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뮤직비디오와 영화의 경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감독.
신해경 ‘그대의 꿈결’, 잔나비 ‘외딴섬 로맨틱’ 등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서정성 짙은 가사 속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포착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왔다. 국립현대무용단과의 협업 댄스 필름
<볼레로 만들기> <시간의 흔적>을 비롯해 단편영화 <어떤 꿈> 등을
선보이며 영화 연출로 작업 반경을 넓혔다.

 

단편 <어떤 꿈>

 

올해 5월경 단편영화 <어떤 꿈>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어떤 꿈>이 단편이다 보니 세 편의 단편영화와 연이어 상영했다. 무용수가 등장하는 만큼 정극 영화를 관람하러 온 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듯하다.

<어떤 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나? 오래된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한예리)이 잡히지 않는 자신의 꿈을 계속 좇아가는 이야기다. 호텔, 꿈 그리고 춤이라는 몇 가지 단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러닝타임 내내 꿈속에 있는 듯한 장면과 그 속에서 춤을 추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신해경의 ‘그대의 꿈결’ 뮤직비디오에서도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인물이 등장한다. 당신에게 꿈이란 어떤 주제인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스스로 좀 더 편해지는데, 그건 꿈이라는 게 불확실하고 잡히지 않는 무언가라서 그런 것 같다. 꿈속에서는 누구나 자유롭지 않나.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꿈을 좋아하는 것 같다.

 

 

프라이머리 – When I Fall in Love

 

 

한편 프라이머리의 ‘When I Fall in Love’ 뮤직비디오에서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하루를 그렸다. 영상이 끝날 때쯤 두 인물 모두 잠에 드는데, 어떤 의미가 담겼나? 잠에 한번 깊이 빠져들면 깨어나기 힘든 것처럼 사랑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함께 잠들 수 있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 완결된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기보다 사랑에 도달하는 과정을 잠에 비유해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멋진 방식이라고 느꼈다.

특히 애정이 가는 작업은 무엇인가? 2년 전쯤 작업한 잔나비의 ‘외딴섬 로맨틱’ 뮤직비디오. 곡을 처음 접했을 때 제주도의 들판과 동굴, 바다 같은 풍경이 떠올라 실제로 배를 타고 제주도의 외딴섬으로 들어가 그 앞바다에서 하루 종일 수영하는 장면을 찍었다. 대부분 바닷속에서 촬영하다 보니 배우들에게는 쉽지 않았을 거다. 촬영 전 실내 스튜디오에서 잠수 훈련을 하며 물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 등 꾸준한 연습을 거쳐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낸 작업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어떻게 선정하는 편인가?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2년 정도 거주한 적이 있는데, 집 앞 포구에서 외롭게 켜진 등 아래 낚시하는 이들을 보며 해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처럼 인물과 잘 어우러지는 자연의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클로즈업보다는 넓은 풀숏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연을 자주 찾는 것도 같고.

 

 

사뮈의 ‘본’ 뮤직비디오는 촘촘하게 짜인 서사와 인물을 담아내는 방식에서 영화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의 형식과 스토리는 어떻게 구상했나? 어릴 때 쓰카모토 신야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 영화제에 가서 보곤 했다. 스토리뿐 아니라 그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 자체를 동경했던 것 같다. 사뮈의 ‘본’을 듣자마자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거친 콘트라스트가 가미된 흑백 톤과 노이즈, 왜곡된 앵글 등을 이 곡에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수미상관 구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누군가를 죽이고 땅에 묻어버리지만 곡 말미에서는 그 역시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 스스로를 만드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고, 삶을 끝내는 것 또한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라 생각해 이런 메시지를 담았다.

장면의 미장센을 구성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그 영상 작업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원래 그곳에 실제로 있었던 장소나 물건이라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 뮤직비디오의 등장인물 역시 음악에 이미 어울리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편이다. 배우에게 늘 새로운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편안하게 스스로를 보여주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영화제작에 집중하는 듯하다. 장르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사진이나 짧은 장면으로 담곤 했다. 하지만 늘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이는 곧 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도 결국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긴 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보고 있다.

 

<시간의 흔적>

 

긴 호흡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과정은 어땠나? 어려웠다.(웃음) 영상을 처음 시작했을 땐 마음에 떠다니는 소리를 글로 적는 게 어려워 카메라를 들고 나가 무엇인가를 찍으며 해소하곤 했는데, 이제는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글을 만들려다 보니 쉽지 않은 거다. 하지만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해 열심히 해보는 중이다.

결국 글로 돌아온 건가.(웃음) 맞다.(웃음) 결국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계속 찾아서 보는 작품은 무엇이 다른 걸까 생각해봤을 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작품이 결국 오래 남는다는 생각을 했다. 기술적인 면에 의존하지 않아야 장기적으로 힘을 잃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뮤직비디오와 영화를 모두 연출하며 느낀 장르 간 연결점은 무엇이었나? 두 장르 모두 긴 호흡으로 장면을 이끌어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뮤직비디오 작업은 영화에 비해 러닝타임이 짧지만 기반이 되는 음악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활용했고, 영화 작업에서는 인물의 대사나 행동 사이에 의도적으로 여백을 많이 넣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볼레로 만들기>

 

국립현대무용단과 꾸준히 협업하며 여러 댄스 필름을 제작했다. 몸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작업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 명확한 대사보다는 표정이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내게 좀 더 편하고 와닿는 방식이다. 배우가 표정과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춤을 추는 사람들도 손이나 발,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건데, 춤이 조금 더 추상적으로 표현되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다.

댄스 필름과 뮤직비디오 모두 음악을 매개로 한 장르다. 음악이 주가 되는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염두에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영상이 음악의 본질이나 매력을 얼마나 잘 느끼게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작업에 앞서 음악 속 보컬이나 악기가 지닌 속성을 먼저 살피는데, 그 속성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잘 드러나야 할 때도 있고 모든 요소가 그저 실루엣만으로 은은하게 존재해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볼레로 만들기>라는 댄스 필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볼레로 음악이 반복해서 흐르며 이 음악이 해체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을 담는데, 댄서들의 동작은 철저히 음악에 맞춰 계산되어 있지만 단순히 음악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영상이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으로 연출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구상 중인 영상 작업에 대해 소개해주기 바란다. 국립무용단에서 제작한 안무가 정보경의 <메아리>라는 작품을 필름화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이번 작업에서도 원작의 기조를 유지한 채 기존 댄스 필름 작업에 더해 무엇을 더 표현할 수 있을지 안무가나 무용수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해보려 한다. 그게 감독으로서 내 역할일 테니까.