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킴

보 킴은 작업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비영속적인 아름다움을 탐미한다.
방충망 위에 석고 가루와 페인트를 섞어 펴 바르면
남은 조각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한지를 같은 크기로 자르면서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다 보면 우연히 불완전함이 생길 때도 있다.
마치 명상처럼 스스로의 방식으로 수행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흔적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화이트 프릴 트림 드레스 파르티멘토(Partimento), 데님 팬츠 에이치앤앰(H&M), 샌들 피에톤(Pieton).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Impermanence>라는 설치 작품 전시를 했죠. 외부 환경에 따라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떨어지는 꽃과 얼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Impermanence>는 학부 시절에 졸업 작품으로 만든 동명의 시리즈에서 비롯된 저의 첫 설치작품전이에요. 갤러리 운영 시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면서 카메라를 켜뒀는데 얼음이 밑으로만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녹다가 옆으로 쓰러져버리더라고요. 갤러리와 조율해 물은 치우더라도 꽃잎은 최대한 남겨뒀어요. 꽃이 모두 떨어지고 바닥에 남겨지는 모습은 예상치 못했지만 이것 역시 비영속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되었죠.

평면 버전의 <Impermanence> 역시 비영속적인 아름다움과 맞닿아 있나요? 석고 가루와 페인트를 섞어 방충망 위에 펴 바르는 작업을 하는데, 어떤 부분은 떨어져나가고 어떤 부분은 잔해로 남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남아 있던 조각이 다시 떨어져나가기도 하고요. 제가 불교 신자이다 보니 이 과정을 보면서 비영속성이라는 개념과 연관 짓게 되었어요.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조금씩 떨어지는 것, 그 밑에 남는 흔적 역시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시작한 시리즈죠.

이후로도 정제되지 않은 형태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여름방학에 안동 하회마을에 갔다가 창호지 너머로 빛을 머금거나 내뿜는 한지의 성질에 매료되었어요. 이전에는 방충망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연하게 나오는 것으로 불완전함이나 비영속성을 표현했다면 ‘Imperfection’ 시리즈는 같은 크기로 잘라도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한지에서 불완전함을 찾고자 시작했죠. 페인트 없이 오로지 나무 패널 위에 한지와 모래를 사용해 만든 첫 시리즈이기도 하고요.

 

보 킴, ‘빙화(氷花)’, Ice infused with flowers, acrylic, and hanji, 2022

보 킴, ‘초저녁, 푸른 바다 너머로(But came the waves and washed it away)’, Hanji, sand, acrylic, conte on canvas, 150×150cm, 2023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편인가요? 유학 시절, 물감처럼 일반적인 미술 재료를 파는 상점에도 물론 자주 갔지만, 건축학도가 사용하는 재료를 판매하는 상점에 가면 참 흥미로웠어요. 그곳에서 석고 가루를 처음 접하면서 색다른 실험도 하게 되었어요. 자연에서 영감 받은 색을 사용하게 되기도 했죠.

돌이나 나무처럼 자연에서 생성되는 자연물 역시 작업 재료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보통 풍경을 아름답게 여기지만 떨어진 자연의 조각은 지나치기 쉽잖아요. 이런 조각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는 의미에서 길거리에 떨어진 모래나 나뭇잎, 돌과 같은 자연물을 주워 작업 재료로 쓰게 됐어요. ‘책갈피’는 나뭇잎을 주워 코팅하던 어린 시절의 감성을 떠올리며 시도한 시리즈인데, 이것을 평면화해서 ‘Embracing the Moment’라는 시리즈로 작업했어요.

한국적 요소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게 된 데에는 고향에서 보낸 시절이나 유학 시절의 영향이 있나요? 줄곧 서울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때는 팝아트나초현실주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로 유학을 가면서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와 관련한 영감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아요. 또 국내에 있을 때는 우리나라의 역사나 미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타국에 있다 보니 한국적 요소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되기도 했죠.

최근에는 어떤 방식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나요? 가장 두꺼운 한지를 캔버스 제일 밑에 붙여요. 그 위로 페인트를 칠하는 데 한지가 두껍다 보니 색이 한지를 먹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바를 때와 바르고 난 이후의 색이 달라지곤 하는데, 저는 이 기억을 기록하고, 그 기록이 다시 희미해지는 순간을 과정이라 표현하고 있어요. 한 겹을 붙이면 기억이 희미해지고, 다시 그 위로 페인트를 칠하면 기억을 회상하는 것인데 이런 시간이 중첩되는 거죠.

 

보 킴, ‘Imperfection 29’, Hanji, sand, and acrylic on canvas, 130×90cm, 2021

묵묵히 작업의 반복을 유도하는 것이 수행처럼 보이기도 해요.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작업 과정이 명상적 수행과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죠. 가만히 앉아서 최대한 생각을 비우고 행동을 멈추는 것을 명상이나 수행이라고 하죠. 그런데 제게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명상 같기에 이런 상충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프로비던스(Providence)의 한 절에 갔다가 스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았죠. 그때 스님께서 스님들도 경전을 외우거나 절을 올리면서 수행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형태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경전을 외우거나 절을 올리는 것과 흡사하다고 느끼는 작업 과정이 있나요? 보통 우리가 운동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하러 가는 과정이 참 힘들잖아요. 저 역시 직업이 작가이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상이지만 개인적으로 힘들거나 지치는 날이면 작업하러 가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이 복잡해도 막상 작업을 시작하고, 반복적으로 재료를 오리고 붙이다 보면 그 자체가 수행이 될 때가 많아요.

전시 <When Light is Put Away>의 한글 제목은 뮤지션 이소라의 노래 ‘아로새기다’에서 영감 받아 동일하게 붙였어요. 평소에도 마음에 담고 싶은 단어를 작품이나 전시 제목에 활용하는 편인가요? 그날 읽은 글이나 들은 노래 가사의 일부를 차용해 일기를 남기고 있어요. ‘잔향, 창 너머로, 그날이 오면, 해 질 무렵에, 푸르름의 날들’처럼 아주 짧게 감상이나 감정을 기록해둘 때가 많죠. 사람들에게 제 작품이 어떤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서정적인 단어들을 고르는 편이에요.

그간 해온 작업 중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하나만 고르기는 어려운데, ‘When Light is Put Away’ 시리즈를 작업할 때까지는 한지의 매수를 모두 일정하게 맞췄어요. 그러다 ‘너무 긴 어느 겨울날에’를 작업하면서 한지를 마지막에 부분적으로 덧붙여 기억의 희미해짐을 조금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죠. 모래와 한지 사이에 생기는 기포를 이용해 차콜(목탄) 콩테 크레용으로 드로잉을 하면서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도 표현했고요. 겨울이 유독 길게 느껴지던 당시,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여름에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만든 작품이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차가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바람이 하는 말’이라는 작품도 참 좋아해요. 제목과 완성된 모습이 잘 어우러지죠.

 

주제와 소재에 변화를 주는 가운데, 유지하고자 하는 작업 또한 궁금합니다. 제가 명상적 수행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시 세상이 어지러웠기 때문이에요.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수많은 폭동이 일어났죠. 제 주변에는 동시대 사회문제나 퀴어 문화를 표현하는 작업자도 상당히 많았어요. 미술이 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그려내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것들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나 환기하고 평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예전에 서세옥 선생님의 전시를 보고 울컥한 적이 있는데 저 역시 앞으로도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그간 감정 표현을 꾸준히 하면서 생각의 변화를 겪기도 했나요? 작업 초기에는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취지의 작품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살다 보니 때로는 사람들이 이 흐름을 막고 싶어 한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노화의 과정이나 감정의 변화를 막고 싶어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작품에서도 비영속성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길 바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자세를 표현하게 되었어요.

아직 남아 있는 한지도, 전시장에 걸리지 못한 작품도 많습니다. 작업 역시 하나의 커리어고, 더 잘되고 싶은 욕구가 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욕심을 갖다 보면 실망하는 순간도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마음을 다독여요. 제가 지금 서른 살이니 여든 살까지 50년이나 남았으니까요.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을 테고, 그렇기에 ‘끝까지 할 수 있는 작가가 되자’라는 생각으로 임하죠. 죽은 뒤 회고전이 열리는 작가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