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 시장 분위기 어때?” 2023년에 들어선 이래 제일 많이 들었던 문장 중 하나다. 이는 ‘미술시장 축소’의 의미를 내포한, 걱정이 깃든 말이다. 한국 미술시장은 지난 해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이 넘는 규모를 이루며 크게 확대되었다. 2022년 미술 시장 규모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품 유통액은 1조 377억 원으로, 전년 대비 37.2% 늘었다. 미술품 투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증가하며 시장이 극적으로 팽창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이 가까워지며 국내외 미술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세계 경기 침체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미술품에 대한 욕구와 구매빈도도 감소하기 마련이다. 작품을 구매할 때 이전보다 깊이 고민하는 컬렉터들이 많아졌고, 작품 운송 및. 설치를 하는 아트핸들러들도 2023년 들어 업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액자 제작 업체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해 가을만 해도 작품을 맡기면 최소 두달을 기다려야 했는데, 요즘은 평균 보름 정도면 액자가 완성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술은 삶에 있어 ‘선택 요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영 컬렉터의 아트 컬렉팅은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소비인 만큼, 이들은 다소 차분해진 현재 미술시장을 즐기는 분위기다. 한 열정적인 직장인 컬렉터는 “지난해에는 누구나 다 미술품을 사려고 해서 시장이 다소 시끄러웠다. 이제 드디어 ‘찐팬’ 만 남았으니 미술 시장을 관조하며 컬렉팅할 수 있겠다”라며 이번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이 기대된다고했다. 1백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또 다른 영 렉터 역시 본인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작가의 작품을 너나없이 구매하던 과거보다는 현재의 시장 분위기가 낫다는 의견을 표했다.

영 컬렉터들이 미술 시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컬렉팅을 즐기는 이유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대작보다는 1천만원 안팎의 중저가 작품을 구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미술을 투기가 아닌 ‘향유’의 개념으로 본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시장을 꾸준히 건강하게 보호하며 미술 애호가들이 스스로 즐기게 만들고, 신규 컬렉터 또한 유입시킨다. 각자의 주머니 속. 사정이 넉넉지 않아 참으려다가도 갤러리들이 좋은 작품 리스트를 보내오면 신나게 구매하는 모습을 매일같이 목격한다.

그렇다면 요즘 20~40대 영 컬렉터들은 어떤 작품을 선호할까? <초보 컬렉터를 위한 나에게 필요한 미술사>강의로 꾸준히 소통 중인 1백여 명의 영 컬렉터를 대상으로 “당신은 미술작품을 살 때 어떤 면에 이끌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컬렉팅의 연유가 하나로 귀결되는 건 아니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보면 다음과 같았다.

 

김서울, ‘스칼라 앤 벡터 No.4(Scalar and Vector No.4)’, 몰딩 페이스트, 무지갯빛의 아크릴, 콜드 왁스, 유화, 유성으로 밑칠된 리넨(아주 고운 텍스처), 172×172 cm, 2023

첫 번째, 영 컬렉터들은 친근함보다 낯섦을 선호한다. 본인에게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가 곧 작품을 사고 싶게 만드는 작가라는 의미다. 미술 호황기나 침체기와 상관없이 영 컬렉터가 가장 추구하는 건 ‘새로움’과 ‘시대정신’이다. 미술은 시대가 발전할 수록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왔다. 그렇다면 세상에 대한 묘사나 재현이 아닌 추상미술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움을 전하고 있을까? 추상미술을 좋아하는 영 컬렉터들은 김환기, 박서보, 유영국 등 저명한 이름들 이후로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차지할 한국 추상 작가를 찾고 있다. 그중 한 명은 디스위켄드룸이 꾸준히 소개해온 김서울 작가일 것이다. 작가는 시각예술이 오랫동안 일궈온 역사적 참조와 관습을 새롭게 인식하고,이를 지금의 언어로 다시 쓰기 위한 회화 법칙들을 하나씩 쌓아나간다. 예를 들어 ‘스칼라 앤 벡터’는 붓질의 크기, 강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질감과 운동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렇듯 우리 시대의 젊은 추상 작가들은 새로운 추상성을 끊임없이 획득하고 있다. 이미 많은 것들이 이룩되고 완성된 세상처럼 여겨지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진실을 찾기 위해 몰두하는 현상, 어쩌면 이것이 지금 이 시대의 또 다른 ‘시대정신’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영 컬렉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자질은 ‘성실함’이다. 스스로를 복제하지 않으며 평생에 걸쳐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실함을 알아보는 방법은 각 작가가 진행해온 전시와 프로젝트 이력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영 컬렉터들이 작가의 CV를 눈여겨본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성실했던 작가를 꼽자면 민성홍이다. 설치와 조각을 넘나들며 작업하는 그의 이력에는 빈틈이 없다. 그는 여러 도시를 수차례 오가며 낯선 환경과 충돌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자아와 사회를 ‘새’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 속 새들은 꾸준히 새로운 형상으로 변주되면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동시대인의 자화상을 연금술사처럼 부단히 표현해내는 그의 행보는 흔들리고 넘어지더 라도 표류하지 말고 변화하라고 이야기한다.

Rafa Silvares, ‘The bar’, 리넨에 유화와 아크릴, 210×230cm, 2023

세 번째, 영 컬렉터들은 매일 SNS를 살펴보며 동시대 시각예술을 면밀하게 탐구하다가 좋은 작가를 발견하고, 그들이 좋은 갤러리에 영입되기 전에 누구보다 빨리 작품을 구매하려 한다. 페레스 프로젝트가 소개하는 브라질 출신 작가 하파 시우바리스(Rafa Silvares)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젊은 컬렉터 사이 에서 일찍이 핫한 작가로 떠올랐다. 그는 ‘과연 이게 사람의 그림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정교한 작품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일면을 구현한다. 에스컬레이 터 뒤로 퍼지는 연기, 강하게 흘러내리는 수돗물, 누군가 가볍게 술 한 잔하고 떠났을 법한 공간 등이 표현된 그의 작품은 늘 현재진행형이지만 각 장면에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사회의 동적인 모습을 확대하고 정지시켜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참을 지켜 보게 만든다.

이 외에도 영 컬렉터들이 사랑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다수 만날 수 있다.아트페어만큼 동시대 미술을 집요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고 본다. 미술관 등지에서는 차마 발견하지 못했던 동시대 수많은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고, 이에 대해 마음껏 소통하고, 소장까지 하는 경험을 이번 페어를 통해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사과나무를 흔들어야 열매든 잎이든 떨어지듯이, 동시대 미술은 궁금증을 품은 컬렉터에게 더 많은 답을 내어주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