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
박홍준Park Hong Jun 감독

단편영화 <이삿날>(2017)로 부산독립영화제와 인디포럼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올해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섹션에 선정된 <해야 할 일>(2023)은
4년여간 중공업 회사의 인사팀에서 근무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ACF의 후반작업지원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된 소감이 궁금하다. 촬영부터 후반 작업까지 긴 시간 동안 이 영화를 준비하며 경제적으로 힘들던 시기에 후반작업지원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돼 고마운 마음이 컸다.무엇보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두려움이 큰 상태에서 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그런 부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소회 역시 남다를 듯하다. 부산 국제영화제는 내 영화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영화의전당에서 진행하는 시나리오 강좌를 들으면서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 첫 단편인 <이삿날>도 영화의전당에서 처음 상영했기 때문에 여러 모로 감회가 남다르다. 영화제 기간 동안 예정되어 있는 GV를 통해 관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하고 있다.

<해야 할 일>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한 조선소 자재팀에서 근무하던 주인공 ‘준희’가 인사팀으로 발령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회사 상부에서 갑작스레 떨어진 구조 조정 지시에 인사팀 구성원들은 각자 내적으로 갈등하고 서로 반목한다. 그 사이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 준희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해야 할 일>을 만든 계기를 묻고 싶다. 실제로 4년 넘게 한 조선소의 인사팀에서 일하며 구조조정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게 됐다. 인사팀 직원들은 구조조정을 실행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사에 소속된 한 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 명령을 내린 기업이라는 주체는 희미해지고 노동자들 사이의 반목만 늘어가는 모습을 보며 서류상의 숫자 너머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한 만큼 연출과정에서 고민이있었을 듯하다. 영화를 만드는 일이 내게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위한 일종의 도구 같은것이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경험한 일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직은 더 편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만 몰두하면 이야기로 서매력이 떨어진다고 보기에 그 경계를 잘 지키고자 했다. 준희에게 투영된 내 모습을 의식적으로 지워가며 그 자리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속성으로 채우려 했다. 30대 초반 직장인들이 으레 처하는 실제적 상황과 고민을 반영했고, 회사의 상황도 현실보다는 더 극적으로 표현 한 지점도 있다.

첫 장편을 연출하며 겪은 어려움이나 아쉬움도 있었나? 단편에 비해 촬영 분량이나 준비 기간이 월등히 늘어나다보니 힘에 부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제작진이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배 우들과 촬영 전 단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리허설을 해볼 여유가없었던 점이다. 촬영 현장에서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기존 시나리오에서 바뀐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의견 조율을 촬영 전 단계에서 미리 했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엇인가? 준희의 “예, 이해했습니다”라는 대사다. 준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구조조정 임무를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노동자로서 묵묵히 수행하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인사팀장의 말에 반기를 드는 장면인데, 나름대로 논리를 가진 인사팀장의 말에 준희는 ‘이해했다’고 답할 뿐이다. 준희의 복합적인 심정이 담긴 대사다.

본인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있나? 하고싶은 말을 하기까지 많이 주저하는 성향인데, 영화를 만들면서는 하고싶은 말을 할수 있는 재미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느낀다. 또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같은 마음으로 궁리하며 무언가 만들어 낼 때 찾아오는 성취감 때문에영화를 계속 만드는 것 같다.

 

<스파크>
라제쉬 잘라 Rajesh S. Jala 감독

인도 감독으로 지난 20년간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왔다.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Varanasi)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다큐멘터리 <화장터 의 아이들>(2008)로 부산을 찾았으며,
올해 ‘뉴 커런츠’ 섹션에서 상영하는 첫 장편영화 <스파크>(2023) 역시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종교와 폭력, 죽음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다.

 

부산국제영화제 ACF의 후반작업지원펀드 지원작으로 선정된 소감이 궁금하다. 독립영화를 완성한다는 건 마치 수 년째 마라톤을 뛰는 것과같다. 전세계, 특히 아시아의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영화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ACF의 지원은 프로젝트를 마지막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영화제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국제영화제는 영화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일 뿐아니라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잠재적 파트너들과 네트워킹을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큰 영화 축제이기에 나를 비롯한 <스파크>팀에게 의미가 대단히 큰 플랫폼이다.

<스파크>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나? <스파크>는 폭력의 희생자인 ‘카비르’가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다짐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힌두교 성지 중 하나인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곳에서 카비르가 화장터에서 일하는 ‘두르가’,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 ‘암마’와 조우하며 사건이 전개된다.

종교적 신념과 죽음을 주제로 작품을 집필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 17년 동안 정기적으로 바라나시를 찾아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힌두교도는 바라나시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윤회의 고리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곳에서 구원을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수많은 여성 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속 암마라는 캐릭터에는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여성들을 관찰하며 정리한 나의 사유가 반영돼 있다.

트레일러에서 불안을 자극하는 사운드가 돋보인다. 영화에서 청각적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나? <스파크>는 주로 이미지와 사운드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영화다. 사실적으로 담아낸 사운드와 바라나시의 실제 배경음을 핵심적인 청각 요소로 활용했다. 또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울려 퍼지는 사운드를 통해 어딘가 불안하면서도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개인적으로 무언가 표현할 때 대사보다 소리가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고 느껴 집필 단계부터 음향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

여러 다큐멘터리 작품을 통해 인도의 동시대 사회문제 를 다뤄왔다. <스파크>에는 어떤 사회적 상황을 담았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 특히 소수자들을 향하는 폭력이 남기는 여파를 다룬다. <스파크>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 나아가 전세계에 상기시키기 위한 겸손한 영화적 시도다. 한 사회를이루고사는우리가 조화를 이룰 가능성은 오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시도에 있다고 본다. 세상에 제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로서, 수많은 이들 의 생명을 앗아가는 폭력의 현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해야 했다.

20여 년간 지속해온 다큐멘터리 작업이 당신의 영화 작 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훼손하지 않고 현실을 포착하는 것이라면, 영화는 허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은 영화를 만들 때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 영화의 도전 과제는 무엇이었나? 팬데믹으로 인해 2년 넘도록 영화제작이 지연된 것이 큰 어려움이었지만, 그보다도 더 큰 난관은 영화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제작진과 출연진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를 향한 모두의 열정과 약간의 인내심,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믿음이 나를 계속 나아가게 했다.

당신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는 극도로 힘든상황에 처해있던 어린 시절의 내게 현실에서 벗어나는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영화를 직접 창작하는 제작자로서 언제나 영화를 통해 치유받는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