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재미 교포 영화인의 연이은 활약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선보인다. 총 여섯 편의 작품으로 부산을 찾아 관객들을 만날 세 명의 감독 및 배우와 그들이 작품을 통해 시도해온 것들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KOREAN DIASPORIC CINEMA

정이삭 감독

미국 출신 감독. 예일 대학교에서 생태학을 전공한 뒤 영화로 전공을 바꾸어 유타 대학교 예술 석사를 졸업했다.
데뷔작 <문유랑가보>(2017)가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한인 이민 가족의 삶과 애환을 다룬 <미나리>(2020)로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 전미비평가위원회 각본상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품에 안았다.

미나리

Minari, 2021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제이콥과 모니카. 병아리 감별사로 10년간 일하다 자신의 농장을 갖기 위해 아칸소주의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아버지, 아칸소의 삶에 지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은 어머니, 딸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의 고단한 이민 생활이 어린 아들 데이빗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특별기획 프로그램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한국을 찾는다. 소감이 어떤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 찾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이다. 올해로 다섯 번째 방문인데, 마치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이다. 20대 후반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왔는데, 그해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것 같다.(웃음) 하지만 많은 영화인들과의 우정이 그곳에서 시작된 것은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참석한 게 2018년이었는데, 정말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영화인 친구들을 비롯해 <미나리> 식구들과 재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미나리>를 비롯해 당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상영되고, 나아가 한국 관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들이 당신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주었나? 2019년 <미나리>를 만들 때만 해도 언젠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이 꿈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도 한국 덕분에 극장 개봉의 꿈을 이룰 수 있었고, 영화를 보러 와준 한국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아쉽게도 당시 함께 한국에 오지 못한 제작진이 많았는데, 이번 프로그램이 <미나리> 팀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한국 극장 상영을 축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당신의 작품은 그간 미국 사회에서 거칠게 요약돼온 한국인에 대한 일반화된 전형성을 깨는 역할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고정관념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바를 표현하며, 마음에 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 인생에 깊은 충만함을 주는 것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 오랫동안 <미나리>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스스로 내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영화감독으로서 실패를 경험한 적이 많았기에 언제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대본을 써온 것이 작품을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대본이 완성돼도 아무런 재정적 지원이 따라오지 않을 땐 감독으로서의 커리어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절망하기보다는 가족처럼 삶에서 내가 이미 가진 것에 그저 감사함을 느꼈다. 나는 이 원칙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영화제작에서 국경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에 ‘내셔널 시네마’를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내셔널 시네마’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늘 영화제와 비평가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보다는 ‘경계가 허물어진 시네마’라는 표현이 더 좋다. 영화제와 평론가들이 찰리 채플린부터 임권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화사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영화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물두 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처음 결심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내 앞에 얼마나 큰 위험과 위대한 도전이 놓이게 될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내게 있어 위험과 모험은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이고, 만약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이 일을 그만두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