫 수업 때 동시대 미술가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때 제가 담당한 작가가 제니 홀저였어요. 그녀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가를 공부하며 고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술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맞게 됐어요. 결국 순수 미술에서 아트 히스토리로 전공을 바꾸었고, 앞으로도 계속 작가의 세
계를 탐험하는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에요.
엄마와 딸이 함께 컬렉팅을 하며 공통된 취향을 발견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김유연 엄마는 알렉스 카츠나 데이비드 호퍼처럼 인물과 그의 흔적, 도시와 일상을 그린 작품을 선호하는 편인데, 저도 취향이 비슷해요. 다만 저는 작품에 사용한 미디엄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태국 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데님, 이기봉 작가의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같은 소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최근에 마음을 사로잡은 전시는 무엇이었나요? 이현희 예전에는 이우환 작가의 감성에 깊이 공감하진 못했는데, 얼마 전 전시를 보고 큰 울림을 느꼈어요. 미술가로서 자신만의 철학이 분명하고, 이를 작품에 담아내려 애쓰는 작가의 열정이 엿보인 전시였어요. 프랑스에 있는 이우환 아를 미술관에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지난 3월 뉴욕 템플론 갤러리(galerie templon)에서 딸과 같이 봤던 일본 미술가 시오타 치하루(Chiharu Shiota)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어요. 전시를 본 후 그의 작품 세계와 인생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어졌어요.
미술 작품 수집에 관심이 있는 초보 미술 애호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이현희 저 역시 여전히 초보 컬렉터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투자하기 위해 작품을 구입한다는 이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소장하면 감상하다가 금방 싫증날 수도 있고, 미술계에서 작가의 인지도가 흔들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될 거예요. 시작 단계에선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살피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전시를 많이 보면서 스스로 어떤 작품에 매료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작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진리입니다. 저 역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중입니다.
미술 작품을 가까이하고 나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이현희 예전에는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그런데 미술을 가까이하며 다름에 대한 관용을 갖게 되었고, 이는 미술 작품을 넘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다양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각기 다른 삶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