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 키아프 서울 미술 한지

정영주

달동네 판자촌을 묘사한 ‘집 그림’을 선보여왔다.
캔버스에 스케치를 한 후
한지를 구기고, 찢고, 붙인 뒤
아크릴로 채색하는 과정을 거쳐
사라져가는 풍경을 표현한다.

 

정영주 키아프 서울 미술 한지

정영주, ‘도시-사라지는 풍경’,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193.9×130.3cm, 2016

정영주 키아프 서울 미술 한지

정영주, ‘기억 626’,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162×130.3cm, 2023

 

요즘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서울 작업실에서 제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상기하며 사라져가는 풍경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집 그림’이라 불립니다. 집을 표현한 풍경화를 완성하기 위해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한지를 붙인 뒤 아크릴로 채색하는 과정을 거치죠. 한지를 구기고, 찢고, 붙이는 그 과정도 ‘그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래전부터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라는 콜라주의 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종이를 붙인다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흔히 흰 캔버스 같은 평면에 채색 도구를 활용해 표현한 것을 그림이라고 일컫지만 부르는 이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질수 있지요. 모든 과정이 시간을 거치며 제 안에 내재화되어 있던 소재들과 결합되면서 완성된 작업 기법입니다.

처음 한지를 작업에 접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종이를 붙이는 작업은 대학 시절부터 해왔는데, 본격적으로 한지를 섞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파리에서 유학할 때였어요.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했죠.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제가 한국인이라는 게 큰 차별점 중 하나였어요. 동 시에 저의 문화가 그들의 관심을 유발하기도 했고요. 한지를 이용한 추상 작업으로 전시를 열었을 때 서양에 뿌리를 둔 추상에 동양의 재료를 접목한 것으로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지를 계속 사용하고 있고요.

한지 작업을 하며 발견한 한국이나 한국인을 대표할 만한 특성이 있을까요? 거칠지만 따뜻하고 질긴 특성이 유사하다고 봅니다.

집 그림 시리즈를 시작할 때 그 동기가 상대적 박탈감이었다고요. 물론 그것만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아니었어요. 다만 거기에 함몰되어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되레 이를 발판 삼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제 작업은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올곧이 바라보고,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지고자 반복한 행위이자 치유의 과정이었죠.

초기와 지금의 집 그림을 비교할 때, 시간이 흐른 만큼 집을 묘사하는 방식, 스타일, 컬러 등에 변화가 있나요? 초기작들에 비해 현재 작품은 더 관념적이고 몽환적이며 추상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라지는 풍경’이라는 작품이 저의 작업 주제와 같은 제목인데,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모든 것이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주제인 만큼 실제로 달동네 판자촌을 자주 관찰하실 것 같은데요. 한국과 해외의 달동네 판자촌 간에 비교되는, 혹은 공통적인 외관의 특성이나 정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달동네 판자촌은 유년 시절의 기억 속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 찾아가보아도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해 과거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저 드물게 남은 곳을 찾아내 저의 기억을 접목하고 재구성하며 작업합니다. 파리 유학 시절에 살던 동네는 이미 20년이 지났음에도 온전히 그대로 남아 있어서 추억을 곧잘 회상하곤 하지요. 이렇듯 세월이 흘러도 도시의 풍경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은 아주 부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달동네 판자촌의 풍경은 따뜻하고 감성적이지만, 판자촌이 실제로 형성되는 이유와 그 안의 삶은 작품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은 이 시리즈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제 작품을 포함한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저에게 일어난 희극과 비극 모두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따라서는 따뜻하게도, 또는 어둡고 슬프게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면 종이를 꾸겨서 일부러 더 주름지고 남루하게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 위의 불빛 때문에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키아프 서울에 10년 넘게 참가하셨다고요. 그간 어떤 긍정적인 성과를 얻으셨는지요. 고마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첫 참가 때부터 운 좋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신인 작가였음에도 관람객이 부스에 줄을 서서 관람하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고, 모든 작품이 완판되는 등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기억이 많은
아트 페어입니다.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가요? 최근작인 ‘기억 626’을 출품하는데, 더 깊이 있는 색감과 몽환적 느낌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엔데믹 시대이고 지난해에 이어 프리즈 서울과 공동으로 개최되는 만큼 더 많은 관심을 얻게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